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2)(빌 1:6-8) 2014수요
지난주에는 바울과 빌립보교회가 어떻게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를 살1펴보았습니다. 보니까 세상적인 만남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만났고,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고, 예수님 때문에 지금까지 아름다운 교제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혈육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가족, 영적인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가족이 특별합니다. 영원히 천국까지 같이 갑니다. 이 영적가족은 믿음의 대상이 같고, 삶의 목표가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특별합니다. 이런걸 알고 이 관계를 소중히 가꾸어 가면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행복한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자산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바울과 빌립보교회 간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바울의 확신
6절을 보면 바울의 확신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 착한 일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빌립보 성도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 착한 일이란 것이 뭘까요? 가장 확실한 것은 그들의 구원입니다. 주님이 빌립보교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살던 그들이 어느 날 복음을 듣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 안에서 주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입니다.
조금 더 확대해서 본다면 그들이 구원을 받음으로 그들에게서 나타난 아름다운 일들입니다. 특별히 그들은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복음을 위한 일에 힘썼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을 돕고 기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런 일들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재림의 날입니다. 정리하면 주님께서 빌립보 성도들을 구원하실 뿐만 그들이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붙잡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주님의 재림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의 확신입니다.
3) 여기서 우리는 우리 신앙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재림의 날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모든 포커스를 재림에 맞추어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주님이 재림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는 날이 믿는 우리들에게는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잔칫날입니다. 환희의 날입니다. 승리의 날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날은 어떤 날일까요?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그들의 모든 삶이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그 때가 되면 믿지 않던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숨을 곳을 찾아도 숨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쫓아왔던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믿는 자들을 무시했던 것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주님이 재림하는 날이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뒤집어 집니다. 역전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할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냐 하면, 주님 오실 그 날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 좀 멀리 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믿음생활 하는 것 때문에 겪는 불편을 참아야 합니다. 뭘 보고요? 주님 재림하는 그 날을 보면서, 오늘 내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받는 고통, 핍박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뭘 보고요? 주님 재림 하실 그 날을 보면서!
예를 들어서 집이 없어서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집을 살려고 오래 전부터 적금을 넣고 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제법 큰 금액의 적금을 매달 붓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매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못 사주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참아야 합니다. 그렇게 참는 이유가 있습니다. 뭘 생각하면서? 적금 타는 날을 생각하면서, 적금타서 집 사는 그 날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불편을 참는 겁니다.
그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적금 타는 날이 언제입니까? 지금이 아닙니다. 주님 오시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 내 인생 최대의 날입니다. 대박이 터지는 날이고 인생 역전의 날입니다. 그 날이 되면 우리의 신분이 바뀌고, 형편이 달라지고, 사는 수준이 달라지고,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 날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살기 어렵습니까? 믿음생활 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참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현 시대에 많은 것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히 11:35-40을 봅시다.
35,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36,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혔습니다.
37, 돌에 맞아 죽고, 톱에 잘려 죽고,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궁핍과 환난, 학대를 받았습니다.
38, 이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누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모든 어려움을 참아내었습니다. 왜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주님 오실 날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꿉시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소망하지 말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것을 포기할 각오로 살기 바랍니다.
2. 바울이 가진 확신의 근거
바울이 6절과 같이 빌립보교회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7절 초반을 보면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6절에서 가졌던 그런 확신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근거가 뭡니까? 7절 나머지에 나옵니다.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1)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2)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쩌면 이것이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고백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마 엄마인 여러분의 마음에는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겠지요?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내 마음에 있는 사람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나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에 있으니까 늘 생각하게 되고,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입니다.
빌립보교회가 바울에게 그런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고백입니다. 얼마나 빌립보교회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기 때문입니다.
매임이 뭡니까?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겁니다. 그리고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하는 일은 바울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전도사역을 한 겁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옥에 갇혀 있었을 때도 함께 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가장 힘든 순간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감옥에 갇혔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 감옥에 갑니까? 사연은 다 다를 겁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감옥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든 상황입니다. 갇혀 있습니다. 외롭습니다. 죄인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장 힘들 때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가장 기억할까요? 내가 가장 힘들 때 함께 해준 사람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면 내가 가장 힘들 때는 내 곁에 없습니다. 힘들면 이상하게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그동안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도 내가 힘들어지면 다 떠납니다. 만나자 해도 슬슬 피합니다. 그런데 내가 잘 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슬슬 붙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친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떠나지 않고 함께 해 줍니다. 이게 진짜 친구고 이런 친구는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가장 어려울 때도 함께 해 주었습니다. 어렵지 않을 때도 함께 했습니다. 바울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때도 늘 그를 염려하고 그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잊지 못하고 특별히 그들의 신앙을 잊지 못하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수고했습니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변함없이 함께 했습니다. 그게 귀한 겁니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진국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주님을 위하여 한결 같이 협력하는 빌립보교회를 볼 때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바울과 빌립보교회처럼 복음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주님이 쓰시는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때로는 힘들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기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함께 협력하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주님 오시는 날 모두 당당하게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 부름받아, 저 멀리 뵈는, 하늘의 곡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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