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시험(히 11:17-19) 08큰뜻주일낮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테는 단지 그 나무의 나이만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나무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 나무가 언제 가뭄을 겪었고, 언제 시련을 겪었는지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온도가 늘 일정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이테가 있을까 없을까? 없다. 환경이 늘 일정하기 때문이다. 나이테라는 것은 변화, 시련, 도전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우리 개인의 신앙의 역사도 사실은 도전과 시련을 이겨낸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온실 속에서 자라는 나무처럼 아무 염려와 근심이 없이 편안하게 할 수는 없다. 신앙생활이란 편안한 생활이 아니라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생활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의 내면을 보면 영적인 나이테가 있다.
<아! 그 때 그렇게 어려운 시험이 있었구나! 아 그 때 그 큰 고통이 있었구나!> 이런 기록들이 영적이 나이테에도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시험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이겨내었기에 오늘 믿음의 사람으로 이렇게 서 있는 것이다.
1. 아브라함은 시험(test)을 받았다.
이처럼 믿음에는 시험이 있다.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을 바라는 것은 학생이 시험 없이 학교 다니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 시험이 없으면 좋겠지만 없을 수가 없다.
나이가 드니까 시험이 없어서 좋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학생 때 거쳐야 할 시험을 힘들다고 피하고 살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을까? 대학은 고사하고,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했을 것이다. 신앙에도 시험이 있다. 없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가?
1)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보기 위해서이다.
시험을 쳐 보면 그 학생의 수준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시험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시험을 겪어봐야 내 영적 수준이 드러나게 된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지금 여러 가지 문제로 시험을 겪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이 있나?>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시험을 주시는 근본목적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움이 올 때 ‘왜 이런 어려움이 있나’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을 대하는 내 태도, 자세는 과연 뭔가를 봐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태도, 자세가 여러분의 영적실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믿음이 좀 있는 줄 알았는데 어려움이 오니까 이겨낼 생각보다는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혹은 어디로 도망갈 생각부터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자신의 영적실력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런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절대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건 시험을 치는 근본 목적이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수준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약한 부분을 보완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학생들은 중간고사를 보고나면 기말에 어떻게 부족한 부분, 약한 과목을 극복할 것인지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더 노력해서 발전해야 한다. 이것이 시험의 목적이다.
시험이 있는가?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지>를 묻기보다, 이 어려움을 대하는 내 자세는 과연 올바른가를 보기 바란다. 그리고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발견하기 바란다. 이것이 시험을 주는 목적이다.
2. 시험의 과목은 무엇인가?
시험 과목도 사람마다 다양하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겸손이란 과목을 준비하신다. 성격이 과격한 사람에게는 온유란 과목을 준비하신다. 시험의 수준도 개인마다 다르다. 하나님은 맞춤형으로 준비하신다(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처음부터 고난도의 시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주신다.
아브라함도 그랬다.
1) 1단계 : 고향과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시험이었다.
믿음은 과거를 떠남으로 출발한다. 지금까지 익숙하던 생활습관,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생활, 새로운 관계를 맺으라 한다. 이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종의 시험이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대학생선교회의 간사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훈련을 위해서 정들었던 고향과 부모, 무엇보다 10여연 동안 정들었던 교회를 떠나야 했다. 그 때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저는 예배드리는 내내 펑펑 울면서 예배를 드렸다. 왜냐하면 정들었던 모든 것을 떠나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환경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믿음에는 떠나는 결단이 필요하다. 힘들어도 떠날 것을 떠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2) 2단계 : 환경의 시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아야 할 것 중에 하나는 그렇게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리어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예수 믿어도 어려움이 온다. 아브라함도 다 포기하고 가나안 땅에 왔다. 순종했으니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자마다 어려움이 왔다. 가나안에 기근이 온 것이다(창 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말씀대로 순종하면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어려움이 생겼다. 그럴 때 초신자들은 흔히 하는 생각이 <괜히 믿었다> 이런 생각이 난다. 그래서 어려움이 오면 대부분 믿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다.
