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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의 기도(2)
임호남 2008-02-03 추천 0 댓글 0 조회 458

잠 30:7-9 아굴의 기도(2)


우리는 지금 아울이란 사람의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아굴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균형입니다. 우리의 삶은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신앙도 균형잡힌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굴의 기도에는 균형이 있습니다. 어떤 균형입니까?


첫째, 외면적인 모습과 내면의 모습의 균형이 있습니다.

아굴은 하나님께 평생 동안 기도하면서 제일 먼저 <헛된 것이나 거짓을 내게서 멀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먼저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겉을 가꾸고, 외양을 치장하기에 앞서 내면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굴은 내면만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외면의 삶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기도할 때는 돈의 문제,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로 기도합니다. 아굴이 평생을 두고 기도한 두 번째 기도의 제목은 물질의 문제 즉 자신의 현실생활의 문제로 기도했습니다. 균형이 있습니다.


심지어 아굴은 물질 문제를 기도할 때도 균형이 있었습니다. 아굴의 기도를 보면 <물질적으로 너무 부하게도 말게 하시고, 너무 가난하게도 말게 하시고 적당한 양식을 달라>고 했습니다. 치우침이 없는 균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현실생활과 영적생활의 균형이 있습니다.

아굴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돈의 문제를 고민할 뿐만 아니라 영적생활에도 깊은 고민이 있습니다. 아굴의 기도를 보면 아굴의 최고의 관심은 믿음생활입니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겁이 납니다> 물질 문제 때문에 믿음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9절 마지막을 보면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혹시나 물질 문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두렵다는 겁니다. 아굴의 최대의 관심은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이처럼 아굴은 현실생활과 영적생활의 기가 막힌 균형을 추구합니다.


  이런 균형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균형 잡힌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겉을 가꾸는 데는 힘쓰면서 내면을 가꾸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내면은 가꾸는데 너무 겉을 가꾸지 않아 보기에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먹고 사는 문제에만 치우쳐서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서 소홀히 여기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믿음생활만 강조해서 사회생활은 등한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균형이 없습니다.


돈에 대한 문제에서도 지나치게 청빈을 강조하거나 지나치게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균형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균형이 필요합니다. 아굴의 기도에는 이런 절묘한 균형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굴이 자신의 내면생활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내게서 헛된 것을 멀리하게 해 주옵소서, 내게서 거짓을 멀리하게 해 주옵소서”

자신의 내면생활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한 주간 아굴의 기도처럼 살았습니까? 헛된 것을 멀리했습니까? 혹시 복권 산 사람은 없습니까? 쉽게 돈벌 생각에 헛된 곳을 기웃거리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진실했습니까? 자신을 과장하거나 부풀리지는 않았습니까? 말에 거짓은 없었습니까?


오늘은 아굴의 내면생활이 아니라 현실생활에 대한 기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굴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잠 30:8-9)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1. 부하게도 마옵시고

먼저 8절의 기도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는 내용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굴은 <가난도 말고 지나친 부도 말고 적당한 만큼의 부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제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치우침이 없는 균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균형이란 것은 좋은 것입니다. 몸매도 균형이 잡히면 좋습니다. 건물도 균형이 잡혀야 됩니다. 우리 생활도 균형이 잡혀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쉬운 것 같은 균형을 잘 실천하지 못할까요? 그 안에는 욕심이 함께 작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균형을 원하는 마음이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는 그 균형을 깨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적당한 식사가 좋은 줄 압니다. 그런데 욕심이 발동하면 꼭 한 숟가락을 더 먹게 됩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면 뱃살이 나옵니다. 체지방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물질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과한 재물보다는 사실은 적당한 재물을 가지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적당한 재물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꼭 욕심을 부립니다. 아굴의 기도를 가지고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적당한 만큼만 달라>는 아굴의 기도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솔직하게 여러분 같으면 아굴처럼 기도하겠습니까?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이 기도는 누구나 할 겁니다. 그러나 <부하게도 마옵시고> 이 부분에 가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이왕이면 부자 되게 해 주옵소서> <돈 벼락을 맞아도 좋으니 원 없이 돈을 주시옵소서> 


우리는 이왕이면 부하기를 원합니다. 이왕이면 조금 더, 그리고 한 없이 가지기를 원합니다. 욕심이 있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끝없는 탐욕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런 욕심이 결국 우리 삶의 균형을 깨트립니다. 이런 물질에 대한 욕심이 신앙생활에도 굉장히 해를 끼칩니다.


1) 신앙생활의 방해

아굴이 왜 지나친 부를 경계했을까요?  오늘 기도문에 나옵니다. 너무 돈이 많으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겁니다. 돈은 힘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돈은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돈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굴은 이런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난할 때는 하나님을 잘 의지하다가 돈이 많아지면 신앙에서 멀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의 위험성이 큽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아굴의 이런 부의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합니다(8). 돈이 아무리 좋지만 신앙과는 바꿀 수 없다는 겁니다. 돈보다 신앙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여러분!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2.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아굴은 지나친 부도 위험하지만 지나친 가난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난도 때로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가난하면 검소한 생활을 합니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지나친 가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1)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가난하면 불편합니다. 생활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2)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에 하는 것이 가난입니다.  너무 가난하면 남의 것을 도둑질하게 됩니다. 결국 남에게 피해를 주고,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된다.

3) 신앙생활에 방해가 됩니다. 너무 가난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왕이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나친 가난은 해롭습니다. 아굴은 이런 가난의 고통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적당한 양의 부를 달라고 했습니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여러분! 필요한 만큼의 양식이 얼마 정도를 말할까요?


1) 먹고 사는데 문제없는 정도입니다.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생활하는데 불편할 정도가 아니라면 감사하십시요. 그래서 성경은 “족할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 자족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서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문제가 안 될 만큼의 부가 있다면 감사하십시요.


2) 적당한 부는 내가 돈에 좌우되지 않을 정도의 부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얼마나 가지고 있으면 좋을까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선까지만 가지면 좋습니다. 내가 돈을 조절할 수 없을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돈에 매여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면 안 됩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에 혈안이 되면 안 됩니다. 이런 경우는 내가 돈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돈이 나를 움직여 가는 비참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돈에 매여 살면 안 됩니다. 돈을 내가 움직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에 혈안이 되어 사는 사람도 돈에 매여 사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어떻게 하면 돈을 쓰지 않을까 여기에 모든 관심이 다 가 있는 사람도 역시 돈에 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돈은 절약하면서 써야합니다. 그런데 절약이 아니라 돈이 아까워서 정말 써야할 곳을 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절약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에 매여 사는 인생입니다. 돈은 자신에 대해서는 인색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잘못된 부자는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인색하게 삽니다. 우리는 그런 인생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까도 고민해야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하면 바른 곳에 쓸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많은 돈을 가지고도 돈에 매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것이 적당한 부라고 생각합니다. 잘 버는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잘 쓸 줄 아는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두 가지를 잘 써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데 잘 써야 합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잘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물질을 잘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굴의 기도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모든 기도의 관심이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굴은 자신의 삶이 혹시 잘못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할 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를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늘 이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장사를 할 때, 대화를 할 때, 내 언어와 생활과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결 론 >

아굴은 평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게서 헛된 것과 거짓을 멀리 하게 해 주옵소서.

-너무 가난하게 마옵시고, 지나친 부도 마옵시고, 적당한 부를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해 주옵소서. 오늘 아굴의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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