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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붙드는 사람
임호남 2009-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230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삼하 18:1-9) 09.6.10.큰뜻수요


예루살렘에 입성한 압살롬은 오늘 밤에 다윗을 추격하자는 아히도벨의 전략보다는 시간 여유를 가지고 준비해서 다윗을 치자는 후새의 전략을 선택하는 잘못을 범한다. 이 때문에 다윗은 무사히 도망을 가게 된다(21-22). <오늘 밤에 추격해야 한다>는 자신의 제안이 거절되자 그 전략을 내세웠던 아히도벨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어 버린다(23).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 사람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다윗을 잡지 않으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의 승패는 이미 그 때 결정이 나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확실히 아히도벨이란 사람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탁월한 재능, 시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가진 이 사람의 생애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을까? 결국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선택하기보다 사악한 압살롬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볼 때 아히도벨은 재능은 탁월했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뭘까? 인격적 결함인 것이다. 품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탁월한 재능을 바른 곳에 쓰지 않고, 사악한 압살롬을 위해서 쓰려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잘못이었다.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성품 가운데 거룩함, 진실함, 정결함 이런 성품보다 사악한 성품들이 더 컸기 때문에 결국은 그런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1. 재능보다 중요한 성품

이런 것을 볼 때 재능 못지않게, 능력과 실력보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성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품이 나쁘면 결국은 나쁜 곳에 사용되어 진다. 예수님을 팔아버린 유다를 보자.


이 사람의 결국도 자살이었다. 왜 그런 불행한 결말에 빠지게 되는가?

그 사람의 성품 때문이었다. 유다는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된 사람이었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결국은 그런 탐욕과 거짓된 성품 때문에 사탄의 꼬임에 넘어 가서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일을 하게 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사람이 된다. 성품이 중요하다.


성품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선천적으로 좋은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후천적인 요소가 선천적인 요소 못지않게 성품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좋은 성품을 타고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점점 잘못된 성품, 예를 들면, 포악하고,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고, 무정하고, 폭력적이고,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는 그런 성품으로 점점 변질되어 간다는 것이다. 나쁜 짓을 지적하면 ‘그게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주신 좋은 성품을 잃어버리고 이상한 인간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그런 원인들 중에는 문화적인 요인들이 클 것이다. 컴퓨터 게임, 오락,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 혹은 또래 집단의 영향 등이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그런 환경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잘 조절해 주어야 한다.


< 정리 >

탁월한 재능이 있어도 성품이 나쁘면 나쁜 쪽으로 탁월하게 된다. 그래서     본인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된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실력이나 재능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품, 인격 개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잘못하면 우리 자녀들이 공부는 잘 하고, 좋은 대학은 가는데 품성이 망가진 이상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


2. 전열을 정비하는 다윗

안전한 곳으로 빠져 나온 다윗은 다시 전열을 정비한다. 어떻게?(1-2)

1)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고 군대를 세 무리로 나눈다. 

2) 삼분의 일은 요압에게, 삼분의 일은 아비새에게, 삼분의 일은 잇대에게 맡긴다.

3) 이렇게 해서 싸움에 나가는데 이 때 다윗은 군사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나 한다. 뭘까?(5). 젊은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이지는 말라는 것이다.


적에 대해서 너그럽게 대해 달라는 말은 목숨을 건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은 단어다. 특히 압살롬이 누군가?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아들이면서 반역자다. 그 때문에 다윗과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너그럽게 대해주라고 부탁을 한다.


이것을 볼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뭔가?

1) 다윗은 이미 압살롬을 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2) 그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 적대적인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철모르고 어린 자식으로만 보는 것이다.

3)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윗의 영성이 회복되면서 그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윗이 죄를 짓고 비틀거릴 때는 그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었다. 형을 죽이고 도망을 갔던 압살롬을 다시 불러놓고서도 얼굴을 보지 않았다. 대화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무정하고 싸늘했던 것이다. 그랬던 다윗이 하나님의 연단을 받으면서 다시 영성이 회복되는데 그 증거 중에 하나가 차가운 마음이 따뜻한 마음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이 다윗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33절을 보자.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의 반응이 뭔가? 마음이 심히 아파 통곡했다. 감정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이 영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는 감성과 지성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통치하실 때는 우리의 지성과 의지만 통치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까지도 통치하길 원하신다. 감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랑의 감정이다. 특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면 감정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는데 바로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면 왠지 사람들을 사랑해 주고 싶고, 품어주고 싶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상태가 나쁘면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거부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싫은 것이다. 용서하기 싫은 것이다. 계속해서 냉정하게 대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그런 감정상태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또 하나의 불신앙이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이상하게 내 마음이 부들부들해져서 다 용서가 되고, 다 포용이 된다. 사랑이 영성의 척도다.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서 사랑하라 용서하라 말씀하실 때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기 바란다.


< 정 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도하라, 기도하라 이런 것만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에 대해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계속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우리는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불순종하는 것은 자기 고집이며, 완고한 마음이다. 그걸 내려놓고 순종하는 것은 영성이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온전한 인격과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서적으로도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순종의 결단이 있길 바란다.


3.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 안에서는 우연이란 없고 모두가 필연이란 말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인과 나라와 우주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연이란 말은 그야 말로 하나님을 배제하고 생각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없이 어떤 일을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이란 없고 모두가 필연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압살롬과 다윗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압살롬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 같은데 결국은보면 역사는 압살롬의 편이 아니라 점점 다윗 편으로 흘러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군대를 가진 압살롬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넓은 들판에서 싸우지 않고 도리어 수풀에서 전쟁을 한다(6). 당시 에브라임 수풀은 짙은 숲과 구덩이가 도처에 있고, 좁은 계곡과 가파른 벼랑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전쟁하기에는 나쁜 곳이었다.  그 결과 8절을 보면 압살롬의 군사들이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전투에서 죽은 것보다 지형지물 때문에 벼랑에 떨어져 죽거나 구덩이에 빠져 죽거나 하는 이런 외적인 요인으로 엄청난 군사들이 죽은 것이다.


또 하나 압살롬의 죽음이다. 너무나 허무하게 죽는다. 압살롬은 원래 머리가 긴 것으로 유명했는데 노새를 타고 달리다가 그 긴 머리가 수풀의 나무에 걸려서 노새는 가버리고 몸만 나무에 매달려 버린 것이다(9).  결국 압살롬은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요압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14-15). 이렇게 해서 결국은 압살롬의 반역은 끝이 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느냐 하면 압살롬은 힘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서 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도와주시니까 점점 역사가 다윗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동일하게 최후의 승리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사람에게 가게 된다. 처음에는 악인이 잘 되는 것 같고, 승리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은 의인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승리한다. 이 믿음을 붙들기 바란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멀리 보면 결국은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이 마지막 승리자가 될 줄 믿는다.


< 정리 >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지금도 역사하신다. 특히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이다. 우리 삶에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섭리와 필연이다. 믿음으로 멀리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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