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사무엘하 10:1-14)
우리는 삼하 9장에서 다윗이 사울 집안의 남은 사람 므비보셋을 찾아내서 그에게 한없는 은총을 베푸는 다윗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은총으로 므비보셋의 삶은 놀랍게 바뀌었습니다.
1) 가난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풍성한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음으로 풍성한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2) 왕의 후손이었지만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볼품없이 살던 그가 왕자의 신분으로 회복 되었습니다. 은총은 우리 삶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3) 메마르고 삭막한 땅에서 양 발을 다 저는 장애인으로 육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인생을 절망 속에 살던 그를 치료해주었습니다. 은총에는 이런 치유의 능력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총의 능력입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때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 체 바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총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히 감사하면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그
삼하 9:7절을 보십시요. 다윗의 한없는 은총에 대한 므비보셋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자신은 죽은 개 같은 정말 아무 쓸모없고 아무 소망 없는 인생인데 어떻게 나에게 그런 은총을 베풀어 주시냐는 겁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에게 찾아온 그 은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겸손히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럴 때 그의 인생은 그 때부터 송두리 체 바뀌었습니다.
만약 므비보셋이 자존심을 내 세우면서 다윗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여전히 가난하고 비참하게 세상을 원망하면서 사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은총은 겸손히 받아들일 때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삼하 10장은 계속해서 바로 그 은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은총의 전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9장에서는 은총을 받아들인 자의 축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오늘은 은총을 거부한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 10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이 두 절의 핵심단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은총입니다. 암몬의 통치자였던 나하스라는 왕이 어느 날 죽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 하눈이 대신해서 왕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암몬 왕과 다윗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암몬과 이스라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윗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에게 은총을 베풀었던 나하스에 대해서 그가 죽은 후이지만 자신도 그런 은총을 베풀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죽은 왕의 조문을 위해서 조문사절단을 암몬나라에 파견을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왕위를 이어 받은 아들은 이런 다윗의 은총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 은총을 거부했습니다. 나아가 그 은총을 원수로 갚았습니다. 결국 은총으로 시작된 그 만남은 파경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귀한 은총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암몬의 왕 하눈은 다윗의 은총을 어떻게 거부합니까?(3)
1) 조문사절단을 체포합니다. 죄인으로 취급을 합니다.
2) 그들의 수염을 깎습니다.
그들의 문화에서는 수염이란 것은 남자의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민의 권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염을 깎았다는 것은 마치 노예인 것처럼 취급을 했다는 것입니다.
3) 그들의 옷을 중동볼기까지 잘랐다는 것은 엉덩이 윗선까지 잘랐다는 말입니다. 엉덩이 윗선까지 옷을 자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 당시 사람들은 속옷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상상해 맡기겠습니다. 얼마나 치욕적인 행동인지 모릅니다. 가장 모욕적인 대우를 한 것입니다.
3. 여러분! 그렇다면 왜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요?
1) 의심했습니다(3).
이들은 다윗의 조문사절의 순수한 동기를 의심했습니다. 그 사절단은 조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도인 랍바를 정탐하기 위한 목적으로 왔다고 의심합니다. 은혜는 그 호의를 신뢰하지 못하면 받지 못합니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주려고 하는데 상대가 그것을 의심하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경계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도 바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히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아무리 귀한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려고 해도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의심은 은총의 장애물입니다.
특히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호의를 100%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크게 받으면 그 때부터 나는 하나님께 완전히 매여서 살아야 되지 않나!> 이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경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요. 그분은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분이 주고자 하는 은혜를 마음껏 받아들이시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이 풍성해 집니다.
2) 자기밖에 몰랐다(3)
암몬의 왕이 사절단을 그렇게 대우한 것은 관심사가 자기와 자기나라의 안전과 행복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입장과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행복, 자기 안전에만 몰입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에게만 집착하게 되면 더 큰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더 좋은 것이 있는데도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 집착하니까 보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집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자기에 집착해 있는 사람은 그걸 보지 못하는 겁니다. 당장 내 손에 있는 작은 행복, 내 시간, 내 물질, 내 생활....이것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더 좋은 축복이 있음에도 그것을 외면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더 큰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이기심과 자기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3) 잘못된 조언 때문입니다(3)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 주변의 잘못된 말들과 조언 때문에 축복을 놓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보십시요. 암몬 왕의 신하들은 왕에게 잘못된 조언을 했습니다. 왕이 판단력이 떨어지면 신하들이 참모들이 지혜로운 조언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그들이 잘못된 조언을 해서 결국 나라를 어렵게 만듭니다.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도리어 재앙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에요? 잘못된 소리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떤 말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주는 정보, 뉴스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흐름과 논리, 혹은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아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십시요.
그래서 은총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마십시요.
< 결 론 >
여러분 암몬 왕이 이렇게 불신 때문에, 자기에 집착했기 때문에, 또 잘못된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다윗의 은총을 거부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1) 다윗과 원수가 되었습니다(6) 2) 나아가 대적하게 됩니다(6)
암몬이 다윗을 대적할 때 쓴 방법이 무엇입니까? 6절을 보면 용병을 고용합니다. 용병이란 다른 나라의 군사들을 돈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암몬은 전쟁을 잘하는 아람 군사 3만 3천을 고용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용병을 고용하는데 지출한 비용이 얼마나 될까요? 대상 19: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은 일천 달란트입니다. 이것이 얼마만한 금액이냐 하면 당시 노동자 6백 만 명 하루 품삯입니다. 일당을 만원으로 잡아도 6백억이란 돈이고 3만원으로 잡으면 1800억원이란 엄청난 돈입니다. 그만을 돈을 지출해서 다윗과 전쟁을 벌이는 겁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겼으면 좋은데 또 지고 맙니다.
다윗의 은총을 거부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내린 결과 얼마나 많은 재물과 시간을 낭비하고 맙니까? 그 때문에 삶의 형편이 얼마나 더 어려워집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면 우리 인생이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소모하는 소모적인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살면 마음도 편하고 우리의 시간과 물질도 헛된 곳에 쓰지 않게 되는데 이런 은혜를 알지 못하면 그 때부터 인간적인 방법을 쓰기 시작합니다.
은혜를 모르니까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하고, 사람을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돈과 사람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면 잘 안 된다는 겁니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애는 애도로 쓰지만 잘 아쉽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삶을 사십시요. 하나님의 은총을 귀하게 여기십시요. 그리고 그 은혜를 거부하지 마시고 사모하십시요. 물질과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십시요.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부귀, 영화, 지혜, 은사 이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풍성한 은총을 받아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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