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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임호남 2009-11-04 추천 0 댓글 0 조회 236
                                          벧전 2:11-17   09큰뜻수요


지금까지 베드로는 성도들이 누군지를 이야기했다. 세상의 나그네, 거룩한 사람들, 거듭난 백성, 택한 받은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이것이 우리의 신분이다. 이런 것이 하나의 원리라면 이제부터는 그 원리에 맞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실천의 문제가 등장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앞에서는 하늘의 삶에 대해서 말했다면 이제부터는 땅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늘은 거룩하고, 정결하고, 완전한 곳이지만 땅은 어떤가? 거룩하지 못하고, 추하고, 모순이 많고, 아픔이 많은 곳이다. 우리의 신분은 하늘이지만 우리의 정확한 삶의 자리는 이 땅이다.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꿈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꿈속에서만 살면 안 된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무대가 어딘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현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잘못하면 이상론자들이 되기 싶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간격 때문에 갈등하고 힘들어한다. 그래서 늘 이상적인 곳을 찾아다닌다.


1. 영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굉장히 잘못된 영성을 배워왔다. 성경이 말하는 영성과는 거리가 먼 영성을 배워왔다. 진정한 영성이란 무엇인가? 기도 많이 하는 것? 성경 많이 읽는 것? 그것은 영성을 훈련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지 그것 자체가 영성이 아니다. 진정한 영성은 현실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사는가를 보면 안다. 기도도 많이 하고 말씀을 많이 보는데 현실에 부딪혀보니까 적응을 못한다면 진정한 영성이 아니다.

1) 우리 주님의 영성을 예로 들어보자.

주님이 갖고 있던 영성이 진짜 영성이다. 주님의 영성은 어떤 영성인가? 한 마디로 올라가는 영성이 아니라 내려가는 영성이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영성이다.


이런 뜻이다. 주님이 원래 머물던 천국은 어떤 곳인가? 모든 것이 완벽한 곳이다. 환경이 완벽하다. 죄와 질병이 없다. 아픔과 눈물이 없다. 완벽한 곳이다. 환경만 완벽한 것이 아니라 관계도 완벽하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까? 서로 너무 잘 통했다. 하나님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이고 예수님의 생각이 성령님의 생각이었다. 관계가 불편하거나 어색할 일이 없었다. 영적으로도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늘 예배와 찬양만이 충만했다. 황홀한 곳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살던 예수님은 그곳을 버리고 어디로 오셨나? 정반대의 환경으로 내려가셨다.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땅으로 내려 오셨다. 그런데 이 땅은 어떤 곳인가? 하늘과 정반대였다. 환경은 열악했다. 죄와 질병으로 가득했다. 아픔과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관계도 엉망이다. 정말 주님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주님과 수준이 맞는 사람이 몇 명이었을까?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주님 가까이서 주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제자들도 보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는지 모른다. 전혀 주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주님이 겸손하라> 하면 서로 누가 높은가 다투었다. 주님이 말씀을 전해주어도 <도대체 이게 무슨 뜻입니까?> 따로 물었다. 너무 대화가 안 되었다.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그래서 주님은 그 고독과 갈급함을 안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한적한 곳을 찾아 그 깊은 마음을 하늘의 아버지와 깊이 나누셨다. 때로는 밤을 새워가면서 대화하셨다. 거기서 기도의 영성이 나오는 것이다. 깊이 있는 기도, 주님과의 간절한 기가 나오는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이 땅으로 친히 찾아오셨다. 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였다. 문제와 고통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진정한 영성이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 이것이 주님의 영성이다.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세상의 부귀영화 다 버리고 세상의 가장 힘든 곳, 가장 먼 곳을 찾아가서 묵묵히 섬긴다. 이것이 진정한 영성이다.


