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서 5:1-3
나는 누구인가? 요한일서는 계속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발견해야 한다. 나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떠야 한다. 거지와 왕자의 이야기에서 다루는 주제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1절,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다.
①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다.
요즘 드라마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 중에 하나가 <출생의 비밀!> 이런 내용이다. 주말 드라마 <마음이 들리니>를 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 봉마루의 부모가 대기업 회장, 최진철이었다. 어머니는 그 회장의 첩 김신애였다. 이 출생의 비밀을 깨달은 봉마루가 고민하고 방황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일 드라마 몽땅 내 사랑에도 출생의 비밀 스토리가 있었다. 학원에서 알바로 푸대접을 받던 여자가 사실은 그 원장의 진짜 딸이었다. 그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을 본다.
왜 출생의 비밀 같은 내용이 드라마에 많이 등장할까? 사람들이 그만큼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출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 자녀인가? 내 부모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 삶에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출생의 비밀을 하나 파헤쳐 보자.
엄청난 비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부모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부모가 누굴까? 하나님이시다. 1절의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다라는 이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가? 아닌가? 를 결정짓는 것은 지금 내 외모로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내 지능, 내 능력, 내 형편으로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났느냐 아니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다면 누가 뭐래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고 내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부모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것처럼 내 인생이 정말 달라져야 한다. 왜? 이 세상의 주인 되시고 창조주 되신 그분께서 내 부모이기 때문이다.
②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인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나?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면 나는 하나님께로 난 자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③ 그렇다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 유일한 구원자, 메시야라는 뜻이다. 조금 더 포괄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예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요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신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이 이렇게 복음의 핵심적인 진리대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난 자가 틀림없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요한 1:12, 14:6, 행 4:12).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이 내 죄를 대신해 주신 구주임을 믿으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육신은 부모님의 부부관계에 의해서 이 땅에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부모의 피를 이어받고 부모의 씨를 이어 받아서 그 부모를 닮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그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내가 믿음으로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때 내 안에 하나님의 씨가 생기고, 하나님의 생명이 생기고,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를 닮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닮게 되고, 죽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또 나온다. 참고로 요한일서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 세 가지가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셋째는 예수님을 믿느냐는 것이다.
2)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1절에서 만나는 두 번째 진리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이런 뜻이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이라면(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난 자는 누구인가? 같은 부모에게서 난 자이니까 내 형제가 된다. 바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래서 부모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같은 부모에게서 난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지를 분별하는 시금석 중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같은 형제인 성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성도 사랑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일서에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성도들 중에도 미운 사람이 있다. 사실 육신의 형제들끼리도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들 중에서도 미운 사람이 있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보다는 믿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가 더 많다.
목사인 나도 같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많다.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솔직히 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같은 부모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2절,
1)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동격은 무엇인가?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나?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 순종하는 것, 실천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랑과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문제인 것이다. 이 말씀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알 수 있나? 아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나? 말씀에 순종하고 있나? 를 보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분의 원하시는 것을 할 것이다. 그분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분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분이 원하는 것은 하길 힘들어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랑이 약해서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2)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증거로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확인해 볼 수 있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같은 형제자매를 당연히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게 될 것을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같이 가야 한다.
3절, 3절에서 2절의 진리가 반복되면서 보완을 해 주고 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다시 한 번 하나님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2)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뒷부분이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이 부분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사람들 의식 속에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라는 의식이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의 의식 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기에 무거운 것, 힘든 것, 부담스러운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 그렇게 말할까?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지킨다면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는 아무리 힘들어도 기쁨으로 한다. 그 사람을 위해서 무슨 힘든 일이라도 한다. 기쁨으로 한다. 왜? 사랑하니까 그렇다. 그런데 사랑도 없는데 의무감으로 하면 5분도 하기 싫고 귀찮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다. 그분을 사랑해서 말씀을 지키면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쁨으로 할 수 있다.
②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지 고정관념을 깨뜨리자.
왜 말씀을 지켜야 하나?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그런 높은 수준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우리가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우리 수준은 그런 수준이 아니라 쉽고 편하고 본능대로 살고 싶은 것인데 하나님의 수준이 너무 고상하고 높기 때문에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 힘들지만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일까? 아니다. 틀렸다.
왜 말씀을 지켜야 하나?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대로 순종하라고 하나? 누구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아니다. 우릴 위해서다.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축복을 위해서다. 말씀대로 살면 그것이 살길이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살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길은 말씀대로 사는 길이다.
우리가 정말 잘 되길 바라고 성공하길 바라고 형통하길 바란다면 뭔들 못하겠나? 부와 성공과 존귀와 건강과....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사모하고 갖고 싶어서 그렇게 몸부림치는데 그걸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 뭔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을 지키는 것이 부담이 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운 것이라는 것이다. 왜?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 결 론 >
1)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어야 한다.
2)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같은 부모를 가진 내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 그냥 사랑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부모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남이 아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구체적이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입술로 하지 말고 순종하는 행동으로 해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내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이상하게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된다. 서로 관계가 있다.
4) 그분의 계명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랑하면 쉽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행복을 위해서 지키는 것이다. 말씀을 지키면 내가 복을 받는다. 생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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