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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은 죄악을 낳고
임호남 2009-04-22 추천 0 댓글 0 조회 337

죄악은 죄악을 낳고(삼하 13:1-15)   09.4.22


씨앗을 뿌려 놓으면 처음에는 그 땅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땅 속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갑자기 땅속에서 하나 둘 솟아나오는 것이 있다. 씨앗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죄악도 마찬가지다. 죄악의 씨를 뿌려 놓으면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언젠가 그 씨앗의 열매를 보게 된다.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다윗은 다른 남자의 부인을 빼앗고, 그 남편을 죽이는 무서운 죄를 지었다.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본인은 용서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 했다. 칼이 네 집안에 떠나지 않고, 네 집안에 재앙이 일어나고, 너의 부인들도 남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 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삶에 이런 죄의 씨앗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1. 그 후에

여기서 그 후란 구체적으로 무슨 후를 가리킬까? 다윗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한 벌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은 후다. 그 후에 다윗의 삶에 한 동안은 평안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평안이 아니라 서서히 다윗이 뿌려놓은 죄의 씨앗들이 다윗의 주변에서 싹트고 있는 기간이었을 뿐이다.


1절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다말’이란 여동생이었다. 그런데 다윗의 다른 아들‘암논’이란 아들이 이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었다.


여기서 잠시 다윗의 가족관계를 정리해보자. 다윗은 여자 문제가 좀 복잡했다. 부인이 많았다. 고대 세계에서 왕들이 여러 부인을 거느리는 것이 전혀 허물이 안 되었지만 적어도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런 세상의 흐름을 거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압살롬과 다말은 다윗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3:3). 당시 그술은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었는데 다윗은 이 이방 나라와의 화친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였었다(3:3 주석 참조.)

 

암논은 다윗이 이스르엘 여인‘아히노암’에게서 얻은 아들인데 서열상으로는 다윗의 장남이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장남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기 있었기 때문에 다윗도 장남 암논을 다른 아들보다 더 마음을 썼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위를 장남에게 물려줄 가능성아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암논이 사랑한 다말은 자신의 배 다른 여동생인 것이다. 아무리 배 다른 동생이지만 여동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사랑이었다. 율법에도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근친간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2. 하나님 나라의 비전의 중요성

암논은 다말을 사랑했지만 다말이 처녀고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2절). 그런데 다말을 향한 자기의 감정 때문에 결국은 병이 생겼다. 쉽게 말하면 상사병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이 암논의 사랑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1) 해서는 안 될 잘못된 사랑이었다.

2)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니까 거기서 병이 생겼다.

어떤 모습이냐 하면 어린 아이들이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남감이나 어떤 물건이 있는데 가지지 못하면 투정을 부리고, 떼를 쓰는 그런 모습과 같다.


조금 더 큰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핸드폰이나, 아니면 엠피쓰리....이런 것을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하면 유치하게 투정을 부리고 떼를 쓰는 것과 같은 그런 모습이다.


3) 이런 것을 볼 때 암논이란 사람은 몸은 성인이지만 그 정신연령은 아직 온전히 성숙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가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감정이 일어났다 해도 잘못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스스로 절제하거나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정 조절하는 모습을 보면 성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분별할 수 있다. 특히 이성의 문제에서 그렇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성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감정이다. 소위 말하는 필(feel)이다. 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필이 오면 그 필에 충실하려고 한다. 그것이 절대 선인 것처럼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내 감정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마치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인 것처럼 미화시킨다. 그 대상이 누구든 관계하지 않는다. 감정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혼 전에 이미 넘지 못할 선을 쉽게 넘는다. 그러나 감정은 절대 선이 아니다. 절대 선은 말씀이다.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시 119:9,11).


3) 암논은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감정, 상대방의 행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기 욕망, 감정을 채우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이런 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러는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4) 이 사람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

뭘까? 비전이다. 이 사람은 거룩한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다윗의 장남이었다. 잘하면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그 나이 때에 꿈꾸고 마음을 쏟아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 나라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버지 다윗이 세워놓은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더 거룩한 나라, 더 복된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장남으로서 자나 깨나 이런 꿈을 꾸면서 자신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는 일에 몰입해야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장남으로서, 나라를 이끌어갈 후계자로서 자격이 없었다. 그 중요한 시기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거룩한 꿈과 비전이 아니라 인간의 정욕이었다. 그것도 잘못된 육체적인 욕망이었다. 그것을 채우지 못해서 병이 난 사람이었다.


