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신 마음(딤후 1:7)(3) 11세겹줄
여러분에게 배달된 어떤 선물이 있다. 그런데 그 선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고 세상과 마귀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라면 받아야하지만 세상과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면 거절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요일 2:15-16절은 이렇게 말한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과 세상이 있는 것들을 우리가 사랑하거나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모두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만약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약 1:17은 이렇게 말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고 했다.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는 말은 그 하나님은 과거에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좋은 것들을 주셨고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들에게 정말 좋은 은사와 하늘의 선물들을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사모해야 한다. 오늘 본문을 봐도 하나님에게서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했다.
1. 먼저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려움, 걱정, 근심, 염려, 공포.....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누가 주었을까? 세상과 마귀가 준 것이다.
마귀의 목표는 무엇일까? 믿는 우리들을 넘어뜨리는 것이다. 우리를 절망시키고, 낙심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고 그래서 결국은 믿음에서 이탈하도록 만드는 것이 마귀의 최종목표다. 그 일을 위해서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틈만 보이면 믿는 자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 전략 중에 하나가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과 관계에서 아직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계시록에 보면 지옥에 가는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 왜 두려움이 이렇게 안 좋은 것일까?
1)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기 때문이다.
( 잠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린다는 말은 어떤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결국 그 사람에게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내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만 그럴까? 아니다. 뭐든지 우리는 두려워하는 그것에 끌려가게 된다. 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돈에 매이게 된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뭐든지 하려고 한다. 반대로 돈이 없는 것을 너무 무서워하게 된다. 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목숨이 무서운 사람이 있다. 그러면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한다. 때로는 살기 위해서 친구를 배신하기도 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배신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친구가 날 버릴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또래 집단에서 발생한다. 그러면 친구에게 왕따 되는 것이 무서워서 잘 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2) 왜 두려움이 우리에게 이런 영향을 줄까?
두려워하면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그것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빠지면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두려워하는 그 사람 혹은 그 대상만 보인다. 그 사람이 너무 두려워서 태산처럼 커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사람에게 매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너무 커 보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안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을 정말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그래서 하나님만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믿음의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믿음의 판단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움츠려 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믿음이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크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지금 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있나? 그 정체를 알아야 한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결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세상과 마귀가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두려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에게서 온 것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은 사랑과 능력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1) 하나님이 주신 것은 능력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길 원하신다.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길 원하신다.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확신 가운데 서길 원하신다. 자신감 있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 능력을 누가 주시는가? 성령께서 주신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는 담대해진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능력으로 그리스도인다운 멋진 삶을 살게 된다.
능력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면 하나님은 부어주신다. 능력 받기를 사모하자. 그래서 담대하게 살아가자.
2)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영혼을 사랑하길 원하신다. 그 영혼을 섬기길 원하신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길 원하신다. 용서하며 살길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실 때 모든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며 섬길 수 있다.
3) 절제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제하는 능력을 주신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마지막 열매가 절제의 열매다. 하나님은 우리가 욕망과 본능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절제하면서 자기를 조절하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절제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은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이 성도의 생활이다. 성도는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반대로 산다.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면서 산다. 절제를 하지 못하고 욕망이 끌리는 대로 산다. 방탕한 삶을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
< 결 론 >
우리는 분별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에게 온 것인지? 그렇지 세상과 마귀에게서 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세상과 마귀에게 온 것은 거부해야 한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다. 두려움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대신 능력의 마음, 사랑의 마음, 절제의 마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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