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삼하 4:1-12) 08.12.24
1. 아브넬의 죽음
사울왕이 죽고 나서 쓰러져 가는 사울 왕국을 지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다. 그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놓고 배후에서 실제로는 자신이 왕 행세를 했다. 그 아브넬이 생각을 바꿔서 다윗왕을 이스라엘 전체 왕으로 옹립하려고 했다. 다윗도 그의 변화된 태도를 인정해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다윗과 순조롭게 협상을 하고 돌아가는 아브넬을 암살한 사람이 있다. 바로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다.
왜 요압이 아브넬을 암살했을까? 자기 동생 아비새 때문이다. 3:22-30절을 읽어보자. 이전에 다윗군대와 사울 군대가 싸울 때 아브넬이 자신을 추격하는 요압의 동생 아비새를 죽인 일이 있었는데 요압은 그 개인적 원한 때문에 다윗에게 투항하는 적의 장수 아브넬을 암살해 버린 것이다.
2. 무너진 사울 왕가
이 사건으로 사울왕가가 완전히 무너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사실 사울왕가는 아브넬 한 사람이 지탱하고 있던 왕국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런데 그 아브넬이 졸지에 죽은 것이다. 사울왕국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그 와중에 사울의 장군들 중 두 명이 이스보셋을 암살해서 그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투항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자리를 얻고자 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일로 사울왕국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다윗은 이제 합법적으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3. 다윗의 처신
일단 돌아가는 상황만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모든 것이 다윗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더 이상의 장애물과 걸림돌은 없다. 다 사라졌다. 사울왕도 죽었고, 그 아들들도 다 죽었고,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도 죽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윗에게 향했다.
결국 다윗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다윗은 바라던 대권을 쥐게 되었고, 성공과 출세의 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이 매순간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있다.
1) 아브넬의 죽음과 관련된 처신(3:31-39)
- 자기와 모든 백성에게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애도하라 했다(31)
- 정중하게 아브넬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친히 장지까지 가서 그 무덤에서 소리 높여 울었다. 정말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32).
- 그를 위해서 애가(조가)를 지어서 조문을 했다(33-34). 그 내용을 보자. 그 죽음이 안타까운 죽음이고, 억울한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 너무 슬퍼서 음식을 먹지 못했다(35).
이런 일련의 행동을 볼 때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정말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누군가? 사울왕가를 세워서 자신을 대적하던 적군의 수괴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유능한 사람이었고 앞으로 다윗을 위해서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38). 그러면서 다윗은 자기의 속마음을 이렇게 밝힌다(39). 아브넬을 죽인 자기의 군대의 군대장관 요압을 처벌하고 싶었지만 그가 가진 힘이 너무 컸기 때문에 왕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다윗이 스루야의 아들들인 요압 형제들을 싫어했을까? 자기 군대 장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방식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식을 정리하면 이렇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감정대로, 자기 야망대로”였다.
이들은 다윗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중요했다. 다윗의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감정이 중요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야망이 중요했다. 그래서 자기 야망에 걸림돌이 되면 다 없애야 했다. 이것이 요합의 방식이다. 다윗은 그들의 그 생각, 그 방식이 싫은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방식이 뭘까? 그의 방식은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어주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고,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방식이다.
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죽음과 관련된 다윗의 처신을 보자(4:8-12).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암살해서 그 머리를 들고 다윗에게 투항한 사울의 장군들에게 말하기를 11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저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 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의인이고, 그를 죽인 신하들은 악인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악인들이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다윗의 생각이다. 가만히 보자. 다윗은 사울왕국을 세워 자기와 대립한 이스보셋은 의인이라고 하고 자기 원수 이스보셋을 죽여준 그 신하들은 악인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다윗의 방식을 볼 수 있다. 다윗의 방식은 뭔가?
다윗은 방식은 사울의 신하들의 방식처럼 음모, 술수, 배신, 암살에 의해서 자신이 성공하고, 자신이 높아지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다윗은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 자를 너무 미워한다.
아무리 그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그런 일을 했고, 내 쪽에서 일하는 내 신하라고 해도 다윗은 그런 사람들과 그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윗의 이런 방식은 이전에도 사울왕과 관련해서도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다.
3) 사울왕에 대한 다윗의 처신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끊임없이 작업을 하는 사울왕을 미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했다.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이었기 때문이다. 원수지만 존중하고 높였다.
원수를 자기가 죽임으로 왕 되길 원치 않았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길 결코 원치 않았다. 평생 목동으로 사는 한이 있어도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이 높여 주시면 그 때 높아지길 원했다.
후에 사울이 죽었을 때 그 사울을 자기가 죽였다고 거짓말을 한 소년을 처벌하는 모습에서도 동일한 다윗의 자세가 보인다. 자기 원수 사울을 대신 죽여주었는데 다윗은 그 소년에게 분노하면서 네가 감히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을 죽였다고 그 소년을 심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결 론 >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다윗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뭔지 알 수 있다.
다윗의 궁극적인 목표는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아지는 것 아니다. 명예, 권세, 출세, 성공 아니다.
- 다윗의 가장 큰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윗은 진정한 예배자였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했는가? 삶이 곧 예배였다.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다. 말로만 “사랑한다”가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성공과 출세를 원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만하다>는 입술의 고백을 정말 삶으로 보여주었다. 고백한대로 살았다.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참 예배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 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6-8)』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뭘까? 수많은 예물로 화려한 제사를 드리는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공의를 행하면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인 것이다. 삶이 예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었고 다윗은 그것을 안 사람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과정은 어떻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돈을 어떻게 벌었든 그 사람이 돈이 많으면 다 부러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드러난 것보다 그 중심을 더 보신다. 결과만 보면 요압의 암살은 다윗에게 잘 된 것이다. 결과만 보면 이스보셋의 죽음은 다윗에게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결과만 가지고 좋아하지 않았다. 그 과정이 잘못된 방법이었을 때 그 잘못된 방법과 사람을 미워했다. 배신, 음모, 술수, 암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위대하게 사용하셨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임을 소망한다. 철저한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의 가장 큰 목적이 되길 바란다.
세상적 방법으로 성공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성공을 추구하기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다가 설상 망한다 해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바란다. 그 사람이 진정한 성공자 인 줄 믿는다.
< 기도 > 1. 내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길 원합니다.
2. 내 삶이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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