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의 기도(잠 30:7-9) 08큰뜻 낮
오늘 본문은 아굴이란 사람의 기도라고 알려진 기도문입니다. 성경에 많은 기도들이 있지만 아굴의 기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와는 조금 다른, 아니 많이 다른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대단한 기도들이 많습니다.
죽은 자를 살려 달라는 기도, 하늘의 해를 멈추어 달라는 기도, 나라를 구해 달라는 기도, 야베스의 기도처럼 복에 복을 더하시고,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는 기도, 엘리야처럼 불을 내려 달라는 기도....이런 대단한 기도의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런 기도들에 비하면 아굴의 기도는 어떻게 보면 참 소박한 기도입니다.
단 두 가지를 구하고 있습니다.
1)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게 하옵소서
2) 부하게도 마옵시고,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필요한 적당한 양식을 주옵소서.
이 기도가 아굴의 기도의 전부입니다. 아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아굴의 기도는 그렇게 매력적인 기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관심항목은 주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세상적으로 성공하게 해 주옵소서, 건강하게 하옵소서. 사업이 잘 되게 하옵소서. 자식이 성공하게 하옵소서. 번영, 성공, 축복....이런 기도들입니다.
그런 기도에 비하면 아굴의 기도는 너무 소박합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에게 이 아굴의 기도가 절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 일까요? 아굴의 기도에는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사는 정말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아굴의 기도는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1.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8).
아굴의 기도의 첫 번째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
저는 이 기도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아굴은 다른 어떤 기도에 앞서 먼저 <나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헛된 것을 멀리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1) 헛된 것이 무엇입니까?
“신뢰할 수 없고, 비현실적이고, 거짓된 것들” 이것이 헛된 것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헛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헛된 것의 반대개념은 뭘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현실에 충실한 것입니다. 비현실적인 것을 쫒기보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하루하루 그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태도, 이것이 헛되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이런 신앙이 진짜 경건한 신앙입니다. 참된 경건은 현실을 도피하거나 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현실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그 현실과 싸워서 이겨내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부딪히는 상사와의 갈등, 처리해야할 업무, 가정에서 겪는 아이들의 교육문제, 운전하다가 일어나는 접촉 사고, 감기의 같은 질병....이런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문제들을 극복해 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찮은 것들로 여깁니다. 그리고 서서히 비현실적인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 단적인 예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분수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이것인데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높습니다. 우리 생활에 그런 모습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첫째, 자녀교육을 예로 들어봅시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다 공부 잘하기를 기대합니다. 대부분 몇 등 하기를 원하죠? 모든 부모들의 희망사항은 1등입니다. 그리고 1등을 못하면 왜 못하느냐고 다그칩니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 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들 학교 다닐 때 자신들은 1등 한 분들같이 이야기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부모들의 말만 들어보면 공부 못했다고 말하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솔직합시다. 내가 공부를 별로 못했다면 자식이 누구 씨입니까? 내 씬데 왜 그렇게 높은 기대를 하십니까? 현실을 인정해야지요.
왜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학입시에 그렇게 목숨을 겁니까?
어떻게 보면 좋은 간판이 있어야 성공하고, 대학은 나와야 체면이 선다고 하는 한국적 체면문화, 겉치레 문화가 대학과 입시에 목을 매도록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왠만한 남자들은 다들 개인 사업을 하고 싶어 합니다. 사장 소리 듣고 싶어 하고,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분수에 맞지도 않게 욕심을 부리다가 자신도 어렵고 가족들까지 어렵게 만드는 가장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거품이 너무 많습니다. 한동안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학력위조 사건이 왜 생깁니까? 헛된 것들을 쫒는 마음들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비싼 메이커를 좋아합니다. 유명 메이커를 입지 않으면 부끄럽게 생각을 합니다. 형편이 안 되어도 메이커를 입어야 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흰 고무신에 빨간 매직으로 유명메이커를 그려 놓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무신을 신어도 자기는 메이커란 말입니다. 이런 허세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음식을 어떻게 차립니까?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손님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많이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손이 가는 음식은 몇 가지 안 됩니다. 결국 많은 음식이 남게 되고 처치 곤란이 됩니다. 허세가 많은 것입니다.
