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관계로부터(빌 1:12-18)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에 가장 기뻤던 일은 어떤 일이었습니까? 왜 기뻤습니까? 그렇다면 최근에 가장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일은 어떤 일이었습니까? 왜 기분이 나빴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뻐하고 또는 슬퍼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 여러분이 주식에 투자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만약 내가 투자한 주식의 주가가 계속해서 상승을 하면 굉장히 기뻐합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주가가 곤두박질을 치면 어찌할 바를 몰라 합니다.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가 갈수록 올라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락을 하면 몹시 기분이 나빠집니다. 운동 좋아하시는 분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계속 이기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시리즈에서 우승이라도 하면 열광적으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는 날은 기분이 말이 아닙니다. 모두가 기쁨이 무엇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내 삶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또는 환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기쁨의 방식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좋으면 기뻐합니다. 반대로 환경이 나빠지면 슬퍼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을 통해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은 이런 환경(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은 무엇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일까요?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쁨을 좌우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삶의 기쁨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바울의 삶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갈까요?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입니다. 그럴 때 문제 앞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게 됩니다. 바울이 당한 문제를 하나씩 살펴봅시다.
1. 투옥의 문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은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먼저는 수감된 본인뿐만 아니라 관계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감옥생활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갇혀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로운 일입니까?
두 번째는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이 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본인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염려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12-13절을 보겠습니다.
1)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말한다. 복음의 진보란 복음이 확산되었다는 뜻입니다. 감옥이란 곳은 일반적으로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이 투옥되어 있음으로 인해서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으니 너희들은 염려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바울은 대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수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이 생각지도 않는 방법으로 바울을 로마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고소를 당해서 재판을 받기 위해서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압송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온 바울은 어디에다 갔다 놓았을까요? 13절을 보면 시위대 감옥에다 그를 가두어 놓았다. 여러분! 시위대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로마의 시위대는 황제의 경호를 맡고 있는 특별한 군인들이다. 시위대는 절대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첫째, 출신성분이 좋아야 합니다. 순수하게 로마국민만이 시위대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다른 민족출신은 불가능합니다. 둘째, 머리가 영리해야합니다. 셋째, 최고의 몸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시위대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엘리트중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이 수비대원들은 보통 하루에 4번 2사람씩 교대로 죄수를 감시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죄수와 함께 자기 몸을 묶어서 감시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수비대원들은 싫든 좋든 바울과 오랜 시간을 함께 있어야 했는데 복음의 불타는 열정을 가진 바울이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보낼 리 있겠습니까? 그는 감옥에 가만히 않아서 로마의 가장 핵심그룹들을 차례차례로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13).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당신의 섭리 속에서 바울을 이렇게 로마의 시위대 안에 보내셨지만 만약 바울이 그 감옥이란 환경에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구속당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낙심만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을 하나의 제약으로 보지 않고 기회로 보았다. 그럴 때 감옥이 복음의 황금어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부딪히는 환경이 아니라 내가 그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항상 좋은 환경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처럼 꽉 막혀서 어찌해야할 바를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는 겁니다.
2. 인간관계의 문제
바울이 겪고 있는 두 번째 어려움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 때문에 믿는 자들 안에서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1)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15-16). 이들은 노사도인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것을 보고 더욱 도전과 격려를 받고 열심히 전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노 사도도 저렇게 열심히 전도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되겠는가.....”
2) 그런데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전파하는 자들입니다(17).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전도자 바울의 명성이 갈수록 높아지니까 그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남이 잘 되는걸 배 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옥에 갇히자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떨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명성과 바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바울에게는 큰 괴로움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이 도리어 자신을 시기하고 모함하고 자신의 수고를 깎아 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불신자들이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참 정신적으로 힘들어 지게 됩니다. 여러분도 남이 나한테 해코지를 하는 것보다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배신을 하면 더 힘들지 않습니까?
3) 그런데 바울은 이런 어려운 인간관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주님과의 관계성으로 해결합니다. 18절을 볼까요?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비록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 해도 결국은 그것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복음이 더 많이 전파된다면 자신은 기뻐하고 기뻐하겠다는 겁니다.
바울은 가장 민감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니까 극복이 되는 겁니다. 만약 바울이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면 아마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아니 이것들이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고생하는데 어떻게 이것들이 그럴 수 있어........!”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인간관계의 문제야 말로 우리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이란 자체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에서 오는 괴로움과 고통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들조차도 내 자신과 나의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도리어 바울의 고백처럼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겁니다.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 결 론 >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험한 바다를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옵니다. 이 파도가 지나가면 다른 파도가 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생에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우리가 그런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기쁨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입니다.
바울의 기쁨은 환경에 있지 않았습니다. 항상 주님을 먼저 보았습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럴 때 인생을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를 만나도 먼저 주님을 바라보십시요. 그러면 주님이 그 문제를 이길 힘을 주십니다. 주님 안에 답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 승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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