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막 2:1-5)
체조 유망주였던 김소영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훈련을 하다 이단 평행봉에서 추락해서 목뼈를 다치게 되고 전신이 마비되는 1급 지체 장애인이 된다. 금메달을 꿈꾸었던 삶은 그 후 180도 바뀌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고, 대소변도 볼 수 없는 엄청난 장애를 갖게 된다.
그 후 예수님을 만나게 된 후에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장애의 몸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상담학을 전공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상인도 어려운 유학생활을 김소영씨 같은 장애인이 소화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바로 그 어려운 유학기간 중 김소영씨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한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시멘스’라는 백인 여학생과의 만남이었다. 김소영씨는 혼자서의 몸으로는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기에 누군가가 돕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시멘스’라는 학생이 피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외국인을 그것도 중증 장애인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때부터 이들은 기숙사 방을 함께 쓰면서 24시간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시멘스양이 김씨의 몸을 씻기고, 옷을 입혀주는 일부터, 식사준비, 심지어 대소변 처리까지 해 주는데 전혀 싫은 내색 없이 묵묵히 도왔다고 한다. 이런 시멘스 양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김소영 양도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일화다. 비록 김소영씨는 1급 장애인으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좋은 친구가 있을 때 그 큰 장애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또한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도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있을 때 우리 인생이 얼마나 달라 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 오늘 본문의 배경은 가버나움이란 갈릴리의 마을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제가 나름대로 각색을 조금 해 봤다.
어느 날 가버나움 조간신문 1면에 머리기사로 이런 기사가 실렸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영적인 교사가 가버나움에 나타나다.>
그리고 기사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의 가르치는 방식은 지금까지 우리를 가르쳐 왔던 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그의 가르침은 신선하고 권위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경지식만 전달하는 교사가 아니라 영적 권세까지 있어 귀신들도 제압하는 능력이 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훌륭한 영적교사다.>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서 상상력을 조금 동원한 것이다. 성경을 보자. 1) 그의 가르침(막 1:21-22) - 전혀 새로운 방식의 가르침이었다.
2) 그의 영적권세(1:25-27) - 영적 권위와 권세가 있었다.
2. 당연히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가버나움과 갈릴리 사방에 급속히 퍼져나갔다(1:28). 그에 따라 예수님에 대한 인기도 치솟았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구름 떼와 같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1:32-33).
그런 예수님이 잠시 가버나움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자 소문이 금방 동네에 퍼져나갔고, 2절을 보니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모여들었는데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문 앞에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 당시로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인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3. 뒤 늦게 도착한 사람들
그런데 어떤 모임이든 항상 늦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회를 가도, 운동경기장엘 가도, 항상 늦게 오는 사람이 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 집회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리는 만원이고, 문 앞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뒤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늦게 오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오는데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 들것에 어떤 사람을 싣고 같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땀을 뻘뻘 흘렸을 것이다. 호흡도 가빴을 것이다. 사람을 들것에 싣고 이동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들이 늦게 도착할 만도 했다. 아마 이들도 제 시간에 오려고 무척이나 서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다 자리를 잡은 뒤에야 겨우 도착한 것이다.
4. 그런데 사람을 왜 들것에 메고 왔을까?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니까 이해가 된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중풍병자로 혼자서는 꼼짝을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중풍병 환자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목사로 일을 할 때 제가 맡은 교구에 중풍병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한 분 있었다. 혼자 힘으로는 일어 설수도 없고 바깥출입도 할 수 없었다. 식사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수저를 사용하기도 어려웠지만, 음식이 자꾸 입에서 흘러내린다. 그렇게 일 년 내내 집안에 갇혀 살다시피 한다. 거의 누워서만 지낸다. 심방을 가보면 집안에 불도 켜져 있지 않다. 늘 어둡고 침울하다. 교회도 오지 못한다. 그래서 제가 자주 심방을 갔었다.
참 고통스러운 병이다. 그나마 이 분은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정말 안 좋은 사람은 가족들이 대 소변을 다 받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살아 있지만 죽은 목숨과 같은 사람이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중풍병자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5. 그런데 이렇게 불행한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도 큰 축복이 하나 있었다. 뭘까?
