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관대(삼하 7:18-29) 09.2.25
7장 1절을 다시 보자.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다윗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집 없이 방랑했던 광야 세월이었다. 동굴과 수풀에서 수없는 날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자신에게는 금은보화로 가득한 집(왕궁)이 생겼다. 삶이 그만큼 안정된 것이다. 그랬을 때 다윗은 이제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귀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하게 다윗의 그 계획을 거절하셨다. 그러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은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는 것입니다(11하).
무슨 뜻일까요? 다윗은 생각할 때 내가 한 나라의 왕이 되었고, 이제는 힘도 있고, 능력도 있고, 돈도 있기에 나도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생각이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첫째,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자신이 잘 나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운 것은 다윗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왕국은 인간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의 방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스리는 그런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다윗이 목동으로 있을 때에 그를 부르셨고, 왕의 자리까지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국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신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다윗이 알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을 짓고 싶다는 다윗의 소원을 거절하시면서 <네가 나를 위하여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너를 위하여 뭔가를 할 것이다. 너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처럼 앞으로도 너와 너의 가문, 너의 왕국을 내가 이렇게 사용하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내용이 지난주까지 살펴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계획은 다윗에게는 너무나 감격적이고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다윗의 반응을 생각해 볼 것입니다.
1.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다(18).
다윗은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말씀을 들었을 때 뭔가 반응하고 싶었다는데 첫 번째 반응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다윗의 첫 번째 반응은 하나님과 깊이 만나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앉았다는 것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았다는 것은 잠간 인사차 들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간단한 대화는 서서 할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만나면 그 자리에서 잠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긴 이야기,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서로 마주하고 앉아야 합니다. 퍼져 앉아야 장시간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잠시 인사차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만남을 위해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긴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오래 오래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털썩 주저앉아 본적이 언제입니까? 엉덩이가 배기도록 앉아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언제입니까? 털썩 주저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음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님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언제입니까? 저도 그런 기억이 아련합니다. 언제부터 기도가 인스턴트가 되었습니다. 진득한 기도가 그립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들어가 주저앉기를 바랍니다. 오래도록 깊이깊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2. 감사를 했다.
1)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 주저앉고는 먼저 감사기도를 합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 관대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18)
쉽게 말하면 <나 같이 천하고 부족한 사람을, 베들레헴 시골의 이름도 없는 집안 출신인 나를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한 나라의 왕이라는 존귀한 자리까지 오르게 하셨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이런 고백입니다. 다윗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요. 주신 축복이 너무 많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이 됩시다.
2) 이미 받은 은혜뿐만 아니라 앞으로 주실 은혜에 대해서도 미리 감사했다(19-21).
우리는 지난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지만 앞으로 주실 은혜에 대해서도 미리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는 것보다 한 수 위는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합니다>하는 것이다. 과거의 은혜도 감사하고, 앞으로 주실 것도 미리 감사하십시요.
3. 간구했다(27-29)
다윗은 자신과 그 집과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리라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약속을 내 것으로 누리고 싶다는 열정이 일어났습니다(27하).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들은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아 좋다! 그렇게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마음 가운데 바로 그 약속된 그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싶은 열정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합니다(28-29).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28)”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마 한 축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았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고자 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겁니다(약 1:16-17).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
각양 좋은 은사, 온전한 선물은 다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야 말로 정말 좋은 선물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값진 보물보다 더 값진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각양 은사와 선물들입니다. 이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윗처럼 사모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29).” <하나님! 약속하신대로 꼭 그 복을 주옵소서.> 약속을 붙잡고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보면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복만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사모하면서 그 복을 간구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기 바랍니다. 영적인 복을 사모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하나님의 복, 신령한 복, 위에서 주시는 영적 복에 대한 거룩한 욕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 결 론 >
1.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사치레의 기도생활을 벗어나 하나님과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2. 주신 은혜 감사하고, 주실 은혜 미리 감사하십시요.
3. 영적인 복을 사모하고 간구하기 바랍니다. (찬송 나 같은, 지금까지 지내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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