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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
임호남 2009-05-27 추천 0 댓글 0 조회 276

까다로운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삼하 16:1-14)   09.5.27큰뜻


다윗왕이 계속해서 도피를 하는 길에 이번에는 시므이란 사람을 만난다. 이 사람은 사울왕의 친척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나타나서 도망을 가는 다윗을 향해서 저주를 퍼붓는 것이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니까 계속해서 저주를 했다고 했다.

13절을 보자.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계속해서 저주하고 돌을 던졌다.


1) 무슨 말로 저주했나?(7,8)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피를 흘린, 살인한, 나쁜 인간아 꺼져라, 꺼져버려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네가 이렇게 벌을 받는 것은 네가 사울집안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에게 벌을 주는 거야.


이런 악담을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다윗을 저주했다고 했다. 아마도 오늘 본문에 그 내용이 다 나와 있지는 않겠지만 도망가는 다윗을 향해서 <망해라. 돼져라, 벼락 맞아 죽어라> 이런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저주와 욕설을 퍼 부었을 것이다.


사람이 제일 참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말이다. 말도 그냥 말이 아니라 모욕적인 말, 비웃는 말, 저주의 말...이런 말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리고 가장 우리 마음에 오래도록 상처를 남기는 것도 말이다. 그것도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따라다니면서 내 앞에서, 내 뒤에서 그런 저주의 말을 쏟아놓을 때 정말 견디기 어렵다. 미처 버릴 것 같다.


여러분에게 그런 고통이 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 여러분만 보면 악담을 한다. 그렇게 험한 말을 한다. 한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다.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안 만나도 뒤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한다. 그런 사람이 집안에 있을 수도 있다. 시부모일 수도 있고, 시누이일수도 있다. 이웃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상사일 수도 있다. 


2) 어떻게 저주했나?  

저주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내용 못지않게 우리에게 영향을 크게 끼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시므이를 보라. 어떻게 저주하는가?

- 앞에서도 보았듯이 계속했다고 했다. 따라가면서 했다고 했다.


- 그 상황이 중요하다. 다윗은 지금 도망가는 중이다. 그것도 아들에게 쫓겨 도망가는 중이다. 너무 부끄럽고 고개를 못 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뒤에서 따라오면서 저주를 퍼 붓는 것이다.


- 뿐만 아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까지 던졌다(6, 13).

유대인들에게 있어 돌을 던지는 것은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을 때 하는 행동이다. 예를 들어서 나병환자가 접근할 때 돌팔매질을 해서 돌이 미치지 않는 거리까지 ?아내는 것이 유대인의 습관이다. 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죽어야 될 사람을 향해서 돌을 던졌다. 지금 도망가는 다윗을 향해서 돌을 던지는 것은 마치 개를 ?듯이 ?아내는 최대의 모욕적인 일인 것이다.


- 말과 행동 못지않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표정이다.

시므이는 저주의 말을 퍼부을 때 그 표정이 어떠했을까? 경멸, 비웃음,그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표정 또한 잊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시므이가 다윗을 향해서 한 행동이다.

 

3) 왜 저주했나?

잘못된 피해의식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이 사람은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된 것이 모두 다윗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다윗이 사울에게 해를 끼친 일은 조금도 없다. 도리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몇 번이나 용서해주고, 사울이 죽었을 때 누구보다 슬퍼했고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까지 가두어 들여서 왕자처럼 대우해주었다. 그러나 사울집안이 잘못된 것이 다윗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시각이 잘못되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던 그 원한과 미움이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는 감히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윗이 쫓겨나니까 이 때다 싶어서 자기의 마음에 있던 것이 다 드러나는 겁니다. 그러나 시므이는 결국 이 행동 때문에 스스로의 무덤을 파게 됩니다. 다윗이 영원히 쫓겨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다시 회복이 되기 때문이다.


4) 다윗은 어떻게 반응하나?

이제 마지막으로 시므이의 이런 저주에 다윗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자.


먼저 다윗의 신하 아비새의 반응을 보자(9). “죽은 개가 어떻게 내 왕을 저주하게 나 둡니까? 제가 가서 이 자의 머리를 단칼에 배어버리겠습니다”


신하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대답하나?

① 10절, 그가 그렇게 나를 저주하는 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 하신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시켜서 그 사람이 하는 것인데 내가 감히 <네가 어떻게 나를 이렇게 저주할 수 있느냐>고 따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1절을 보면 <하나님이 하나하신 일이니 계속 저주하도록 놔두라>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신앙이 많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다윗은 나를 저주하는 상대의 말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나?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저주하는 그 사람의 말, 그 사람의 행동, 표정...이런 것을 보면 분노하고, 열을 받고, 끙끙 않아 누워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도리어 상대방의 저주의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저주의 음성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믿음이 회복되면 이런 은혜가 있다. 영안이 열리면 이런 은혜가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날 때, 어떤 사람을 통해서 고통을 겪을 때 그 문제와 그 사람의 드러나는 모습만 봐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가 힘들어 진다. 우리는 이 문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하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이 자신을 연단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상대가 나를 저주하고, 비웃고 별 짓을 다해도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 것이다. 초월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② 계속된 다윗의 반응을 보자(12절).

  <혹시 하나님이 나의 원통함을 아시고, 이렇게 모욕과 멸시를 받는 것을 아시고, 오늘 내가 받는 그 수치, 저주, 모욕 때문에 하나님이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실 줄 어떻게 알겠느냐!> 이 믿음이 다윗에게 있었다. 어떤 믿음인가?


① 오늘 이 상황을 누가 다 아신다. 하나님이 다 알고 있다. 누가 다 보고 있다. 하나님이 다 보고 있다. 하나님이 다 알고 있고, 하나님이 다 보고 있다는 것이다.


② 하나님이 갚아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온갖 수치와 모욕과 저주의 말을 사람에게 듣지만 하나님이 내가 받는 그 수치와 모욕을 언젠가 다 보상해 주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그 수치와 모욕을 참았기 때문에, 소화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후에 내 인생에 큰 축복을 주실 줄 믿는다는 것이다.


이걸 볼 때 다윗의 믿음이 정말 회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이 없이 어떻게 이런 생각,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믿음의 눈이 필요하다. 믿음의 언어가 필요하다.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고난과 문제에서 승리한다(*시편 3편).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대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칼에는 칼로 복수하는 경우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아비새 같은 사람들이 쓰는 방법입니다. 아비새는 저 사람이 나를 저주했으니 나로 내 힘으로 보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쓰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는 겁니다.


세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방법입니다.

오늘 다윗이 취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12). 이 방법이 진짜 승리하는 방법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인간관계오는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는가?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세 번째 방법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상대의 말, 행동, 표정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 내가 당하는 이 고통, 아픔을 다 알고 보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고통 아픔을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다윗처럼 믿음의 방법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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