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물을 내리라(눅 5:1-11) 나의 등 뒤에서, 왜 나만 겪는, 하나님 한 번도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좌절을 하게 된다.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도전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 실패의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모두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이다. 그래서 좌절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의지만 가지고는 그것이 잘 안 된다. 주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주님은 실패와 낙망 속에 있는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다시 일어서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일어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말씀을 듣는 사람들 >
1절을 보면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 당시 샛별처럼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다.
그 무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온갖 사람들이 다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남여노소, 병든 사람, 외로운 사람, 상처 받은 사람 혹은 그곳에서 내 인생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구경삼아 호기심으로 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다.
2, 그런데 그런 무리와 관계없는 듯 한 발 비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굴까? 어부들이었다. 2절을 보면 그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고 했다.
<어부들의 일상>
여기서 잠시 어부들의 일상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어부들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저의 모교회가 바닷가에 있었는데 모교회에는 고기를 잡는 어두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그분들의 생활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바다로 나가는 시간은 보통 밤늦은 시간이다. 밤 12시나 되어야 나간다. 그리고 밤새 고기를 잡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은 새벽이다. 새벽에 돌아오면 잡은 고기를 내리고, 배를 씻고, 그리고 그물까지 씻고 정리를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다.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었다는 것은 밤새 수고한 그들의 하루 일과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물을 씻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뭘까? 밤을 새워가면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의 간절한 소망은 빨리 그물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밤새 쌓인 피로를 푸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 그들 옆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을 선포해도 그들 귀에는 안 들어오는 것이다. 말씀을 들을 여유가 그들의 마음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묵묵히 자기 일에만 몰두를 하는 것이다.
어부들의 모습이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 아침 일찍부터 밤이 늦도록 부지런히 일을 한다. 아빠들은 아빠들대로, 주부들은 주부들대로 아이들과 씨름을 하고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공부와 씨름을 하면서 모두가 바쁘게 산다. 다들 바쁘게 사느라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안 들어온다. 교회와 무관하게 살아간다. 집 문을 열고 나가면 수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 교회가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예수님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별 고민 없이 그저 내 인생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예수님과의 만남>
그런데 그런 내 인생에 예수님이 불현듯 찾아오실 때가 있다.
내가 교회에 나오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는데,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뜻하지 않는 장소와 뜻하지 않는 시간에 예수님과 연결될 때가 있다.
3절을 보면, 예수님이 그물을 씻는 어부들의 배 중에서 한 배에 오르셨는데 그 배가 누구의 배일까? 시몬(베드로)의 배였다. 갑자기 예수님이 내 인생에 불쑥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님과 무관한 내 인생이 예수님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도의 배에 오르시더니 베드로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유는 무리들에게 말씀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배에 오르시더니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해 달라는 예수님의 요청을 들은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을까? 기뻤을까? 아니다. 조금 당황히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살짝 짜증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 일에 바쁜데 괜히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워낙 거룩한 분이시고,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영적 권위를 느꼈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주님의 요청에 순종을 하게 된다.
배에 오르신 주님은 그 배 위에서 호숫가에 모인 청중들을 향해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시몬은 어땠을까? 아마도 썩 기분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뚱해서 묵묵히 자기 일을 계속했을 것이다. 아니면 안 듣는 척하면서 슬쩍슬쩍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베드로의 간절한 바람은 내 배 위에 갑자기 올라온 이 선생이 빨리 설교를 마치면 집에 가서 좀 쉬어야 하겠다. 막걸리라도 한 잔 하고 푹 자야 하겠다! 그 생각이 더 간절했을 것이다.
4, 그런데 상황은 베드로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말씀을 마치신 주님께서 이번에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황당한 요구였다. 왜?
1) 지난 밤 밤새작업을 했다. 너무 몸이 피곤하다.
2) 그물까지 정리를 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
3) 특히 5절을 보면 지난밤에 밤새 수고했지만 잡은 것이 없었다. 오늘은 고기가 안 잡히는 날이다.
4) 고기는 밤에 잡히지 아침에 잡히지 않는다.
특히 자신은 수십 년간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다. 고기 잡는 전문가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이다. 굳이 직업을 말하라면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다. 수 십 년간 고기를 잡아온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예수님의 명령은 무모한 명령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다.
5,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몬의 대답이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내 경험과는 맞지 않지만, 상식과도 맞지 않지만, 내 마음의 상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몸과 마음도 피곤하지만 말씀에 내가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다. 그리고는 주님의 말씀대로 다시 배를 뛰워 깊은 데로 노를 저어서 다 씻은 그물을 다시 내렸을 때 6절을 보니까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이 그물이 찢어질 정도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고기가 그물이 들어왔으면 찢어질 정도였을까? 7절을 보면 급히 다른 배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고기를 채우는데 두 배가 거의 잠기게 될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만선의 기쁨인 것이다.
