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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각
임호남 2009-06-17 추천 0 댓글 0 조회 315

삼하 19:1-10(현실감각)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 역동적인 믿음이 되려면 조건이 있다. 그 믿음이 현실에 근거한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성경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믿음의 역사는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나?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그 때 그 상황 속에 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뒤에서는 중무장을 한 애굽의 군대가 달려들고 있고, 앞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홍해바다가 있다.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고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다. 성경의 거의 모든 기적들이 바로 그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믿음이란 것은 바로 그런 현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현실과 맞서 싸우지 않는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믿음이 허황된 믿음, 현실 도피주의적인 믿음이 될 가능성이 많다. 믿음은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겪는 현실은 무엇인가?  결코 행복한 현실이 아니다. 아프고, 고통 받고, 병들고, 죽고, 헤어지는 것이다. 이런 현실과 싸워나가는 것이 믿음이다.


1. 다윗의 현실(1)

다윗의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와 별 다르지 않다. 한 때 왕이었지만 지금은 쫓겨난 왕이었다. 한 때는 호화로운 궁궐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광야로 쫓겨난 사람이다. 친구들도 배신했고, 아들도 배신했다.

아마 다윗이 평생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아들에게 쫓겨나서 도망 다니는 이때보다 더 힘들었을 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아마 우리 중에서도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의 또 다른 아픈 현실이 있었다. 바로 아들 압살롬의 죽음이었다. 다윗은 비록 아들에게 쫓겨난 몸이지만 그 아들과 전쟁을 할 때 제발 죽이지는 말라고 부하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왕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부하 요압이 그 아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공들여 쌓았던 것을 잃고, 배신, 가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이별...이것이 우리가 매일 겪는 현실이다. 부인할 수 없다. 다윗만 겪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겪는 문제들이다.


1) 현실에 대한 다윗의 반응

이런 고통스러운 아픔을 겪은 다윗의 반응은 무엇인가? 슬픔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 아들의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지만 부모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너무 마음이 아팠다(18:33).


슬픔이 너무 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음식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하겠는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개인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만 현실이 아니다. 또 다른 현실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힘들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문제에만 골몰하게 된다. 그래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2. 다윗의 현실(2)

또 다른 현실은 무엇인가? 다윗은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지만 공적으로는 그 나라의 왕이라는 현실이다. 그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에게 적용을 하자면 우리는‘나’라는 개인적인 신분도 있지만 나는 ‘나’개인일 뿐 아니라 가정에서는 엄마요 아내라는 또 다른 위치가 있다. 그것도 현실이다.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도 위치가 있다. 그런데 내 개인의 아픔과 문제에만 빠져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 외의 다른 현실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개인의 문제로 인해서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윗도 그랬다. 다윗의 신하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지만 아무도 기뻐할 수 없었다. 왕이 자기 아들 죽었다고 슬픔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4절). 부하들은 다윗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다윗이‘아버지’라는 위치만 생각하고 왕이라는 위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다윗은 아들을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위기에 빠졌습니다(4-7).


요압의 충고가 맞는 이야기였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현실 때문에 자기감정과 연민에 빠져서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 감각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요압의 충고를 듣고서야 다윗은 정신이 들었다. 현실 파악을 제대로 했다. 그래서 자신을 추스린다. 


  비록 감정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추스렸다. 왜냐하면 자기감정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행동하는? 8절을 보면 백성을 만나기 위해서 성문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방에 숨어 있던 다윗이 다시 백성을 보기 위해서 공식적인 자리에 나온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대중 앞에 서기 위해서 다윗은 표정관리를 했을 것이다. 마음은 쓰리고 아프지만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서 얼굴에 화장도 좀 하고 겉으로 아주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을 겁니다. 그래야 백성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 앞에 나타나면서도 그 얼굴에 우거지상을 하고 있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어떻겠나? <왕의 얼굴 좀 봐! 나타나면 뭐해! 할 수 없이 얼굴만 보이는 거지! 진짜 속마음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은 아들에 가 있어! 죽자고 고생한 우리는 뭐냐! 아무 소용없는 짓이야!> 이러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힘들어도 현실을 생각해야 했다. 자신을 추슬러야 했다. 그리고 나라를 새롭게 일으켜야 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실감각을 되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털고 일어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은 현실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자칫 잘못하면 현실감각이 무딘 사람이 될 수 있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허상을 쫒을 수 있다. 믿음은 허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을 긍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파라다이스에 오지 않았다. 인간들의 세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함께 어울렸다. 아프고 병들고 문제 많은 이 세상 속에서 사역하셨고 그런 이 세상을 구원하셨다. 우리의 믿음의 현실이 바로 그런 겁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살고 있지 않다. 고통과 눈물이 있는 엄연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 현실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도 인정하십시요. 그리고 거기서 시작하십시요. 그게 믿음입니다.

 

3. 다윗의 현실(3)

마지막으로 아들의 죽음, 나라의 어려움이란 엄연한 현실 못지않게 다윗이 직시해야할 현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뭔가? 아들은 죽고 나라는 위태해도, 내 삶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영적 현실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현실이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에 관한 이런 일화가 있다.

루터가 종교개혁이 너무 힘들어서 하루는 지쳐서 집으로 들어왔더니 부인이 상복을 입고 있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누가 죽었냐>고 물었더니 부인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루터가 깜짝 놀라서 <하나님이 돌아가시더니 그런 불경스런 말이 어디 있소!>하고 부인을 나무랬더니 부인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당신은 마치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왜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느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그 때 루터는 크게 깨닫고 다시 용기를 내었다는 일화가 있다. 


여러분! 아무리 내 삶의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보다 더 명확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영적인 현실이다. 하나님은 돌아가시지 않았다. 세상은 뒤집어져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일어설 수 있다. 이것이 정확한 믿음의 현실이다.


< 결 론 >

여러분의 현실이 어렵다 해서 감정적으로 낙심하고 좌절하고 비틀거리는 현실감각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믿음은 그 어려운 현실을 이기고 싸워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계신다. 그분은 전능하시다. 그분이 우리 편이다. 이 믿음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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