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믿음(히 11:24)
어떤 사람이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었다. 어느 날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그 일자리라는 것은 딴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서 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우리에 들어가서 진짜 곰처럼 행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곰 가죽을 뒤집어 쓰고, 진짜 곰 행세를 했다. 얼마가지 않아 그 가짜 곰이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짐승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곰이 재주를 부리다가 발을 헛디뎌서 옆 우리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옆 우리가 하필이면 호랑이의 우리였다.
가짜 곰은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다. 겁에 질려서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가까이 다가온 호랑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이봐! 입 다물어 잘못하면 너나 나나 다 잘릴지 몰라!> 그 호랑이도 가짜였던 것이다.
여러분!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처럼 짐승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서 사람이 짐승이 될까? 아니다. 무늬만 짐승이지 속은 사람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될까? 아니다. 겉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포장을 했지만 속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속이 변화된 것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가치관이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바뀐 것이다. 이 땅이 전부라고 믿던 사람이 하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바뀐 것이다. 사람은 이처럼 가치관이 바뀔 때 진짜 바뀐 것이다.
오늘 우리가 대면하는 모세의 삶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가치관이 바뀐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모세는 세상의 성공과 명예도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위가 아니면 앞이다. 죽으라고 남보다 더 높아지려고 한다. 더 높은 점수, 더 높은 지위, 더 높은 보수를 받기 위해서 뛴다. 그리고 남보다 더 빨리 출세하고,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뛰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빨리 가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남보다 한 발 앞서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올바른 방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방향이 중요하다.
모세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은 히브리 민족의 남자 아이는 태어나면 다 죽이라는 애굽 왕의 명령 때문에 죽어야할 운명이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이집트의 왕자로 입양된다. 당시의 다른 히브리 동포들은 모두 노예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 사람만은 다른 길을 걸었다. 왕궁에서 왕자로 자라면서 모든 좋은 혜택을 다 누렸다(행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당시 세계 최고의 학문 수준을 자랑하던 애굽의 학술을 다 배웠을 뿐만 아니라 말과 행사가 능했다. 말이 능했다는 의미는 정치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고, 행사가 능했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보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MBA를 따고, 세상적인 성공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다. 공주의 아들로 이집트의 왕위 계승후보였다. 부귀영화가 보장된 길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거절했다.
왜 모세가 세상적 성공의 길을 포기했을까? 그것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내가 얼마나 높은 지위, 성공의 삶을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세상적 성공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내려놓으면 다 잃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적으로는 성공과 출세의 길이 보장되어 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몽고의 선교사로 사역하는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내려놓을 때 진정한 우리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지라고, 꼭 붙들고 있으라고 유혹한다. 내려놓는 순간 모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다.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신다. 모세가 왕자의 지위를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은 그를 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위대하게 하셨다.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귀하에 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
2. 자기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 남을 섬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25절).
죄악의 낙이란 것은 죄악 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누리는 즐거움이다. 분명한 것은 죄악도 낙이 있다. 다시 말하면‘세상이 재밌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상이 재밌는 것은 목사도 안다.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동기목사님들과 말씀 공부를 한다. 사실 주일을 지나고 월요일에 하루 종일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말씀 공부하는 일이 유익하기 때문에 15년째 이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씩 정말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면 꾀를 부린다. 누가 <오늘은 놀자> 그러면 귀가 솔깃해진다. 그럴 때는 좋은 영화가 있으면 보러 가기도 한다. 이상한 것은 영화가 성경공부보다 재밌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정말 영화 잘 만든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빠지지! 영화뿐이겠는가! 세상에는 재밌는 것이 많다. 매일 쫒아 다녀도 다 못해볼 정도로 많다.
그러나 사람은 재미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 의미를 위해서 산다. 즐거움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모세는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공주의 아들로 살던 방식대로 살기만 하면 얼마든지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즐거움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힘든 삶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모세가 왕자의 자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 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어야 했고, 그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생활은 포기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얼마든지 쉽게 살 수 있는데 스스로 고생길을 선택한 것이다.
세상에 쉽게 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적당히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려면 힘들다. 공부하는 것이 힘든 이유 중에 하나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면 힘들어도 공부한다.
왜 공부하는가? 어른들은 <공부해서 남 주나?> 라고 말한다. ‘자신을 위해서’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르다. 왜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가?‘공부해서 남 주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부해야 실력을 기를 수 있고, 실력이 있어야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고, 세상에서 성공해야 선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자신의 지위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위가 높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군대를 예로 들어보면 사단장이 믿음이 좋으면 그 밑에 부하들이 다 교회에 나온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
둘째, 물질의 영향력이 있다.
남들을 돕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도울 수 없다. 도와도 조금 밖에 돕지 못한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많이 도울 수 있다. 큰일을 할 수 있다.
셋째, 학문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실력을 쌓으면 학문적으로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그 사람 때문에 과학이 발전하고, 학문이 발전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면 공부해서 실력을 쌓고, 실력을 쌓아서 성공해야 하고, 성공해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
유명한 정치가요 철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3가지 인간 타입을 말한 적이 있는데 거미 같은 인간, 개미 같은 인간 , 그리고 꿀벌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놓고 남들이 거기에 걸려들면 그 걸려든 것을 먹으면서 살아간다. 남을 해치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개미는 성실하게 일하면서 자기를 위해 계속 무언가를 모아 들인다. 그런데 꿀벌은 열심히 일해 모아 들이는 것은 개미와 같지만 개미와 다른 점은 모은 것을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정말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남을 해치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열심히 자기 것을 모으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꿀벌처럼 열심히 모아서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어 주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꿀벌 같은 사람이 되어야한다. 왜 돈 벌어야 하는가? 돈 벌어서 남 주기 위해서 돈 벌어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나에게 돈을 좀 많이 주면 정말 좋은 곳에 많이 쓰고 싶다. 어디에 써야할지 보이는데 돈이 없다. 돈은 많은데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돈도 많고, 그 돈을 어디에 써야할지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윤택해 진다.
최근에 홍콩의 배우 성룡이 전 재산 4000억원을 사회에 기부를 했다. 기부한 이유가 중요하다. 자기 자식에 물려주지 않은 이유는 <자식이 능력이 있으면 4000억을 물려주지 않아도 잘 살 것이고, 자식이 능력이 없으면 4000억원을 물려줘도 다 말아 먹을 것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안 물려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돈을 사회에 기부를 했다. 멋진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섬김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이다. 그 재미를 아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3. 세상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보화를 더 귀하에 여겼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을 여겼다>(26)
다시 말하면 주님 때문에 무시당하고, 욕 듣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상을 더 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세의 생각이 맞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서 삶을 평가 받을 때가 반드시 온다. 그 때 상과 벌이 있다. 그 때 상과 벌의 유일한 기준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나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상을 바라보고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살기 바란다.
< 결 론 >
예수를 믿으면 가치관이 바뀌어한다. 그리스도인인데 세상 성공이 더 중요하고 / 섬기는 것보다 대접 받는 것이 더 좋고 / 봉사하기보다 편안하게 사는 것이 더 좋고 / 그리스도가 주는 보화보다 세상의 보화가 더 좋다면 가짜 그리스도인이다.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가치관이 바뀔 때 자신도 변화되고, 다른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다. 세상은 진짜배기 그리스도인을 보고 싶어 한다. 모세처럼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몸으로 삶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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