좋은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중풍병자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돕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1) 원래 중풍병자 같은 환자는 친구가 없다.
이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만나면 내가 얻을 것은 없고 무조건 주기만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집에서는 냄새가 나고, 침침하다. 누가 친구를 하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이 사람에게는 친구가 여러 명 있었다. 내가 생각할 때 이 사람들은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이들은 병든 환자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단지 의무적으로 만나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이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해 주고, 시간을 내주는 친구들이었다. 마치 김소영씨를 돕는 시멘스 양과 같은 그런 친구들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친구가 필요하다.
-내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친구가 필요하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아마도 주기적으로 찾아갔을 것이다. 찾아가서 청소도 해주고, 목욕도 시켜주었을 것이다. 한 번씩 외출도 시켜주었을 것이다. 중풍병자에게 만약 이런 친구조차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평생 좁은 침대 위에서 천장만 바라보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이 있어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진짜 친구였다.
6. 그런데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분의 놀라운 가르침, 능력에 대해서 들었다. 그래서 자신들도 그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 이들은 자신들의 불쌍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래서 자신들만 예수님을 만나러 갈 것이 아니라 불쌍한 친구도 데리고 가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병을 고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민이 있었다. 꼼짝 못하는 친구를 어떻게 예수님께 데리고 가냐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 결국 자신들이 직접 들것을 준비해서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날을 잡고 시간을 냈다. 그리고 힘을 모아서 친구를 들것에 싣고는 먼 거리를 마다않고 예수님께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마 혼자서는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렇게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지만 도착해 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들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집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붕을 뜯기 시작했다.
중풍병자들의 지붕 뚫는 내용을 읽다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의 일반 가옥의 지붕은 바깥쪽으로 난 계단을 통해서 쉽게 오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지붕은 평평한 형태였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지붕은 아니고 나무 들보로 골조로 삼아 짚으로 엮고 그 위에 흙으로 채웠다. 이런 식의 형태였기에 지붕을 뜯어내는 것이 생각보다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7. 아무튼 예수님이 방안에서 진지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흙먼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붕에 구멍이 뚫렸다. 그 사이로 얼굴이 보인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조금 있는데 갑자기 침상이 통째로 줄에 매달려 구멍을 통해서 예수님 앞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장애물이 있다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을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놓는 것이다. 자신들이 친구를 고칠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 데려놓는데 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8.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비난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의 믿음을 칭찬했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땀 흘리고, 애쓰고, 수고하는 그 수고와 그 바탕에 흐르는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의 영혼을 고치시고 육신을 고치셨다(5). 결국 중풍병으로 꼼짝 못하고 살던 그 사람은 좋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12).
9.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친구들과 같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좋은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1)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2) 친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3) 친구를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이다 4) 기꺼이 시간을 내는 사람이다 5) 무엇보다 친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중풍병자처럼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력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1) 경제적인 면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복지제도를 통해서 그런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나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2) 육체적인 질병으로 스스로 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도 중풍병자처럼 주변에 돕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3) 영적으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주님앞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절대 주님 앞으로는 스스로는 나올 수 없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 문턱을 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교회로 올 수 없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그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풍병자의 친구들처럼 한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믿는 성도들이 그 사람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 중풍병자들의 수고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친구를 사랑했다. 기꺼이 시간을 냈다. 찾아가서 도왔다. 그리고 많은 수고와 헌신을 했다. 그 결과 한 사람을 살렸다. 동일하게 우리에게 그런 수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가을에 태신자 전도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그들을 초청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 일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 먼저 믿지 않은 이웃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
- 그리고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내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찾아가고 섬겨야 한다.
- 그 사람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해야 한다.
- 그리고 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는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성도들이 힘을 모아 메고 나와야 한다. 힘이 들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 수고가 있을 때 하나님을 모르던 우리 이웃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통해서 몸과 영혼이 건강한 새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교회는 이렇게 중풍병자의 친구들처럼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그 일에 열정이 있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땀 흘리며 헌신하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이번 추수감사절이 이런 은혜가 풍성한 주일이 되길 원한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