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중의 기적(누가 2:8-14)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있고, 여리고가 무너지는 기적도 있고, 해가 멈춘 기적도 있습니다. 성경은 기적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기적 중의 가장 큰 기적은 뭘까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기적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는 일도 하나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일은 하나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일 자체의 난이도가 높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도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하나님도 이 일만큼은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기적이고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1.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이 사건의 속을 한 번 들여다봅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일까요? 이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로 결정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도 아들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시는 것, 특히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속죄의 제물로 죽기 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뭘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만큼 하나님이 세상을(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요 3:16). 우리를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그 결정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셔도 정작 인간 세계로 오는 것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일에 동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어려운 일에 순종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여러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인간이 되기로 하신 결정이,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 앞에서 밤새워 기도하실 때 고민하셨던 그 결정보다도 더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결정이 뭐라고요? 하나님이 인간이 되기로 결정하는 겁니다.
우리는 간혹 <죽기보다 더 싫다>는 말을 합니다. 혹은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다른 일이 아니라 자존심을 버리는 일들일 때가 그렇습니다. 죽었으면 죽었지만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하겠고, 굴욕적인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이 일은 자존심을 버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겁니다. 당신의 신분, 영광, 권세, 능력, 자존심을 버리는 일입니다. 대신 수치, 모멸, 부끄러움, 불편, 낯설음, 고통, 외로움.....이런 것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하신 겁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야 했고, 완전한 분이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했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겸손히, 낮아지시고, 자기희생과 헌신을 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서로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서로 한 마음이었습니다. 늘 하나였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만큼 친밀하셨고, 서로 신뢰하셨습니다. 그런 관계였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도 늘 하나님과 교제하시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고,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늘 하나님께 물었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우리의 완전한 모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100%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되는 일이라 해도, 죽음의 자리라 해도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그런 관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되는 그 일에도 기꺼이 순종하신 겁니다. 여러분,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기적입니다. 그 기적의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걸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찾아오신 날, 사람들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겸손하게 이 땅을 찾아오셨습니다.
7절을 보면,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출산하고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했습니다. 자식은 누구에게나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부모는 자기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에게는 제일 좋은 것을 주고자 합니다. 그것도 첫 자녀라면 얼마나 귀한 자식입니까? 그런데 그 자식을 뉘일 데가 없어서 짐승의 구유에 뉘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산통이 시작되었는데 어디에도 들어갈 방이 없었던 겁니다. 인구 조사 때문에 전 국민이 사는 곳을 떠나 이동 중이라 방이 없었던 겁니다.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결국 짐승의 우리에서 아이를 낳고 구유에 누인 겁니다. 주님은 이렇게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아니 초라하게 오셨습니다.
요즘 태어나는 자녀들은 얼마나 화려하게 태어나는지 모릅니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부터 철저한 관리를 받고, 좋은 병원, 좋은 시설에서, 태어납니다. 또 얼마나 부모들이 준비를 잘 합니까? 입을 옷, 신발, 여러 가지 도구,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많은 사람의 축하와 축복 속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그분은 너무나 초라하게 오셨습니다. 왜요?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본인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 맙시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의 탄생소식이 누구에게 알려집니까? 8절을 보면, 그 지역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집니다.
1) 저는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왜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주님의 탄생 소식이 제일 먼저 전해졌을까? 여러분, 목자들이 양을 어디서 지켰을까요? 밖에서 지켰다고 했는데, 그 밖이란 한적한 들이나 산 속을 말하는 겁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풀이 좋은 곳으로 몰고 다닙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짐승에게서 양을 지키기 위해서 밤을 새웁니다. 그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주님의 탄생소식을 전한 겁니다. 왜 목자들일까? 묵상을 하는데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밤이었습니다. 외딴 곳입니다. 외딴 들에서 밤이란 시간은 너무나 조용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이야 말로 주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잘 들을 수 있고, 주의 사자를 잘 볼 수 있는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에는 바스락 하는 소리도 금방 들립니다. 들이니 아무 것도 볼 게 없는데 주의 사자가 나타나니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들이 아니라 도심이면 어떨까요? 도심은 시끄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볼거리가 있고, 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사자가 말해도 잘 들을 수 없고, 주의 사자가 나타나도 잘 볼 수 없는 환경입니다. 사람들은 볼 게 많고, 들을게 너무 많으면 정작 들어야 할 것은 듣지 못하고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도 하나님은 이 세상에 당신의 뜻을 전달하길 원하시고, 당신의 사자들을 보내시고 계시는데, 우리는 너무 볼게 많고, 너무 들을 게 많기 때문에 정작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은 듣지 못하고 보아야 할 주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성탄의 절기에 우리의 눈과 귀가 세상에 가 있지 말고, 세상에 정신이 쏠리지 말고 하나님께 쏠리기 바랍니다.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이 땅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의 탄생은 복음입니다(10).
주님이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이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모든 인류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인류에게 이보다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왜 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기 때문입니다(11절). 죄로 인해서 멸망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할 분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줄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그 분이 오신 날이기에 기쁜 날입니다. 인류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날입니다.
주님이 오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여전히 소망이 없습니다. 여전히 죄와 어둠 속에서 멸망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 살길이 생겼습니다. 그분은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좋은 날이고, 기쁜 날입니다. 이 날, 이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바랍니다. 성탄절 예배에 VIP를 초대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깊이 감사하면서 귀한 예물을 준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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