바울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빌 3:5-16)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 외모, 재산, 학벌, 집안, 몸...자랑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이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사람은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우리 아이가 성적만 올라가도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모두 종합해서 육체적인 것이라고 분류합니다. 이런 걸 자랑하는 사람들은 육체파입니다.
육체파 여배우였던 마릴린 먼로처럼 몸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것을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육체파와 연관된 종교인들이 바로 율법주의자입니다. 지난주에도 살펴보았듯이 율법주의자들은 필연적으로 자기의 노력, 행위를 자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자들은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체적인 자랑거리로 따지자면 바울도 밀리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도 자신의 이런 자랑거리를 슬쩍 선을 보입니다(4).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바울의 자랑거리
1)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정통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합니다. 정통 이스라엘 사람들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습니다.
2)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양친이 모두 유대인입니다. 순수혈통입니다. 진짜 유대인입니다.
3)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 지파에서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나왔습니다. 뼈대 있는 지파, 뼈대 있는 가문입니다.
4)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다. 다른 종족과 혼합되지 않은 순수 히브리인이다.
5)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가장 율법에 철저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신앙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가입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존경 받는 집단입니다. 바울은 여기 소속입니다.
6) 교회의 핍박자였습니다. 왜 교회를 핍박했을까요?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열심히 믿었는데, 교회가 유대교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니까 교회를 핍박한 겁니다. 열정적인 유대교인입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대견한 사람입니다.
7)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철저하게 노력했기에 율법에 흠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바울은 당대의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보다 자랑할게 많았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두고두고 자랑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7절을 보세요. 자신에게 유익했던 것들입니다. 이 이력서만 내밀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인정해주었던 정말 유익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이력서들을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다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2. 포기한 자랑거리
8절을 보면,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것들까지라도 모두 다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8절을 계속 보면 아예 그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고, 또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인데,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가장 하찮은 것으로 여기겠다는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사람이 이렇게 확 바뀐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까? 이렇게 확 바뀔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뭘까요?
1) 그리스도가 답이다.
답은 그리스도입니다. 7절을 보시면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긴다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태도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이 어떻게 내 생활태도에서 드러나느냐는 겁니다. 태도가 중요합니다. 주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의 태도를 통해서 보여야 합니다. 입으로는 주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행동하는 것을 보면 아닐 때가 있습니다. 주님보다 세상의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태도가 아닌 겁니다. 자세가 아닌 겁니다. 입술의 고백과 행동이 다른 겁니다.
8절을 보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주님이 최고 수준이라는 겁니다. 더 높은 수준이 없다는 겁니다. 마치 어떤 아이가 장난감을 하나 쥐고 있는데, 누가 더 좋은 비싼 장난감을 주면 그걸 잡고 다른 한쪽은 슬며시 놓아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더 좋은 것을 발견했는데, 더 좋은 것을 가졌는데 굳이 하찮은 것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보니까 그분이 최고인 겁니다. 더 귀한 것은 없는 겁니다. 그러니 그동안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버리는 겁니다.
2) 8절 하반 절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나머지 모든 것들은 주님과 비교가 안 된다는 겁니다. 비교불가라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그의 인생관, 가치관, 삶의 목적이 몽땅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알고 보니 주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요> 이런 고백이 나오길 바랍니다(주 내 맘에 오신 후에).
3. 우리의 현실
바울을 통해서 삶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예수를 만났다면 그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치관이 바뀝니다. 인생관이 바뀝니다. 태도가 바뀝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닌 것 같습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이 아닌 다른 예수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를 잃으면 열을 얻는 신앙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사업도 잘되고, 건강하고, 지위도 높아지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조금만 희생하면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듣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알고 있는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열 가지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한 가지 예수님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가장 귀한 것을 놓치고 있다. 세상의 명예, 쾌락, 돈, 성공을 놓치지 않으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고 있다. 우리의 신앙이 뭔가 잘못 되고 있습니다.
진짜 신앙은 주님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다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비유가 있습니다(마 13:44-46).
그 비유의 핵심은 정말 귀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그 보화를 얻기 위해서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보화가 있는 밭을 사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바울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보화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그동안 자신의 보화처럼 여기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세상의 것을 버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라는 보물을 발견했으면서도 세상의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과감하게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전의 가치관, 이전의 생활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놀라운 분입니다. 그 주님 안에서 날마다 발견되는 기쁨을 누려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과 교제를 나누어야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발견되는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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