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빌 2:1-11)
지난주에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첫째는 복음을 위하여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복음을 위하여 고난도 받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뭔가 믿는 사람다운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 ~답게 살지 못할 때입니다.
목사는 목사답게 살아야 하고, 스님은 스님답게 살아야 합니다. 학생은 학생답게, 주부는 주부답게 살아야 합니다. 목자는 목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본연의 모습대로 살지 못할 때 추하게 됩니다. 남들이 볼 때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이 땅에 성도다운 성도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라도 성도다운 성도가 됩시다.
바울은 빌립보교인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기대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1. 언제나 좋은 것이 있으면 항상 성도들과 나누라(1-4)
1절을 볼까요?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 자비....이런 것들은 모두 주님 안에서 얻게 되는 좋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혹시 여러분에게 있다면, 이런 것들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누구에게 하란 말입니까?
2-4절까지 길게 나와 있습니다.
2절, 마음을 같이하라고 했습니다.
같은 사랑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뜻을 합하라고 했습니다.
한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라는 뜻입니까? 교회의 같은 성도들, 지체들끼리 서로 서로에게 이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3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4절,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이렇게 하라는 말입니까? 교회 성도들끼리 서로서로에게 이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볼 때 4절 끝에 바울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너무 기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너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뻐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달라는 겁니다.
이 말은 역으로 보면 지금 빌립보 교인이 이렇게 실천하고 있다는 예기입니까? 뭔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는 예기입니까? 바울이 볼 때 빌립보 교인 안에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겉으로 볼 때는 큰 문제는 없는 교회 같은데 속을 들여다 보니까 문제가 보이는 겁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2절을 보면,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뜻을 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뜻이 다릅니다.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허영을 떨고 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고 경쟁합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못하게 생각합니다.
4절을 보면, 다 자기 일에만 바쁠 뿐 다른 성도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이런 모습을 보는 사도 바울의 마음이 슬픕니다. 좋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결코 복음에 합당한 모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뭔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쟁합니다. 이기적입니다. 남들이야 어찌되었든 자기만 잘 먹고 살면 됩니다. 이게 세상 사람들의 모습인데 믿는 우리가 그렇게 되어서 안 됩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2. 특별히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의 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푯대입니다. 그분을 보고 우리는 그분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많이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3:1, 히12:2).
신앙이 성숙해 간다는 것은 점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겁니다. 큰 바위 얼굴이란 소설에 나오는 예기처럼 계속해서 큰 바위 얼굴을 보고 자란 사람이 어느날 자신의 모습이 그 바위의 얼굴과 닮아버린 것처럼, 우리가 늘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닮게 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닮되 특별히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5). 사람이 마음이 변화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도 변화되게 됩니다. 겉을 아무리 가꾸어도 마음이 변화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안 바뀝니다. 마음이 달라져야 하는데,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겸손의 마음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겸손하셨습니까?
1) 하나님의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6)
하나님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올 마이티 가드(almight god)입니다. 다시 말하면‘전능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으셨다. 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신데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하신 겁니다. 그 박탈감은 우리 같은 사람이 40평 아파트에 살다가 13평으로 내려가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박탈감입니다. 누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권리를 포기하려고 하겠습니까?
2) 인간의 몸이 되셨다(7-8절).
이것은 하나님이 불편한 몸을 가지신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창조한 인간과 같은 몸을 입으시고 같은 수준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도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소설에는 두 가지 충격이 있습니다.
첫째는 왕자가 거지가 될 때 느끼는 충격입니다.
왕자가 거지가 되어서 거지의 부모를 만나고 그들의 생활 한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왕자가 느낀 문화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왕자를 주변의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둘째는 거지가 왕자의 신분이 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입니다.
왕자가 되면 좋을 줄 알았던 그 생활이 왜 그리 불편한지 자신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감당이 안 되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힘든 것이고 그 문화충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주님은 감수하셨습니다.
3)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8절).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은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자기부정의 극치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자기 성질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데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부정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신 주님입니다. 자기의 권리도, 자존심도, 편안함도...모두 포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의 겸손을 배웁시다.
그런데 누구에 대해서 겸손해야 합니까? 서로 서로에 대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해서 사랑하고, 높여주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자기를 포기하고 남을 높이고 나하고 의견이 달라도 맞춰주는 그런 모습이 겸손입니다. 그런 겸손을 배웁시다.
3. 겸손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높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이신다는 부분입니다. 내가 높이는 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쉽게 허물어집니다. 영원히 갈 것 같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권력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 중에 재임 중이나 퇴임 후 교도소에 안 간 사람 있으면 말해 보십시요.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과 그 측근들, 노무현, 이명박까지 줄줄이 불명예를 안고 퇴임을 하거나 감옥에 갔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실 때 진정으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원리는 내가 낮추면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내가 포기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이 그렇게 낮추시고 포기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높이시는지가 나옵니다.
1) 모든 사람이 존경한다(폭)(9,10) - 특정한 계층과 부류의 사람들만이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과 계급을 초월해서 존경한다.
2)자발적으로 존경한다(10) - 강요해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존경한다.
3)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한다(11) - 우리의 높임으로 결국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일이지요.
< 결 론 >
부부도 오래 동안 같이 살면 닮는다고 합니다. 신기할 정도로 외모가 닮아갑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닮아갑니다. 하물며 우리는 주님과 결혼한 주님의 신부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 주님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됩시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위하는 삶을 삽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실천합시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주님이 쓰시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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