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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가정(1)
임호남 2009-11-18 추천 1 댓글 0 조회 249
                           권위와 가정(1)벧전 3:1-5   09큰뜻


우리는 지난주에 권위와 순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권위란 것은 소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권위의 원천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위가 개입된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권위를 부정하거나 대항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과 같다.


그 권위의 문제가 가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가정에서 엄연한 권위가 있다.

첫째는 부모의 권위다. 부모의 권위도 하나님이 주신 권위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권위를 위임하셔서 그 권위로 자녀를 양육하게 하셨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제일 중요한 자세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부모가 잘 난 부모, 혹은 좋은 부모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교에서 강조하는 효보다도 더 강력한 개념이다. 이미 유교의 철학이 무너진 우리 사회를 볼 때 부모에게 효를 가르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 가정에서 또 다른 권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남편의 권위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남자를 가정의 대표자, 지도자로 세우셨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있다. 아내들은 바로 그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3:1절도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했다.


'이와 같이'는 2:13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내 된 자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지위에 있어서 열등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른 가정생활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2. 아내들이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오늘은 그 문제를 집중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1절을 보면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는 중요한 말씀이 있다.


'도를 순종치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믿지 않는 남자들과 결혼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불신자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그 불신남편이 믿는 여성을 이런 저런 이유로 비방을 하는 그런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믿지 않은 남편 특히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결코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그런 남편들을 어떻게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최대의 기도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저는 우리 교회 자매들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다른 무엇도 아니라 남편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목사다. 이것이 지상과제다. 이것이 안 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남편을 구원해야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주님의 눈에는 남편도 잃어버린 영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 받지 않으면 지옥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 받아야한다.


2) 남편이 구원 받아야 행복한 가정생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몸만 하나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하나, 무엇보다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깊은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 남편을 구원해야 한다. 그래야 깊은 부부관계를 누릴 수 있다.


3) 자녀를 위해서다. 자녀를 믿음의 유산을 이어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데 아빠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렵다. 자녀를 위해서도 남편을 구원해야 한다.


4) 헌신된 신앙생활을 위해서다.

남편이 내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후원해 주고 지지해 주지 않으면 여러분은 마음껏 주의 일을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이 날개를 펴려면 남편이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껏 봉사할 수 있다.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물질적으로도 그렇다. 이렇게 중요한 이유들이 많은데 남편의 구원을 미루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일을 위해서 정말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죽어야 한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의로운 사람은 지하철역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고 자기가 죽기도 한다. 생전 한 번 보지도 못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도 바치는데 사랑하는 남편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내가 죽을 각오를 해야 하지 않겠다.


그런데 실제로 죽을 것 까지는 없다. 그런 각오만 가져도 된다. 그런 각오만 가지고 실제로 죽는 것은 자기 몸이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을 죽이면 뒨다. 내 자존심, 내 고집, 내 자아가 죽으면 된다. 그러면 남편이 살아나고 구원 받는 기적이 일어난다. 할렐루야! 오늘 이런 결단이 있기를 소망한다.


3. 오늘 본문을 주의 깊게 보자.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하면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할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한다. 바로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을 보고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우리가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1) 불신 남편을 말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로 말미암지 않고.....>  말로 아무리 복음을 체계적으로 설득적으로 전해도 남편들은 그것 때문에 믿지 않는다. 착각하지 말자. 설교 테이프나 좋은 신앙서적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으로는 안 된다. 말로 하려고 하면 도리어 말다툼이 될 뿐이다. 많은 경우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가 결국은 말다툼으로 끝나기 때문에 말은 도리어 우리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말로 설득하려고 하지 마라.

2)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을 감동시키고, 남편이 하나님에게 나오게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무엇이다? 우리의 행실이다. 우리의 행실을 보고 남편은 감동을 받고, 느끼고, 그래서 신앙의 결심을 한다는 것이다. 즉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은 우리의 행실이라는 것이다.


3)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실을 해야 남편의 마음이 움직이는가?

1절에 나와 있다.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했다. 그 순종의 행동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행동을 조금 더 깊이 묵상해 보자.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말과도 통한다.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면 남편에게 순종하지 못한다.


여기서 다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남편의 권위가 획득된 권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편이 내 기준으로 볼 때 훌륭한 인격을 소유했기 때문에, 혹은 많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권위에 순종한다는 뜻은 그렇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남편을 가정의 대표로 세워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순종하라는 뜻이다. 이 부분이 명확해야 한다.


남편이 훌륭하기 때문에 순종한다면 순종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남편이 훌륭한데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아내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할 때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가 어려움에도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순종하라고 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남편들은 우리가 자기와 다른 생각,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틈만 나면 흠을 잡으려고 늘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작은 실수만 해도 여지  없이 우리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비방을 잠재우려면 우리의 행실로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2:12,15). 그래서 우리의 행실 특히 순종의 행실이 중요하다.


4. 자매들은 남편들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야 한다.

남편들이 자매들에게 뭘 원하는지 좀 알아야 한다. 남편들은 다른 데서는 몰라도 적어도 가정 안에서 만큼은 자기가 인정받기를 원한다. 가정에서만큼은 자기가 리더가 되고 싶고, 머리가 되고 싶고, 존경 받기를 원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데 가정에서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고 무시를 당하면 견디지를 못한다. 거의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정도로 힘들어하는 것이 남자들의 속성이다. 그래서 자매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의 자존심, 권위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이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정말 지혜로운 아내들은 가정에서 남편의 권위를 존중하고 기를 살려주는 아내다. 신앙이 없는 아내들도 그래야 한다면 신앙을 가진 우리는 더 잘해야 한다.


5. 2절을 보자. 남편들은 믿음을 가진 우리들에 대해서 당장은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의 행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헬라어 단어는 '주의 깊게 관찰하다'는 뜻이다. 믿지 않는 남편들은 정말 주의 깊게 본다. <마누라가 믿는 다고 하는데 그 믿는 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우리의 삶을 아주 주의 깊게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남편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편들이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서 특별히 보는 것이 뭘까? 두 가지를 본다


1) 두려워하여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앤 포보'는  남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의 모습이다. 비 그리스도인 남편은 그리스도인 아내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인식하면서 그분을 두려워하면서 사는지 보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 정말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절대 함부로 하지 않고 조심조심하면서 남다르게 하면 남편들이 그런 모습을 통해서 잘은 모르지만 정말 하나님이 계신 모양이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질을 부리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을 하면 그들이 느끼기에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저렇게 행동할 수 있나?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가 안 되는 것이다.


2)정결한 행위

이것은 흠이 없고 깨끗한 '순결한 삶'을 의미한다. 당시 로마사회는 굉장히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회였다. 특히 상류사회였다. 얼마나 부패했는지 신부감을 맘놓고 고를 처녀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유독 믿는 처녀들은 너무 정결하게 살았기 때문에 안 믿는 상류사회 사람들조차도 믿는 처녀들 신부감으로 선호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남달랐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도 별 다르지 않다. 얼마나 성적으로 윤리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정결하게 순결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 그것이 도전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살펴보겠다.


< 결 론 >

  우리의 지상과제는 남편의 구원이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구원할 수 있을까? 정말 노심초사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해야 한다. 그 중에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1.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 주고 순종하라.

  존중해 주라. 세워주라.

2.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이라.

  남편들은 말로 전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고 전도가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라. 정결하고 순결한 행동을 보여주라. 그래서 모든 남편들이 다 구원을 받아 우리와 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충성된 일군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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