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관계(요한복음 15:1-7) 16특기(5)
예수님과 우리는 독특한 관계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이름만 알고 지내는 관계, 직장의 동료관계, 친구관계 등 여러 종류의 관계가 있지만 정말 깊이 있게 만남을 가지는 관계는 흔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관계는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깊이 있는 관계입니다. 함께 울어줄 수 있고,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런 관계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한 관계입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형식적인 관계에서 머물게 되면 예수님을 믿을 때 얻을 수 있는 축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는 대충 만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만남은 없습니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입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고백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관계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전부>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명을 아낌 없이 주셨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우리의 장기를 이식해 주는 것조차도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당신이 나의 전부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관계가 축복이 되고, 생명이 넘치고, 그 관계에서 오는 놀라운 은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이런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
예수님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나무를 보면 나무 원줄기와 가지는 그냥 하나입니다. 원줄기와 가지를 통틀어서 나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나무와 줄기의 관계지만 사실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합니다.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모든 혜택을 다 봅니다. 나무에게서 생명을 유지할 영양분을 공급받고, 나무에 붙어 있어야 가지에서 주렁주렁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가지가 아무리 실하고 멋져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죽습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말라 비틀어져 결국은 버려지거나 불에 타 버립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붙어 있어야 영적생명이 유지됩니다. 붙어 있으면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열매들이 맺힙니다.
주님과 떨어지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죽습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아무 선한 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매일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주님과 관계가 막히면 우리는 날마다 무기력해집니다. 내 본질이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든 예수님 안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깊은 연합의 관계를 맺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관계는 없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래야 합니다.
2)예수님과 이런 관계를 맺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왜 일까요? 모양만 예수 믿는 사람, 이름만 신앙인인 사람은 절대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는데 신앙생활의 혜택은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제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든 주님과 바른 관계 깊은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3. 어떻게 하면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해답이 있습니다(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이 깊은 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습니까? 말씀에 답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깊은 관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다음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했느냐 하면,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주님의 말이 우리 안에 거하면>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곧 무엇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까?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말씀의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있는 겁니다.
1) 여러분, 말씀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까?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말씀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자신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품고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또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그 안에 말씀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도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없는 사람은 주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4. 어떻게 하면 말씀이 내 안에 있을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고, 자주 생각하는 것을 마음에 둡니다. 항상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지금 무엇이 있습니까?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좋아해야 합니다.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됩니다.
1) 자주 읽어야 합니다. 일독성경은 기본이고, 틈나는 대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집중이 잘 안 되면 소리를 내어서 읽어야 합니다.
2)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그러면 확실하게 말씀이 내 안에 있게 됩니다.
3)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합니다.
4) 활용해야 합니다. 자꾸 써 먹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썩 먹으세요. 기도할 때 여러분이 알고 있는 말씀만 가지고 기도해 보세요. 다른 말은 하지 말고 말씀만 가지고 기도하세요. 자꾸 활용을 하세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거나 상담할 때도 자꾸 말씀을 활용하세요. 그런 삶이 되면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과 깊은 관계를 누리게 되고, 그 때부터 신앙의 축복들을 누리게 됩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주님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 바랍니다. 말씀 안에서 주님과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길 바랍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달고 오묘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되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원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