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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사랑
임호남 2009-09-30 추천 0 댓글 0 조회 237

사랑과 공의(벧전 1:17-22)   09수요


하나님을 대표하는 두 가지 성품이 있다. 공의와 사랑이다.

이 둘은 겉보기에는 대조되는 성품이다. 공의는 죄와 잘못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한다. 하나님에게는 편법은 안 통한다. 속이는 것도 안 통한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보시고 정확하게 심판을 하신다. 이것이 공의다.


반면 사랑이 하나님의 대표적이 성품이다. 사랑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 희생, 섬김, 은혜.....이런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성품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릴 너무 사랑하신다.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신다. 부모보다, 친구보다, 애인보다....누구보다 우릴 사랑하신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성품이 서로 반대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 통한다. 연결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공의가 없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공정하지 못한 사랑일수도 있다. 잘못해도 야단치지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잘못했을 때는 분명하게 잘못했다고 야단을 쳐주어야 진짜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 책망도 사랑의 일부분이다.


하나님이 공의롭기만 하고 사랑이 없다면 무서운 분일 것이다. 누구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롭지만 한 없이 사랑이기에 우리는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다. 둘 다 하나님의 성품이다. 오늘 본문도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성품이 나온다.


1. 하나님의 공의(17)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라 했다(17). 다시 말하면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심판의 종류

① 구원의 심판

이 심판은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심판이다. 믿는 자는 천국으로 가지만 믿지 않는 자는 영원히 지옥으로 가는 구원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심판이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심판을 받지 않는다.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계속 믿지 않은 가운데 살면 결국은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② 상급의 심판

우리 믿는 자는 구원에 대한 심판에서는 제외 되지만 한 가지 심판이 있다. 그것은 상급에 대한 심판이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을 위해서 바르게 살았다면 상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삶이 없다면 상이 없을 것이다. 도리어 책망이 있을 것이다.


2) 심판의 기준

무슨 기준으로 심판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준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대비를 한다. 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맞춤식으로 준비를 할 수 있다.


① 외모로 하지 않는다.

외모로 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외적인 조건을 보고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의 미모, 학력, 집안, 능력, 재산....이런 것을 기준으로 해서 심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이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무슨 기준을 판단하는가?


첫째, 미모로 판단한다. 외모 지상주의다.

잘 생기지 못하면 거의 죄악 수준으로 생각한다. 미모가 안 되면 취업도 안 된다. 유치원 교사도 못한다. 아이들도 미모가 안 되는 선생은 싫어한다. 알바도 안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성형천국이다.


고등학생만 되도 벌써 쌍꺼풀 수술, 주근깨 수술....대학을 들어가도 취업이나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 더 심하다. 웬만한 곳은 다 손을 댄다. 옛날 친구가 봐도 못 알아 볼 정도다. 하나님도 못 알아보실지 모른다.


그 뿐 아니라 돈 없으면, 능력 없으면 대접을 못 받는다. 가정에서조차 능력이 없으면 무능한 남편, 무능한 아빠라고 무시를 당한다. 한 인격체를 외적인 조건으로 심판을 해 버린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외모로 판단하셨다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다 기준에 모자랄 뿐이다.


② 하나님은 행위로 판단하신다.

행위로 판단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으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삶의 내용을 보겠다는 것이다. 삶의 전 과정을 보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얼마나 많이 성취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나를 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행동을 보고 계신다. 정확하게 보고 계신다. 사람을 못 봐도 하나님은 보신다. 특별이 주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지를 보신다.

(요일 2:15-17)『[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3) 하나님이 보시는 기간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를 보시는데 언제적 우리의 행위를 보시는가? 천국 가서의 행위를 보시지 않는다. 이 땅에서 살 때의 행위를 보신다. 그래서 17절은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을 지내라>고 했다.


나그네로 있을 때는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나그네라고 했다. 잠시 이 세상에 머물 뿐이다. 잠시가 지나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을 평가하신다. 그 때 후회한들 늦었다. 예수 믿는 것도 이 땅에서 믿어야지 죽어서는 기회가 없다. 살아 있을 때 기회를 살려야 한다.


마찬가지다. 이 땅의 나그네의 삶은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는 시간이 아니다. 할 수 없이 버티는 시간도 아니다. 믿는 자에게는 너무 중요한 시간들이다. 왜 중요한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게 서지 않도록 준비하는 시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의 시간들인 셈이다. 무슨 기회? 하나님 앞에 충성할 기회, 봉사할 기회, 주님 뜻대로 살 기회를 주신 것이다. 맘대로 살아도 좋다고 주신 시간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함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평가와 심판을 의식하면서 조심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지 않도록 살라는 것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아니라 <일하세 일하세 젊을 때 조금이라도 주를 위하여 일하세>로 불러야 한다. 

기억하자! 이 세상의 삶은 금방 지나가고 주님 앞에서 평가받을 때가 있다.


2. 하나님의 사랑

  이제 하나님의 성품의 다른 면인 사랑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 뭘까? <예수님의 십자가>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깊이와 크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 위해 주시기까지 우릴 사랑하신다.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어떻게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까지 우릴 사랑하신다.


  18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릴 대속하셨다고 했다. 대속이란 말은 값을 지불하고 구원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 기준이 뭔가? 하나님의 공의처럼 우리의 외모를 보고 구원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외모가 뭔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사람의 미모, 신분, 학력, 능력....이런 것들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런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시거나 외모로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잘 나고 똑똑한 사람은 구원하고 못나고 무능한 사람은 다 심판하시고 지옥으로 보내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면서까지 우릴 사랑하셨다.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보자.


18-19절을 보자.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1) 우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은 무엇일까?

  주색잡기다. 우리 조상들이 주로 한 일은 술, 여자, 노름, 도박, 무지, 게으름...거기다가 우상숭배를 하면서 하늘과 달과 자연을 숭배하면서 살았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화다. 헛된 행실이다. 그런 행실대로 살면 결국 그 인생은 헛되고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행실들이다.


아마 우리도 조상들의 그런 문화 속에서 계속 살았다면 결국은 멸망을 받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거룩하고, 순결하고, 진실하고, 정결하고, 고상하고, 성실하고...이런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가능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피를 흘리셨다. 그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씻어주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그 고결한 피를 보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다. 예수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이기는 능력이다. (죄에서 자유를...)


이렇게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셔서 그 피를 흘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결코 함부로 살 수 없을 것이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 결 론 >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의 공의를 먼저 생각해보고 그 다음에 사랑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책망 받지 않도록 살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서 자신의 피를 흘리시기까지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그 사랑이 너무 고마워 우리는 함부로 살면 안 된다.


그게 진짜 믿음이다. 심판이 무서워 죄짓지 않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랑에 감사하다면 정말 주님 앞에서 기쁨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그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는 칭찬 받는 성도의 삶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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