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삼하 9:1-13) 09.3.18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은혜란 무엇인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다윗은 지금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생의 정상에 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의 마음이 가는 곳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직전 왕 사울의 집안에 혹시 누가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왜 사울의 집안에 남아 있는 사람을 찾으려 했을까요?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함입니다(1). 은총이 무엇입니까? 신약성경의 표현으로 말하면 은혜입니다. 조건 없이 베푸는 호의입니다.
여러분!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 집안이란 어떤 집안입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사울이란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원수 집안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얼마나 괴롭혔습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습니까?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처럼 서로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그런 원수 집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울의 집안의 남은 자손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한 가지입니다. 과거의 그런 쓰라린 기억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집안의 아들이었던 요나단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사울 집안이 다윗을 미워할 때 요나단만은 끝까지 다윗을 보호하고 변함없는 우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언약을 합니다. <너와 내 자손을 서로 돌보아 주자>는 언약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몰락한 사울 집안의 자손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수소문 한 결과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라는 사람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서 사울 집안에 생존하는 자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란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 사람 므비보셋에게 말할 수 없는 은총을 베풉니다. 우리는 그 다윗의 호의를 살펴봄으로 은혜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므비보셋의 상황입니다.
1) 삼하 4:4절을 보면 므비보셋이 다섯 살 때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과 블레셋간의 전쟁이 있었는데 그 전쟁에서 므비보셋의 할아버지 사울왕과 아버지 요나단 왕자가 함께 전사를 하고 맙니다. 이런 불행한 소식을 접한 므비보셋의 유모는 급한 마음에 이 아이를 안고 도망을 가다가 그만 땅에 떨어트리고 맙니다. 그 충격으로 이 아이는 두 다리의 발목이 부러지고 결국 두 다리를 다 절게 되는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몇 살 때에요? 5살입니다.
5살 때 장애를 가졌는데 한 다리도 아니고 두 다리를 다 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었던 그 집안은 몰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왕이었던 할아버지, 왕자였던 아버지, 삼촌들이 다 죽고 결국 그 나라의 왕위는 누구에게 돌아갔습니까? 사울이 그렇게 괴롭혔던 다윗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니 므비보셋의 삶이 어떠했겠습니까? 불행한 삶이었겠지요.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그것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데 그 어느 누구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때는 왕의 가족으로 부족한 것이 없이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므비보셋이 너무나 어릴 때 일어난 입니다. 5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집안이 망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므비보셋 자신이 어쩌면 희생자입니다.
아마 므비보셋은 성장하면서 그 마음에 세상에 대한 쓴 마음이 자리 잡았을 겁니다. 자신을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세상에 대한 원망이 그 마음에 자리를 잡았을 겁니다. 특히 그 마음에 다윗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있었을 겁니다.
다윗이 이 나라 왕만 아니었더라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숨을 죽이며 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을 겁님다. 다윗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더 불행해졌다는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세상 때문에, 누구 때문에, 다윗 때문에....내 인생이 이렇게 불행해졌어.....
그리고 그 탓 뒤에서 숨어서 현실을 회피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현실을 맞서지 못하고 늘 우울하고, 어둡게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런 우리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그 인생에 은혜가 임할 때 치료될 수 있습니다. 삶이란 이렇게 각박하고, 살벌한 것이 아니라 한없는 사랑, 용서, 이해, 은총이 풍성한 것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은혜가 이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그 은혜를 경험해야 그 사람의 상처난 심령이 치유됩니다.
2) 므비보셋이 사는 곳이 어디일까요?(4)
로드발이란 곳에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로드발이란 뜻은 목초가 없는 황무지란 뜻입니다. 살기가 힘겨운 곳입니다. 겨우 겨우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므미보셋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마치 그 땅처럼 메마르고 삭막했습니다. 만족도 기쁨도 없는 불행한 삶이었습니다. 그 메마른 곳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면서 겨우 삶을 연명해 가는 그였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가 필요합니다.
2. 다윗의 호의(은혜)
그렇게 살고 있는 그를 어느 날 다윗이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를 부릅니다. 다윗 앞에 불리어 오는 므비보셋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두려움입니다. 왜 일까요? 자신의 할아버지 사울이 다윗과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원수 집안의 후손이 자기를 찾아내어서 화근을 제거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가문을 철저하게 죽였기 때문입니다.
1) 그런 그에게 다윗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7)
“두려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은총을 베풀리라”는 너무나 뜻밖의 복음을 들은 겁니다.다윗에게서 들은 음성은 무서운 심판과 징계의 음성이 아니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에게 은총을 베풀겠다는 사랑과 자비의 음성이었습니다.
2) 다윗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겨우 하루하루 삶을 연명해 가는 그에게 할아버지 사울왕의 가졌던 모든 재산을 돌려주겠다는 겁니다. 권리를 회복시켜 주겠다는 겁니다. 풍성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겁니다.
3) 더욱 놀라운 것은 므비보셋은 이제부터“항상 다윗과 함께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왕자의 신분과 같은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이 오늘 본문에 4번이나 나옵니다(7,10,11,12).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두려움과 원망과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 소망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던 그를 이제는 왕의 식탁에서 영원토록 함께 먹는 왕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윗의 계획입니다. 다윗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므비보셋의 모든 삶을 송두리 체 바꿔놓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1) 여러분! 므비보셋에게 이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호의를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구 때문에? 자기에게는 그런 은혜를 받을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자기 아버지 요나단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자신의 언약 때문에 요나단을 보고 그 모든 호의를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내려주는 겁니다.
은혜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내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정당한 보상이요, 대가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자격도 없음에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2) 은혜가 므비보셋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습니다.
하루, 하루 두려움 속에서 겨우 겨우 삶을 꾸려나가던 그 삶에 은혜가 임하니까 너무나 풍성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차고 넘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구걸하던 삶에서 베풀고 나눌 수 있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그렇습니다.
1) 우리가 어떤 사람입니까?
① 하나님을 떠나 멀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②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두려움과 원망 속에서 심지어 하나님에게 반항하면서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③ 하나님 없이 만족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④ 영적인 절름발이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2) 그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호의는 무엇입니까?
①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롬 5:10)
②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찾기 위해서 낮아지셨습니다.
③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엡 1:3, 2:4-7).
④ 우리를 회복하시고 치료해주셨습니다(교제의 권리)(계 3:20)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십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들을 단지 예수님을 보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 삶에 임할 때 우리 삶은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 결 론 >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상처 난 우리의 심령을 치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어진 우리의 삶을 회복시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난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은혜가 우리 삶의 치료약입니다. 그 은혜를 사모하십시요.
이미 그 은혜를 받았다면 감사하십시요.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아시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놓으신 그 큰 은혜를 이미 받았습니다. 감사하십시요. 그리고 더 큰 은혜를 구하십시요.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영원토록 찬양하는 삶을 사십시요.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