우리는 벌써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나라를 이끌어갈 자질이 없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 마음에 거룩한 비전이 없으니까 대신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산 것이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쾌락과 즐거움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이다.


적어도 아버지 다윗은 그 나이 때에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충만했고, 그의 마음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었다. 하나님을 더 열망했고, 더 원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다윗을 위대하게 사용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뭔가가 중요하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비전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헛된 것에 내 시간과 감정을 소진할 수밖에 없다. 내 감정과 욕망을 따라서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모하고 사모해야할 것은 첫째,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다. 둘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축복이다. 우리는 이것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여기에 사로잡혀야 한다.


3. 친구를 잘 사귀라.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이나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암논에게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요나답이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람에 대해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심히 간교한 자’라고 했다. 암논이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다는 것을 볼 때 벌써 암논의 됨됨이가 어떤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친구가 왜 중요합니까? 인생의 문제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의 조언을 듣느냐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생의 위기가 있을 때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은 좋은 조언을 듣는다. 그러나 좋은 친구를 두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잘못된 조언을 듣기 때문에 인생이 더 나빠지는 겁니다.


문제아 주변에는 좋은 아이들이 없고 대부분 문제아이들 뿐입니다. 그러면 어떤 고민이 있을 때 결국 그런 친구들의 조언을 듣기 때문에 갈수록 더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부모님과 갈등이 있다. 그러면 대부분 또래들에게 상담을 한다. 그런데 같은 또래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자기도 문제아인데! 그래서 결국은 잘못된 조언을 듣는 것이다. 친구가 중요하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좋은 조언자를 만나야 내 영혼이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내 영혼이 살아나는 쪽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이루는 쪽으로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을 가까이 두어야 합니다.


요나답이란 사람은 암논에게 살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죽을 길을 가르쳐 주었다(5). <침상에 누워 병든체 하다가 아버지 다윗이 찾아오면 여동생 다말이 만들어준 과자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으니까 다말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그렇게 부탁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찾아오면 그 때 너의 욕망을 채우라고 합니다.


너무나 잘못된 조언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분별력을 잃은 암논은 그 조언을 받아들여서 아버지 다윗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다말을 자기 침실로 끌어들여서 강간을 하고 맙니다. 이 때 다말은 간절하게 부탁을 합니다(12-14절).


<당신이 나를 이렇게 욕을 보이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겠느냐! 내 인생은 여기서 완전히 끝난다. 그러므로 정말 나를 사랑하면 정식으로 청혼을 하라. 그러면 될 것이 아니냐!> 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지만 암논은 무시해 버리고 자기의 욕망을 채웁니다.


이걸 볼 때 다말을 향한 암몬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한다면 자기보다 남을 배려한다.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방의 유익을 구한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그러나 암논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었기에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상대를 파괴하고 짓밟았다.


누구의 방식인가? 다윗의 방식이었다. 다윗이 자기 힘과 권세로 밧세바를 범한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죄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21절, 다윗은 이 모든 일을 들었을 때 분노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없었다. 징계가 없었다. 왜? 징계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앞으로 더 큰 불행을 심는 씨앗이 되었다. 22절을 보겠다.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논에 대해서 미움의 감정을 가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복수의 칼을 갈기 위해서다. 그리고 만 이년이 지났을 때 그 가정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이 모두 다윗의 죄에 대한 대가였다.


< 결 론 >

1.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식은 이상하게 자식을 닮는다. 그렇게 닮을 수가 없다. 걷는 모습, 자는 모습까지도 꼭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은 모습보다는 안 좋은 모습은 그렇게 잘 닮을 수가 없다.


부모는 무엇보다 좋은 삶의 본이 되어야 한다. 또 본을 보일 수 있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경건의 모습으로 빚어져서 그 모습이 전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딤후 1:5).  디모데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섬겨오던 경건한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런 믿음의 유산이 전수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2. 아울러 우리 개인적으로도 믿음의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나라의 비전에 사로잡혀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영적인 친구를 잘 두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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