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낮추실 때(삼하 15:13-36) 09.5.19
다윗의 생애를 보면 굴곡이 있다. 올라갈 때가 있었고 내려갈 때가 있었다. 그런데 다윗의 신앙의 상태를 살펴보면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신앙적으로 더 살아 있었다.
(다윗의 생애)
- 목동으로 있을 때 : 목동은 비천한 직업이다. 소년이었다. 집에서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광야에서 주로 생활했다. 세상의 주목과 관심을 받지 못할 때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은 광야에서 깊은 묵상을 배웠다. 묵상훈련을 했다. 찬송을 배웠다. 수금을 연주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했고, 그 찬양이 영성이 있어서 마귀도 물러갔다. 광야에서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기도하고 대화하는데 보냈다. 영적으로 살아 있었다.
그걸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그 광야의 영성이 언제 드러났나? 우연히 전쟁터에 갔다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보았을 때 다윗은 견딜 수 없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그 거인을 쓰러트리고 말았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은 충격 받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다윗에게 그런 믿음의 실력이 있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학 있었기 때문이다. 낮은 자리에 있을 때 그의 영성은 살아 꿈틀거렸다.
-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출세해서 이스라엘의 장군이 되고, 왕의 사위가 되었다. 세상적으로 성공을 했다. 그런데 그 때는 광야 때처럼 기도하고 찬송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늘 전쟁하러 다녀야 하고, 정치를 해야 하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생활을 해야 했다.
-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왕의 미움을 받아서 광야로 도망을 다니게 되었다. 시편을 보면 시들이 대부분 이 때 경험을 배경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다시 다윗의 영성이 회복이 된다. 깊은 기도가 있었다. 깊은 묵상이 있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의지하는 신앙이 회복이 된다.
- 그러다가 다시 어느 날 출세를 한다. 왕이 되었다. 모든 것을 다 가졌고, 삶이 갈수록 안정되고 평안해졌다. 그런데 반면에 다윗의 영성은 점점 무디어졌다. 기도도 말씀도 멀어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죄를 지었다. 영적으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 그러다가 오늘 본문을 보면 다시 다윗의 인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망자가 되었다. 그 동안 가졌던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왕의 지위를 잃었고, 왕궁을 잃었고, 명예를 잃었고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잃었다. 그리고 어디로 도망을 가는가? 다윗의 영성을 만들어주었던 그 광야로 다시 도망을 간다(23하).
오늘 본문은 다윗이 또 한번 내리막길 인생을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내리막길 인생이 그동안 죄로 인해서 영적으로 비틀거리고 있던 다윗의 영성을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내리막길 인생에서 다윗이 다시 자신의 영성을 회복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1. 주변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1) 다윗이 도망을 갈 때 따라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신하들이 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 중에 18절을 보면 특별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렛 사람, 블렛사람, 그리고 블레셋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이 등장하다.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원수관계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이곳에 있느냐 하면 한 때 다윗이 블레셋에 정치적 망명을 간 적이 있는데 이 때 다윗을 알게 되어서 그 이후로 다윗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다윗이 도망을 떠날 때 이들도 함께 다윗을 따라 나선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반응이 뭔가?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한다. 이유가 중요하다(19-20).
그들도 정치적인 망명을 한 사람들이고, 참 어려운 사람들인데 나 같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왕을 따라 왔다가 더 큰 고생을 할 거니까 너희들 살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도망가는 다윗의 입장에서는 한명이라도 자기편을 다 만들어야 자기 목숨을 지킬 수 있는데 도리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망가는 입장에서 이렇게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다윗은 지금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시면 철저하게 낮아지겠다는 것이다. 바닥으로 내려가 보겠다는 것이다.
군대에 가면 유격이라는 아주 어려운 훈련이 있다. 암벽을 타기고 하고, 목봉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면서 너무 너무 힘든 과정을 통과하게 한다. 그런데 유격장에서는 원칙이 있다. 계급장을 다 뗀다. 유격장에서는 아무리 높은 군인이라도 계급장을 떼고 훈련을 받는다.
왜냐하면 계급장이 있으면 훈련시키는 조교들이 아무래도 심하게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받는 사람의 마음도 자기 계급을 의식해서 다른 대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계급장 없이 똑같이 진흙탕에 뒹굴고, 똑 같이 욕먹고 고생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훈련을 받을 때도 그래야한다.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려고 하실 때는 하나님이 굴리는 데로 굴러야 한다. 완전히 낮아져야 한다. 그래야 정말 훈련이 된다. 다윗이 지금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왕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로서 철저하게 낮아지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을 가질 때 그 사람의 삶과 신앙이 회복된다.
2) 이번에 따라 나서는 사람들 중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있었다.
왕이 피신을 한다는 소식에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왕을 따라 나섰다. 왜냐하면 다윗왕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이기 때문에 반역을 통해서 왕이 되려는 압살롬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왕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바른 생각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사장들과 언약궤가 자기와 함께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볼 때도 모양새가 좋다. 그런데 다윗은 이번에도 제사장들을 물리친다.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데리고 가려고 할 텐데 왜 돌려보낼까? 자신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도망을 가는 입장인데 감히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도망의 길을 가는 것이 황송한 것이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고백을 한다(25).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면 내가 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삶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 누구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가? 사람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의지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회복되면 그 사람은 살아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26절을 보면 이런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셔서 다시 왕으로 회복시켜 주지 않으시면 내가 이렇게 광야에서 겸손히 살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징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얼마나 겸손해져 있는지 모른다.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살고 죽는 것이 주님에게 달렸습니다. 이런 믿음이 회복이 되었다.
3) 아이도벨(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반역의 무리 중에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윗의 반응은 무엇인가? 기도였다. 다윗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31).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의 입에서 이런 간절한 기도가 정말 오래간만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언제 간절한 기도가 나올까?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가난하고 낮아질 때 사람은 간절한 기도가 회복된다. 잊었던 기도가 회복이 된다.
여러분에게 간절한 기도가 회복되길 바란다. 애절한 기도가 회복되길 바란다. 그럴 때 여러분의 모든 것이 회복이 된다(렘 33:3, 렘 29:11-13)
4) 후새
다윗의 친구요 아히도벨 못지않은 지혜를 가진 후새가 소식을 듣고 다윗을 따라왔을 때 다윗은 이번에도 그 친구를 도로 돌려보낸다. 이유가 있다. 나를 따라오는 것보다 압살롬에게 위장으로 귀순을 해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흐트려 놓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더 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이것을 볼 때 다윗이 점차 영적으로 회복이 되고 예전의 분별력, 통찰력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정에 문제가 터져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몰라 넋을 놓고 있던 그가 하나하나 너무나 차분하게 그리고 분별력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적으로 회복이 되니까 모든 삶이 더불어 동반해서 회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 결 론 >
낮아짐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낮아질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마음이 가난해 진다. 마음이 가난해 질 때 간절한 기도가 회복이 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낮출 때는 잘 분별하라.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안 되고, 도리어 그동안 쌓았던 것들이 무너지고, 상실할 때 그 때를 잘 분별하라.
그 때 도리어 감사하라. 그리고 기회를 활용하라. 더 낮아지는 법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기도를 회복하는 기회로 활용하라. 그럴 때 여러분의 신앙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회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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