교회 안에서도 은혜 받으면 나타나는 모습이 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한다. 가장 힘든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낸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현실이란 것이 중요하다. 현실 없는 신앙은 없다. 신앙은 현실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2. 그렇다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문제 많은 땅의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11절은 우리가 누군지 다시 한 번 복습한다. 우리는 “거류민과 나그네다”

거류민은 고향 아닌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그네는 잠시 어떤 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이 땅의 거류민과 나그네다.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어딘가? 천국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 잠시 이 땅에 머물고 있다.


잠시 지나가는 곳에 몸과 마음이 뺏겨서 주저 않아 버리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 심부름 보냈더니 지나가다가 재밌는 놀이에 마음이 뺏겨서 눌러 앉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세상이란 곳이 워낙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마음이 뺏겨버린다.  마치 요즘 신종플루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 동안 가능하면 이 땅의 죄에게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영향을 받지 않을까?


1)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11).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죄가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이 환경을 피할 수 없다. 피하려면 다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다가 우리 자체가 우리 안에 이미 죄에 대한 욕망이 가득히 있기 때문에 언제 세상의 유혹에 빠져버릴지 모른다.


마치 우리 속에 석유가 가득들은 통이 있는 것과 같다. 그 통에다 세상이란 성냥불을 한 번 던지면 우리는 한 순간에 확 불이 타 오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나? 우리 안에 있는 그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다. 제어하라는 말은 육체의 욕심을 처음부터 철저하게 통제하라, 계속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으라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가 계속해서 신경을 써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땅을 사는 동안에는 할 수 없다. 그렇게 해야 한다.


2) 왜 우리가 이런 욕심들을 조심해야 하는가?

그것들이 우리 영혼을 거슬러 싸우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단 예수를 믿으면 싸움이 시작 된 것이다. 어떤 싸움? 우리 욕심대로 살고 싶은 마음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이다(갈 5:  ).


아마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일단 이 싸움은 외면에서 드러나는 싸움이 아니라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이다. 눈에 보이는 싸움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싸움이다. 그런데 치열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게 될 때 나타나는 모습이 죄라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싸움은 바깥에서보다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서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생각에서부터 잘못된 것을 차단해야 한다. 모든 죄는 잘못된 생각에서 출발한다. 생각에서부터 바로 잡지 못하면 행동으로까지 영향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눈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생각들을 한다. 그 중에는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해로운 생각들도 많다. 예를 들어서, 비관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낙담, 더러운 생각.......이런 생각들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올라온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나는 안다. 내 마음이 영적인 전쟁터다.


그런데 생각은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생각 때문에 삶이 힘들어 지기도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실제로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죄는 생각에서부터 다스려야 한다. 뿌리를 잘라야 한다. 뿌리의 죄를 근절하라. 생각에서부터 잘라라. 계속 생각을 방치하지 말라. 통제하라. 그래야 실제로 행동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다.


3. 이 땅에서 좋은 행실을 가져야 할 이유(12)

우리가 내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면 외적으로 좋은 행실이 나타나게 되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좋은 행실을 가져야 하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아니다. 12절은 말한다.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다. 중요한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 가장 고상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한다.


1) 먼저 세상은 어떤 곳인가?

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악행 한다고 비방한다.

세상의 습성이 그렇다. 어찌했든지 간에 믿는 자들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기회만 생기면 우리를 비난하려고 한다. 언제나 그렇다.


② 그런데 이것을 아니라고 말로 해봐야 별로 설득력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착한 행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말을 못한다.


③ 이런 착한 행실이 좋은 점 하나는 그렇게 우리를 비방했던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면 그 때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와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자기의 내면을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잘못을 보게 되는 것이다.


④ 그리고 그 최종 열매가 뭘까? 그들도 잘못을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마태 5:16절은 뭐라고 말하나?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 결 론 >

1.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간다. 현실을 피해갈 수 없다. 진정한 영성은 현실 속에서 드러난다. 주님의 영성을 닮아가자.


2. 우리의 현실은 죄와 유혹이 가득하다.

우리 안에도 육체의 욕망이 활활 타오른다. 우리가 통제하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른다. 늘 조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특히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3. 그렇게 살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가능하다. 세상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착하고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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