<우리의 살아온 삶>
여기서 잠시 지금까지 우리의 살아온 삶을 뒤 돌아 보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왔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다니지 않는 사람대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왔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몸만 교회에 올 뿐 실제 생활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어떻게 살아가나?
1) 하나님의 말씀의 방식보다는 내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2) 하나님의 가르침보다는 내 경험을 더 믿고 살아간다.
3) 내 상식, 내 힘으로 열심히 수고하면서 분주하게 살아간다.
열심히 애 키우고, 열심히 일하고,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 삶을 보면 점점 지켜가는 내 모습을 본다. 수고하고 애는 쓰는데 왠지 마음은 공허해 진다.
마치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돌아온 것은 텅 빈 그물뿐인 시몬처럼 우리 인생이 그렇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내 마음은 만족과 기쁨이 없다. 공허하다. 아무런 열매도 없다.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다시 습관적으로 또 그물을 내린다. 또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고기가 몇 마리 잡히기도 한다. 그러면 그것 먹고 또 잔다.
살다보면 가끔씩 재미있을 때도 있다.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가 또 다시 일상을 반복하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삶이 아닌가?
< 예수님과의 만남 >
그런데 그런 우리의 삶에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오신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내 경험과 지식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방식이다.
내 방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순종해 보라고 도전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말씀대로 순종해 보았더니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던 내 삶에 풍성한 열매가 생기기 시작한다. 차고 넘치는 기쁨이 생기기 시작하다. 텅 빈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씩 기쁨과 감사와 보람으로 채워지는 은혜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예수님과의 만남이요 주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의 축복이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가?
베드로의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닌가? 수고는 하지만 얻은 것이 없는 텅 빈 삶이 아닌가?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서서히 삶은 지쳐가고 희망도 없이 그냥 습관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이 다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지만 내 마음에는 <그물을 또 내린다고 뭐가 잡히겠나! 밤새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다시 던진다고 잡히겠나!> 하는 회의적이 마음이 가득하지는 않나? 혹은 아예 그물을 다시 던질 의욕조차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우리라 할지라도 다시 그물을 내릴 필요가 있는데 이전과 달라야 하는 것은 내 경험과 상식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는 것이다. 이전에 수 없이 실패했지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철저하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는 것이다. 어쩌면 단순한 방법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방법이 이 방법이다.
저의 목회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개척을 하고 지난 7년 간 만선의 기쁨을 기대하고 열심히 그물을 내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지켜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일까? 열심히 그물을 던지기는 했는데 많은 경우 내 방식, 내 경험, 내 생각과 감정으로 그물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잡힌 물고기가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열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만선의 기쁨은 아니었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방법은 주님의 방법이다. 내 방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주님의 방식대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는 것, 주님이 가라 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삶, 이 방식을 회복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만선의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 자기 발견 >
엄청난 고기가 잡힌 것을 보게 된 시몬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8절을 보면 그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한다. 왜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할까?
지금까지 베드로는 자기 경험, 고집, 생각에 똘똘 뭉쳐서 살아가던 사람이다. 세상의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사람이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왕이었고 주인이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기가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편협한 얼마나 추한 인간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질 때 그것은 그물이 찢어진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경험이 찢어지고, 그의 고집이 찢어지고, 자기 상식이 찢어진 것이다. 그럴 때 그 마음이 겸손해지고 주님을 자기 인생에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자신이 깨어져야 주님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깨어지면 그 때부터 주님이 우리를 쓰신다(10). 이제는 고기를 잡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나만 잘 먹고 잘 살까만을 생각하던 사람이 이제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까? 다른 사람을 섬길까를 고민하는 사람으로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 결 론 >
여러분의 인생은 어떤가? 만선의 기쁨이 있는가? 풍성한가? 기쁨이 충만한가? 보람과 만족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텅 빈 인생,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인가?
이제 결단하자! 계속해서 자기 방식, 내 고집, 내 경험으로 살아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 공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제 말씀대로 살자. 주님의 방식대로 살자. 그래서 텅 빈 인생이 아니라 가득 채워진 인생으로 참 된 만족과 기쁨이 있는 인생으로 살자. 다시 그물을 던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도 이제는 말씀에 의지해서 다시 한번 그물을 내리자. 그럴 때 주님께서 가득한 열매를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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