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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고난
임호남 2009-12-30 추천 0 댓글 0 조회 264
                  그리스도인과 고난(벧전 4:1-6)


  고난이라 함은 어려움을 말한다. 힘든 것을 의미한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고난이 믿는 자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리스도인과 고난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상하게 주님을 믿고 따르면 고난이 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할수록 그런 고난이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시편을 보면 거의 대부분 다윗이 고난 가운데 쓴 시편들이다. 왜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그렇게 쏙 들었던 사람, 골리앗도 물리친 그 믿음의 사람에게 그런 많은 고난이 따라 다녔을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윗뿐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다. 공통점이다. 왜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이 있을까? 그리스도인과 고난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1. 주님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고난이 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고난이 있다. 왜냐하면 주님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우리 주님께서도 이미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자연스럽게 고난과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이 왜 고난 받으셨는지를 생각해 보면 안다. 주님은 아무 의미 없이 고난을 받지 않으셨다. 목적 있는 고난, 의미 있는 고난을 받으셨다. 벧전 3:18절을 보자.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죄가 없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일본 전철역에서 일본인으로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한국인 이수현씨와 같다. 일본에서는 이수현씨를 의인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주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셨다.


주님의 고난은 이렇게 의미 있는 고난이었다. 만약 주님께서 고난을 피해가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를 해결하지 못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이 고난을 받으셔야 했다. 이런 고난이 의미 있는 고난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주님을 따르려고 하면 고난이 있다. 아무 의미 없이 살면 모르겠지만 뭔가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고 하면 고난이 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았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했다.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2. 고난에는 영적인 많은 유익이 있다. 어떤 유익이 있나?

1)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누군가 희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 우리 조상들 중 많은 분이 순교를 했다. 피를 흘렸다. 그 피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예수를 믿는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제일 처음 믿었다. 핍박을 받으면 믿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이 복음화되었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권운동을 하다가 많은 고난을 받고 결국 암살을 당했다. 그 희생 덕분에 흑인들의 인권이 향상되었다.

  짐 엘리웃과 몇 몇 젊은이들이 에콰도르의 포악한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모두 순교를 했다. 그 순교로 그 부족이 복음화 되었다. 누군가 고난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썩어지는 밀알이 되고, 십자가를 져야할 지도 모른다.


2))죄를 그치는 유익이 있다(1하)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끊지 못했던 죄를 끊게 된다. 아무리 죄를 끊어야지! 결심해도 잘 끊지 못하던 죄를 고난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끊게 된다.


저의 외삼촌 중 한 분이 최근에 폐암 선고를 받으셨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 부모님의 전도로 최근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 평생 예수와는 관계없이 세상적으로 살던 분이다. 그런데 암 선고를 받고 그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서 교회를 나오게 되고, 은혜를 받았다. 그러자 삶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암선고로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던 이 분이 날마다 할렐루야! 감사하고 찬송하고,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밝고 씩씩한지 모른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암이란 엄청난 불행을 당했지만 그 불행이 이전의 모든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우리 삼촌께서 이런 고난을 겪지 않고 조금 만 일찍 예수를 믿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지만 아마도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우리 어머니도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아무리 치료하고 치료해도 낳지 않으니까 결국 교회로 나오게 된 경우다. 고난이 이렇게 우리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에게는 유익하다. 시편 119편도 이렇게 말한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함부로 살았던 사람이 잘못 살던 사람이 고난을 받고 나서야 이제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는 것이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2) 육체적인 욕망을 따라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된다(2). 세상적으로 살던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이전에는 그 모습 속에서 어떤 영적인 느낌, 분위기가 거의 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인가 진짜 믿는 사람다운 분위기가 느껴지고, 거룩한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교회에서 집사직분을 가지고 있지만 삶은 거의 잡사 수준으로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잡사가 아닌 진짜 집사처럼 살게 된다.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알고 보니까  고난이 그렇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고난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2절을 보면 우리가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남은 생애를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짧다. 금방 지나간다. 이 짧은 생애를 잘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 시간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즐기고, 흥청거리고, 놀고.....이렇게 살 시간이 별로 없다.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서 달려가도 부족합니다.


잉글랜드 체스터 사원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는 오래된 시계가 있습니다.

․ 울고 웃던 어린시절 - 시간은 기어갔습니다.

․ 활기찼던 청소년 시절 - 시간은 걸어갔습니다.

․ 어른이 되었을 때 - 시간은 뛰어갔습니다.

․ 늙어갔을 때 - 시간이 날아갔습니다.

․ 나는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다 가버렸음을.

   오, 주님 그 때 저는 구원을 받은 자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오늘 바로 살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후회하지 않도록 이제 남은 때를 잘 살아야 합니다.


3. 고난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다(3).

우리의 과거의 삶을 돌아보자.

-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향락, 우상숭배를 하면서 살았다.

이제 그렇게 사는 것은 과거로 충분하다.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이제는 그런 옛 생활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 생활, 앞을 향해서 달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고난이 우리를 다른 삶을 살도록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달라지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나? 4절을 보면 옛날에 우리와 어울리던 세상 친구들이 변화된 우리를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다. 신기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비방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들처럼 살지 않는 것을 비난한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우리는 책임이 있다. 왜 내가 이렇게 변화되었는지 말해주어야 한다. 나처럼 삶을 바꾸지 않으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이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삶을 바꾸지 않고 생을 마무리 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뿐입니다(5-6). 우리의 책임이 큽니다. 책임 있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 결 론 >

그리스도인과 고난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왜냐하면 주님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려면 우리도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바른 길을 걷는 것이 쉽지 않다.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또한 고난이 우리 신앙에 큰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우리의 죄를 멈추게 한다. 고난은 우리의 세상적인 정욕을 끊게 한다. 고난을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고난을 받아도 두려워말고 자신을 성찰하기 바란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바란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세상적으로 살지 말고 속히 돌이켜 남은 생애를주님의 뜻을 위해서 살기 바란다. 아직 하나님을 몰라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 기 도 > 

1. 주님!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여러 가지 고난으로 만지시고 다듬으시니 감사합니다. 그 고난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빚으시는 손길임을 믿고 겸손하게 무릎 꿇게 하옵소서.


2. 이제 남은 생애를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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