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성장(벧전 2:1-3)
신앙의 두 날개는 기도와 말씀이라고 했다. 두 개가 함께 있어야 건강한 신앙으로 성장한다. 늘 깨어 기도해야 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해야 한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두 날개 중 한 날개인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지난주에는 말씀의 역할에 대해서 나누면서 특별히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고 했다. 그 말씀이 바로 영원한 씨라고 했다(1:23-25). 거듭날 때 우리는 영원한 말씀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에 심어진 것이다.
씨앗의 특징이 있다.
첫째, 씨앗에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 작은 것 안에 엄청난 생명이 담겨 있다. 둘째, 씨앗은 자란다는 것이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씨앗은 자라게 된다.
건강한 신앙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그 안에 생명의 씨앗이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이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성장하기 성장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1. 버려야 한다.
성장하기 위해서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몸에 병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건강할 수 없고 자랄 수 없다. 질병이 있으면 증상이 있다. 이상하게 몸이 아프고, 약하다. 계속 몸이 힘들다. 그러면 의욕도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게 된다.
신앙생활도 꼭 그렇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는 데도 자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름대로는 노력하는데도 성장이 없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성장을 가로막는 방해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해요소를 잘 끊어버려야 발전하게 된다.
성장의 방해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늘 힘들다. 병이 있으면 몸이 힘든 것처럼 영적으로도 병이 있으면 늘 영적으로 힘이 든다. 영적인 의욕이 별로 없다. 결국 신앙생활이 점점 시들어지게 된다. 그래서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를 빨리 발견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말씀을 사모하라>고 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것을 버리라고 했다. 이 버림이 없으면 자람도 없다.
뭘 버려야 하나?
1) 악독 - 악독이란 선한 것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것은 거룩하고 선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악을 행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악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
2) 기만 - 의도적으로 속이거나 거짓말로 호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외식 -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속은 이기적인 욕심이 있으면서도 겉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4) 시기 -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이것은 특히 성도들 간에 비교의식 속에서 오는 불만족과 분노를 유발한다.
5) 비방 - 거짓말, 잡담, 소문 퍼뜨리기 같은 것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명성을 손상시키고 망가뜨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너무 재밌어 하는 것이 바로 남을 험담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유혹에 빠진다. 우리의 대화가 남을 비방하는 쪽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그런 말을 하고 있다면 이미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참된 성도는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우는 일에 힘을 쓴다.
“남의 험담을 당신에게 늘어놓는 사람은 반드시 당신에 대해서도 남에게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이다”(스페인 격언) 험담하는 사람에게 동조하지 말고 도리어 조심하라. 우리는 이런 행위들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신앙이 성장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강 저편에 사는 사람이 강 이편 친구 집에 놀러 와서 밤늦게까지 술을 먹다가 만취가 된 상태에서 다시 강 저편으로 자기 집으로 가려고 자신이 타고 왔던 배에 올라서 노를 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밤새도록 노를 저었는데 아침에 날이 밝아서 보니까 배는 꼼짝도 안 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더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배를 묶어 두었던 줄을 풀고 노를 저어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줄을 풀지도 않고 열심히 노만 저었던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배는 조금도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적인 습관, 잘못을 버리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노력은 하지만 성장이 없다. 성장하려면 내 성장을 가로막는 발목을 붙들고 있는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한다. 뭘 끊어 버려야할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결단하라.
2. 사모하라
건강한 아이의 특징이 있다. 뭔가 다르다.
1) 건강한 아이의 특징 중에 하나는 자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 식탁 옆 벽은 낙서가 좀 되어 있다. 다 큰 아이들 집에 웬 낙서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딴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키를 재고 표시해 놓은 낙서다. 그 벽을 보면 아이들이 날짜별로 자기의 키를 재어놓은 표시들이 많다. 도원이나 은택이가 한참 클 때는 수시로 키를 재었다. 요즘은 주원이가 수시로 키를 잰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랐으면 대게 기뻐한다. 자기는 좀 컸다고 생각하는데 변화가 없으면 실망한다. 자라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다면 자라고 싶은 욕구가 있어야 한다. 내 신앙의 키가 얼마인지를 수시로 체크해 보아야 한다. 성장이 없다면 안타까워야 한다. 더 크고 싶어야 한다. 그런데 성장하려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장의 장애요소를 먼저 제거하고 그 다음에는 성장을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먹어야 한다.
2) 건강한 아이의 특징 두 번째는 잘 먹는다는데 있다.
건강한 아이는 자꾸 먹으려 한다. 먹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운다. 그런데 아이가 약하거나 병이 있으면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또 잘 먹지 않으면 건강해 지지 않는다. 성장에 어려움이 있다. 발육이 느리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으로 건강해 지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우리의 양식이 뭔가? 말씀이다. 말씀을 먹어야 건강한 성도 된다. 먹기 위해서는 듣고, 읽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암송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먼저는 들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건강한 성장은 말씀을 듣는 일부터 해야 한다. 듣다보면 자람이 있다.
또 건강한 성도라면 말씀을 듣고자 하는 욕구, 사모함이 있다. 어떻게 하든 말씀을 먹고자 열망한다. 자신의 영적인 건강을 체크해 보려면 말씀에 대한 이런 거룩한 욕구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된다.
3) 2절을 보면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했다.
갓난아이들을 보면 엄마의 젖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모른다. 마치 그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젖을 사모한다. 그리고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모른다.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 애절하게 운다. 그런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성도는 이런 욕구가 있다. 말씀을 들어도 돌아서면 또 듣고 싶고 영적으로 허기가 지고, 계속해서 먹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으라고 했다.
먹고 싶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주워 먹으면 그 중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독초도 있다. 말씀을 들어도 건전하고 바른 말씀만 들어야 한다. 한 번 잘못된 교리를 들으면 영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바른 길로 돌아오기가 힘들다. 아무 곳에서 아무 말씀을 듣지 말라. 부정적인 말도 조심하라. 불신앙의 말도 조심하라. 잘 듣고 먹어야 한다. 영적으로 유익이 없는 것은 듣지 말라. 순전하고 깨끗한 말씀만 들으라. 바른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으면 믿음은 자라게 된다. 듣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좋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잘 들으면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게 된다.
4) 3절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의 맛을 보았는가?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세상의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예수 믿는 것이 그런 세상의 재미와는 다른 색다른 재미, 거룩한 재미와 기쁨이 있는 것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 맛을 포기하지 말라. 더 깊이 경험하라. 더 깊은 맛을 경험하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더욱 사모해서 영적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는 신앙이 되라. 우리의 주님의 맛을 더욱 깊이 알아갈수록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은 시시해질 것이다. 맛이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은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잠시 잠간이다. 그 때는 재밌는데 돌아서면 허무하다. 그래서 또 다른 재미를 찾아야 하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더 센 재미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 그렇게 살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삶의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지 말라.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라.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어리석게 살아가야만 하겠는가? 앞을 향해서 전진만 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 기도 >
1. 성장하는 신앙이 되길 원합니다.
1) 버릴 것을 버리기 원합니다. 끊을 것을 끊기 원합니다.
2) 갓난 아이들 같이 말씀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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