아브라함도 그랬다. 어려움이 오니까 당장 애굽으로 갔다. 어려움이 오면 믿음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데 아직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늘 하던 방법대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힘들다고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늘 피해 다니면 믿음이 자랄 수 없다.
3) 단계 : 인내의 시험.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니까 조급해졌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편법을 썼다. 하갈이란 여종을 첩으로 맞이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아브라함은 ‘첩 자식도 자식이다’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인내의 시험에 실패한 것이다. 인내라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시험 중에서 가장 높은 레벨 중에 하나다. 인내에 실패하면 신앙도 실패한다. 반대로 인내에 성공하면 신앙생활도 성공한다. 우리는 인내의 시험에서 성공해야 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00세에 이삭을 낳았다. 더 이상 시험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고난도의 시험이 남아 있었다.
4) 제일 소중한 것에 대한 시험
하나님은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 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요구였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100세에 낳은 아들을 바치라는 가혹한 요구를 하셨을까? 아마도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온통 아들에게 마음이 다 뺏겨버렸다. 마치 좋은 선물을 받은 자녀가 선물은 준 아빠는 본체도 않고 선물에게만 온통 정신이 뺏겨 있는 것 같다. /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해서 큰 맘 먹고 아들이 원하던 비싼 장난감을 사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선물에 마음이 뺏겨 아빠가 퇴근을 해도 본체도 안하고 선물만 보고 있다.
아마 아브라함이 그랬는지 모른다. 선물을 주신 분보다 선물에만 마음이 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테스트 하셨다.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시험을 쳐 보기로 하신 것이다. 또 시험을 봐야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5) 이걸 볼 때 최고의 높은 단계의 시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문제까지 믿음으로 이겨내야 진짜 믿음의 사람이 된다.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뭔가? 자식이 우상인가? 자식에게 매여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떤 사람은 취미생활이다. 취미도 필요하지만 너무 빠지면 안 된다. 취미 때문에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면 그것은 우상이다. 가장 고난도의 시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제로부터 올 수 있음을 기억하라.
3.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나?
1) 우선순위를 바로 잡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들을 바치라 했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그 어떤 것도 그것이 아들일 수 있고, 돈일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의 잘못된 우선순위를 기꺼이 조정한 것이다. 비록 100세에 받은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지만 하나님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즉시 수정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조정이 있기를 바란다. 이삭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이 그분의 선물이다. 내 생명, 건강, 물질 다 주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삶의 가장 첫 번째 우선순위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이렇게 우선순위가 정립되면 자연히 갈등도 사라진다.
우리가 갈등하고 시험 받는 대부분의 이유는 우선순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거나 잘못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우상인 사람은 모든 것이 자식중심으로 돌아간다. 취미가 우상인 사람은 모든 삶이 자기 취미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첫 자리로 모시기 바란다.
2)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시험을 이겼다(19).
하나님이 자식을 바치라고 했을 때 이해가 안 되었지만 순종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요구가 이해가 안 되지만 뭔가 뜻이 있을 것을 믿었다.
<이삭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이 태어날 것이라 하신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히 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을 100% 신뢰한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뢰할 때 시험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정말 시험거리가 된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나가면 절대 시험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자연스럽게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아브람이 이렇게 시험을 이겨내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나오시는지 보자(창22:11-12).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 드디어 합격통지표를 주시는 겁니다. 합격하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문제까지도 이겨내었으니 최고의 수준에 오른 겁니다.
< 결 론 >
시험이 어렵지만 통과하면서 우리의 믿음은 자랍니다(약 1:2-4).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험을 만나면 도리어 기뻐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시험이 결국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으로 다듬기 때문이다. 시험이 힘들지만 피해가면 안 된다. 시험을 피해만 가는 사람은 보석의 원석과 같다. 보석이 아름다워도 원석은 투박하고 볼품이 없다. 그 원석이 기술자에 의해서 깎이고 다듬어 질 때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이 된다.
시험이 바로 우리를 보석처럼 다듬고 깎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다. 그리고 시험이 없는 신앙성장도 없다. 여러분에게 주시는 각종 시험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어 성숙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보석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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