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1:1-14(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아울러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공의의 하나님이 성경에서 나타날 때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죄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둘째, 성경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모습은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모습이시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또는 이방인과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다루신다. 그래서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신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공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1. 그 땅의 문제(기근)
다윗의 통치기간 중에 그 땅에 기근이 삼년 동안이나 연이어 찾아온 적이 있다.
건조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삼년 동안 기근이 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성경에서 기근은 많은 경우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죄를 범할 때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대표적인 도구는 칼(전쟁, 북핵), 기근(경제적 어려움....), 온역(병, 플루엔자, 사스, ) 등이었다.(겔 14:21; 왕상 8:35. 왕상 17:1-7)
이런 국가적인 재난 앞에서 통치자 다윗은 왜 이런 기근이 왔는지 하나님 앞에 간구했다.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야 한다.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이 쥐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묻는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묻는가?
2. 하나님의 응답(기근의 원인)
다윗의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원인을 말씀해 주신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니라 사울의 죄 때문이었다.
사울의 죄가 무엇인가? 1절을 보면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사건일까요? 성경에는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2절을 보면 사울은 기브온 사람들을 자신의 통치기간 중에 학살했던 것이 분명하다.
잠시 기브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자. 여호수아 강해를 통해서 이미 기브온과 이스라엘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하나씩 정복해 가는 과정이었는데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가나안의 기브온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장해서 자신들은 가나안 사람이 아니라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싶다고 찾아온다.
그들의 정체를 알지 못한 이스라엘은 그들을 해하지 않기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만다. 그 이후에야 이 사람들인 가나안 사람들로서 자신들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미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기브온 사람들이 멸망을 면하고 이스라엘 사회에 편입이 되어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스라엘은 기브온 사람들이 거짓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성전에서 나무패며 물 깃는 하층민으로 살아가게 한다. 그런데 사울 시대에 2절을 보면. 사울 왕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에 대한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다”
무슨 말일까? 사울왕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이방인인 기브온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없애버리고 그 땅에 이스라엘 족속만이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사울이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서 열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열심은 잘못된 열심이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는 열심이다.
그들이 이방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땅에 살도록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이런 열심을 가리켜 잘못된 열심이라고 한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열심을 될 수 있다. 아무리 뜨거운 열심이라 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둘째, 이 열심은 하나님의 공의를 파괴하는 열심이다.
사울의 열심의 동기는 인종우월주의의 사상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 민족 외에 그 땅에 있는 다른 소수민족은 열등한 민족, 사라져도 좋을 민족이라는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인종차별주의가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 왔는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독일의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우월의식으로 유대인을 학살했고, 미국의 백인우월주의가 수많은 흑인들을 학살했고, 지금도 백인사회에서 소수민족, 유색인종이 차별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잘못된 모습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주로 동남아나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그들은 소수민족이고 뿌리가 없는 나그네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차별하고 있는지 모른다.
왜 그럴까? 그들이 우리와 피부가 다르고, 가난한 나라사람이라고 우습게 여기는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것을 아주 싫어하신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런 이방인과 나그네, 그리고 힘없는 고아와 과부에 대한 말씀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출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이었었음이니라.
옛날 너희도 어려웠을 때를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우리도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무시당했던 때가 있었다. 과거에 누가 한국을 알아주었나? 무시 많이 당했다.
(신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약자라고 재판이나 판결에 불이익을 당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약자를 억울케 하는 자는 하나님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이런 약자들을 섬기면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말씀은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반대로 가고 있다. 이런 외국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임금을 떼어 먹고, 일을 하다 질병을 얻어도 방치하는 그래서 도리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당하는 지금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들도 이런 관점에서 한 번 진지하게 원인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있다면 우리가 이런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이스라엘 왕이요 통치자인 사울은 이런 편협한 민족주의 또는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무고한 기브온 사람들을 살해한 것이다. 그 결과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다.
하나님은 그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살지 못하면 땅이 더럽혀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땅이 더럽혀지면 그 땅을 심판하고 그것이 심화되면 아예 백성들을 그 땅에서 쫒아내 버리신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 이 백성이 그렇게 불의로, 음란과 향락으로 이 땅을 더럽히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해 봉야 한다. 혹시 하나님이 이 땅을 심판하실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심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3. 다윗의 해결책
이런 모든 원인을 알게 된 다윗은 이해 당사자인 기브온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들의 의견을 묻는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했다.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 문제는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했다. 그래서 그들을 학살한 사울집 사람 중에서 7명을 뽑아 주면 그들을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다윗은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판단해서 사울의 자손 중에서 일곱을 뽑는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자손들은 예외로 한다. 왜냐하면 다윗이 요나단과 언약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자손들을 보호해주기로 약속한 것이 있기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제외하고 아야의 딸 리스바에서 난 자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의 아들 다섯을 뽑아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기게 된다.
4. 기브온 사람들의 해결책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목매어 달게 함으로 그들의 원한을 풀게 된다.
이 때 아주 감동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하는데 자신의 두 아들을 내어 주었던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옷을 입고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 까지 그 아들들의 시체를 내리지 않고 그 시체 앞에서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지키는 일을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여인은 자신의 아들들이 죽은 원인이 바로 사울의 죄 때문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울의 죄로 인해서 무고한 기브온 사람들이 죽고 그 때문에 이스라엘에 3년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 저주의 대가로 자신의 아들들이 죽게 되었는데 다시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야 그 죽음이 무의미한 죽음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가 내려 그 시체를 적시기까지 시신을 내리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이전에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찾아와서 일곱 명의 시신과 함께 사울의 가족묘에 안장을 해 주는 배려를 해 주었다. 그 결과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다시 비가 내리게 되었다.
< 결 론 >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공의롭게 이 세상을 통치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불의를 보고 계신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공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자.
우리 안에 남을 억울하게 한 일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풀어주도록 하자.
특히 우리나라 안에 있는 불의가 사라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특히 역대 7:13-14을 보자. [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 땅의 고통의 원인을 생각하며 회개하고 돌이키자.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을 고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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