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 좋은 신앙생활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다시 메고 올라갈 때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성으로 옮긴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12) 어떤 반응을 보였다.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1.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13절을 보면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다.
아마도 레위인들이 처음 여섯 걸음을 옮겼는데도 이전처럼 사람이 죽고나 무슨 사고나 나지 않고 아무 이상 없이 출발된 것을 보고 나머지 걸음을 계속 뗄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서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제사로, 예배로 표현을 했다.
여기서 우리가 한번 생각하고 넘어가야할 주제가 있다.
1) 신앙은 표현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을 향한 어떤 마음이 있으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이 있으면 감사를 표현하고,
기쁨의 마음이 있으면 기쁨을 표현을 하고,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헌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은 울려야 종인 것처럼 감사도 표현을 해야 진짜 감사가 된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좋은 것이다. 그러나 표현을 하지 않으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표현을 할 때 알게 되고, 표현을 할 때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기쁨이 생기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서도 표현을 해야 한다.
헌신에 대한 마음만 가지고 있고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지 않으면 헌신이 될 수가 없다. 표현이 될 때 그 헌신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의 유익이 된다. 하나님께 대한 어떤 마음이 있는데 표현이 없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절름발이 신앙이다.
은혜도 반쪽 은혜가 된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는데 표현이 없다면 반쪽 은혜로 끝난다. 신약성경을 보면 나병에 걸린 10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주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다 고쳐주셨다. 그런데 치료를 받고 주님에게 와서 감사를 고백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치료 받은 것 자체에 환호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감사를 고백한 그 사람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주님을 찾아왔고 그것 때문에 더 주님과 가까워졌고, 더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을 본다. 은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표현을 했기 때문에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이다. 신앙생활은 이처럼 표현이 좋아야 한다.
2)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 감격이 있을 때 성도는 그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하고 싶을까? 예배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감사의 마음이 있으면, 기쁨의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예배 싶은 열정이 일어난다.
다윗을 보자. 여섯 걸음을 옮긴 후 소와 살진 송아지로 예배를 드렸다. 소와 살진 송아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예물이었다. 예물 중에서 최고의 예물이었다(best of best).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이렇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려고 한다.
예배는 영적인 종합예술이다. 예배에는 신앙의 모든 요소들이 다 들어 있다. 기도, 찬송, 헌신, 말씀, 봉사... 영적 종합예술이 예배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해 보려면 예배드리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예배에 다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이 좋아지려면 예배가 좋아져야 한다. 예배를 드리는 태도가 한 단계 향상 되면 신앙도 자연스럽게 한 단계 향상된다. 여러분의 신앙의 품격을 끌어 올리고 싶으면 예배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려보라.
- 예배를 사모하라.
- 예배를 준비하라. 마음으로(정신없이 오지 말라), 몸으로(정갈한 몸, 옷), 행동으로(일찍 와서 기도로 준비),
- 그리고 이렇게 예배의 현장에서 최선의 것을 드리라.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집중해서 말씀을 들으라.
신앙은 표현이 좋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표현을 잘 할까 고민하라.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을 하라.
예를 들어서,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의 환한 미소가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 여러분이 예배드릴 때 환한 미소를 짓고 앉아 있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미소를 보실 때 웃음 지으실 것이다. 흐뭇해하실 것이다. 미소가 좋은 표현이다.
우리 교회는 어린 자녀들이 많다. 그 아이들이 아직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의 미소 한방이 우리들의 마음을 녹인다. 그 미소가 부모에게 하는 최고의 서비스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가? 그분께 예배 드리는 이 시간 그분을 생각하며 그분을 향하여 아름다운 미소가 그분의 마음을 녹일지 모른다.