이런 생활에서만 허세가 아니라, 말에도 과장이 있습니다. 현실보다는 조금씩 부풀려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경력에 대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조금씩 부풀려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잡지 못할 신기루를 쫒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전 국민이 약간씩은 들떠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계획을 세우고, 비정상적인 야망들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거품들이 부동산에도 있고, 경제에도 있고, 주식에도 있고, 기업에도 있고, 학력에도 있습니다. 거품이 좀 빠져야 합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성경은 헛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편기자는 고백하기를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고, 과분한 것들이나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이런 고백이어야 합니다.
(롬 12:3) 『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십시오.』
“나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하라”는 말은 과장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헛된 야망, 돈, 지위, 자랑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헛된 인생이 됩니다. 오늘 아굴의 기도가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헛된 것들을 추구하면서 겉을 가꾸고, 치장하는 데는 많은 정성을 드리지만 정말 중요한 속은 가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겉은 멀쩡한데 속은 비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육신은 건강한데 정신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요즘 교육계에 있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들이 무섭다고 합니다. 왜 무섭습니까? 겉은 멀쩡한데 사람이 안 된 아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예의를 모르고, 감사를 모르고, 죄의식을 모르고, 양보를 모르고 자기 밖에 모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먼저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내면을 가꾸는 것입니다.
내면이 빈약한 사람은 언젠가 무너지고 맙니다. 아무리 화려한 직업, 많은 돈을 가져도 내면이 빈약한 사람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신정아 사건이나 김경준씨 사건들이 다 그런 사건 아닙니까!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돈만 잘 벌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기업, 진실하지 못한 기업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건물이 겉보기에 아무리 좋아보여도 지반이 약하면 무너지듯이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처럼 위태위태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신기루 같은 헛된 것들에 세우지 말고 정확한 현실 속에 세우길 바랍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의 문제들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올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인입니다. 아굴은 기도합니다. <헛된 것을 멀리하게 해 주옵소서> 아굴의 또 하나의 기도는 거짓말을 멀리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2) 거짓말을 멀리하게 하옵소서
이 시대의 또 하나 잘못된 모습이 있다면 거짓말입니다.
버니지아대학교의 벨라 드 파울로 교수가 77명의 학생과 70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얼만큼의 거짓말을 하는지 조사를 했는데, 단 한 학생과 여섯 명의 주민만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머지 140명은 1,534가지 거짓말을 했습니다.
여자들은 상대편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 주로 거짓말을 했고, 남자들은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후회만 조금 했을 뿐, 실제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화그룹이 100명의 직원에게 “상사에게 거짓말을 할 때”를 물었습니다.
1위 : 미봉파 -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위기부터 수습하자는 부류. “정리만 하면 됩니다”, “프린트 바로 나옵니다”, “10분이면 됩니다”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산다(23명)
2위 : 알리바이파 - 상사가 내키지 않은 지시나 제안을 할 때 거짓말로 둘러대는 사람입니다. “사돈의 팔촌께서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등의 거짓말을 한다(20명)
3위 : 면종복배파 - 겉으론 복종하는 척, 속으로 배신하는 사람들, “내 생각에는 이런데 당신 생각을 어떤가?” 하고 물으면 “역시 선배님이십니다”하고 입에 말린 아첨을 한다(13명).
이런 거짓말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기업인들도 탈세나, 2중 장부를 사용하고도 깨끗하다고 합니다. 재판을 받는 사람은 재판정에서 손을 들고 맹세를 할 때도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말합니다. 외박을 한 남편들이 주로 하는 거짓말이 뭡니까? 초상집에 다녀왔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주부들은 “누가 엄마 찾으면 없다고 하라”고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거짓이 생활화 되고 있고 진실이 죽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거짓의 홍수 속에 살다 보니까 정직이 유치한 것, 융통성이 없는 것, 고리타분한 것으로 멸시를 당합니다. 적당한 거짓말을 처신의 지혜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까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거짓된 혀와....거짓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잠 6:16-19).
계 21:27) <무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한 종류가 바로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거짓말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길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아굴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말 무엇을 먼저 구해야할 지를 보여줍니다. 아굴은 성공과 출세와 재물을 먼저 구하지 않습니다. 헛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한 두 번 하고 말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두고 기도했습니다(7절). 아굴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굴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이 되도록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생 이 기도를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헛된 것들을 쫒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헛된 것과 거짓이 난무한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바른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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