비록 음을 다스리는 음치지만 여러분의 소리 높여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 하나님은 정확하고 기교 있는 찬송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찬송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에 엄청난 음치가 있었다. 음치일뿐 아니라 그 음성으로 찬송을 하면 괴상한 음을 내었다. 그러나 그 교회에서는 예배가 무겁고, 은혜가 안 될 때면 그 자매에게 특송을 부탁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상한 괴음같은 소리로 그 자매가 찬송을 하면 하늘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마음을 다한 찬양인 것이다. 표현이 좋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나쁜 표현이다. 가장 존경하는 분 앞에서 해서는 안 될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예배드리면서 서로 이야기 하고, 왔다 갔다 하고, 졸고, 산만한 것은 제일 나쁜 표현들이다. 가장 귀한 분에게 가장 귀한 표현을 하라.
2.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14).
-14절, 힘을 다해서 춤을 추었다.
-16절, 뛰놀면 춤을 추었다.
1) 왜 다윗이 춤을 추었을까? 너무 기뻐서다.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성으로 모신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춤을 추었다. 이렇게 표현이 있어야 한다. 기쁘면 기쁜 표현을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감정이 없는 냉혈인간처럼 아무런 표정도 움직임도 없이 앉아 있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사람의 감정이 가장 고양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 춤과 노래다. 그래서 어느 민족을 방문해도 춤과 노래가 다 있다. 기쁠 때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노래가 나오고 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다. 잔치가 벌어지면 덩실덩실 춤을 춘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쁨이 있으면 춤을 표현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윗이 춤을 추었다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왕이 그래도 되는 건가? 왕의 품격에 맞지 않은 경박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여러분은 다윗 왕의 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다윗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첫째, 다윗은 춤을 출 때 왕의 신분으로서 춤을 춘 것이 아니었다.
왕의 신분을 생각했다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 체면 때문에 그렇게 행동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왕의 신분으로 춤을 춘 것이 아니라 무슨 신분으로 춤을 추었을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으로 춤을 춘 것이다.
세상에 나가면 우리는 다 자기 신분이 있다. 회사에 가면 사장이고, 부장이고, 심지어 대통령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한 가지 신분 밖에 없다.
다윗이 춤을 출 때 생각한 것은 왕이라는 세상적인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 신분이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어린아이다. 그분 앞에서 재롱을 부린 것이다.
둘째, 다윗은 사람 앞에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다(14,16,17)
다윗이 춤을 출 때는 사람이 청중이 아니라 하나님이 청중이었다. 사람을 의식 했다면 그런 행동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식했기에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춘 것이다.
여러분! 예배드리는 이 시간은 우리가 사람 앞에 서 있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다 가면을 쓰고 있다. 드러나는 모습이 참 모습이 아니라 적당히 포장 된 모습일 때가 많다. 그런 우리가 우리의 가면을 벗고 자신을 다 드러낼 때가 있다. 바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다.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수도 감출수도 없다. 벌거벗은 몸으로 서야 한다.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설 때 그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다. 그렇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해야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사람이고, 연약한 사람이고, 이기적인 사람인지 알게 되고 거기에서 깨어짐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고 깨어지는 시간이 언제인가? 바로 예배시간이다. 예배시간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만지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시간에는 우리가 좀 자유스러워야 한다. 이 때는 고상한척, 교양 있는 척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한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오늘 본문의 다윗을 보라. 이스라엘의 왕이다. 가장 교양 있고, 품위 있게 행동해야할 사람이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왕이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올린다는 사실 앞에서 너무 감격스러워 춤을 추었다.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 이런 솔직한 모습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이다.
< 결 론 >
신앙은 표현이 좋아야 한다. 물론 성격에 따라서 표현이 서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서툴지만 자신의 방법으로 스타일로 하나님에 대한 예의와 사랑을 표현하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예배 시간에 밝은 미소를 짓는 것으로도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태도와 자세를 통해서도 표현할 수 있다. 혹은 적극적인 몸짓, 목소리의 톤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혹은 감사의 고백과 물질로도 표현할 수 있다. 혹은 일찍 와서 예배당을 청소하고, 섬김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표현하는 신앙이 되자. 그래서 좋은 신앙, 성숙한 신앙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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