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통로가 되자(잠 11:24-25)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의 관심은 얼마나 부를 더 모으느냐에 있습니다.
기업의 최고의 가치는 이윤을 얻는 것입니다.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생명과도 같습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사람답게 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모을 수 있을까? 더 벌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습니다.
요즘은 재테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남여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한 두 가지쯤은 재테크를 합니다.
주식을 하던, 부동산을 하던....
요즘 많이 듣는 이야기들 중에,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몇 살 때까지 몇 억을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서적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돈을 더 모으려고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서로 간에 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해야 합니다. 내 사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사업이 잘못되어야 합니다. 작은 동네만 해도 그런 현상들이 보입니다.
어제까지 잘 되던 가계가 더 나은 시설과 제품으로 무장한 경쟁가계가 들어옴으로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일이 생깁니다. 자본주의의 냉험한 현실입니다.
잘 되는 쪽은 좋지만 문을 닫아야 하는 쪽은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의 현실과 사상이 성경의 정신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1. 성경적인 경제관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부를 더 모을까, 얻을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부를 더 많이 베풀고 나눌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했습니다.
창 12:1-3절은 아브라함의 복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내용인데 그 복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복이 뭘까요?
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바로 이 부분이 아브라함의 복의 핵심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특별히 세상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받는 복은 뭘까요?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축복을 전달해 주는 통로가 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만나는 자들마다 복을 받고, 아브라함 때문에 잘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복은 나 혼자 잘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복 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이런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돈을 모으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도리어 그런 흐름과 역행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노점상을 하면서 평생 번 돈을 대학에 기부하기도 하고,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합니다. 자기도 넉넉한 사람이 아닌데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전 재산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 한 사람이 나눔을 실천하면 나 한사람으로 인해서 적게는 수십 명 수백 명이 풍성해 지는 비밀, 이것이 나눔의 비밀입니다.
물질 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권투를 하다가 뇌사상태에 빠진 한 선수는 자기 장기를 기증함으로 인해서 수십 명의 사람들의 삶에 새로운 삶을 선물하지 않았습니까? 한 사람의 나눔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는 힘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나눔의 신비입니다.
오늘 성경도 말하기를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했습니다.
남을 위해서 돈을 쓰고, 구제하고, 나누어 주고, 기부하고 사는데 이상하게 더 부유해 지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색하게 살고, 어떻게 하면 더 모을까 고민하면서 살아도 더 가난해 진다고 했습니다.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생각들을 뒤집는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경제관입니다.
나만 윤택해 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 그j럴 때 자신의 삶도 윤택해진다 했습니다. 그러나 인색하게, 아끼고,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더 쪼그라들고, 더 가난해 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역설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지 제가 통과 파이프를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2. 통과 파이프 비유
여기에 물통이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물을 돈이라고 가정을 합시다.
사람들은 물통에 물을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통에 물을 자꾸 부으면 결국 어느 시점에서 다 차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또 다른 통을 준비하겠지요. 이번에는 더 큰 통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통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땀을 흘릴 것입니다.
이렇게 돈을 모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통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법니다. 더 큰 통을 준비해서 더 많이 채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평생을 채우고, 모으기 위해서 삽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물이 한 방울이라도 통 밖으로 튕겨 나가면 굉장히 아까워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계속 통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어느 선에는 중단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 때부터는 통에 있는 물을 사용합니다. 마시고, 씁니다. 그러면 점점 비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고갈 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통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파이프를 준비한 사람이 있습니다.
파이프는 물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물을 공급해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파이프는 물을 모으지 않습니다. 자신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해 줄 뿐입니다.
파이프가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물을 공급받고, 목마름이 해결됩니다.
파이프는 늘 이렇게 물을 공급해 주고, 배달해 주는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프는 언제나 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늘 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을 통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파이프로 사용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돈이라는 아주 중요한 수단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실 때는 단지 그것을 쌓아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그 돈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돈을 내가 가지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니라 나는 다만 전달하는 전달자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파이프가 큰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가끔씩 지하에 배관공사를 하는 것을 보다보면 엄청나게 큰 배수관을 볼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런 배수관은 작은 수도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많은 돈을 배달해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많은 재정을 맡겨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 손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장로님도 많은 돈을 벌지만 파이프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돕는 선교사, 목회자, 어려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다 짐작도 못합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남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렇게 삽니다.
이 분들은 많은 돈을 벌지만, 자신의 통에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버는 목적도 더 채우기 위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전달하기 위해서 버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맡겨주십니다. 큰 파이프를 주십니다.
얼마 전 간증 동영상을 보았던 이희돈 박사 같은 분들도 일년에 헌금 하는 금액만 해도 수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자신은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라고 끊임없이 그 파이프에 물을 대어주는 겁니다. 돈이 끊어지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나누어주면서도 물질적으로 풍성한 삶을 삽니다.
물질만 풍성합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풍성할까요?
성경 말씀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윤택해 진다고 했습니다.
남을 돕고, 필요를 채워주고, 남에게 기쁨을 주고, 남을 행복하게 해 주었는데
사실은 자기가 더 행복해지고,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물질관입니다.
3. 재정사용의 원리
여러분은 재정을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돈을 버십니까?
통처럼 채우고, 쌓기 위해서 돈을 버십니까?
파이프처럼 전달하기 위해서 돈을 버십니까?
여러분의 돈을 모두 나누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꼭 재정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재정 중에서 과연 어떻게 나눔에 쓸 것인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재정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입이 10이라고 가정을 하면 1/10은 교회를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1/10은 부모님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1/10은 이웃을 위해서 즉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 사용합다. 그리고 나머지 7/10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저는 우리의 재정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건전한 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의 재정을 여러분만을 위해서 사용하지 마시고, 나누시기 바랍니다.
나눔으로 부자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재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도 윤택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저희 교회는 개척 초창기부터 재정의 많은 부분을 나누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성탄절 헌금이나, 부활절 헌금 같은 특별 절기에 들어오는 헌금은 전액 자선단체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재정의 많은 부분을 선교와 구제비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개척교회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욕심을 내고 모았으면 적지 않은 금액을 모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들을 보다 쉽게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이렇게 축복하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가 작은 부분이지만 나누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흘러 보냈기 때문에 이렇게 복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 많이 나누는 교회, 축복의 통로 같은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저희 교회는 매년 초에 헌금 작정 시간이 있습니다. 특히 세계 선교헌금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헌금을 세계 여러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께 보냈습니다.
올 해는 더 많은 선교사님을 후원하기 위해서 선교예산을 작년보다 더 많이 세웠습니다.
선교헌금뿐만 아니라 구제헌금, 그리고 우리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비전헌금 등 많은 교회의 필요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 해는 왠지 헌금 작정 시간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여러분의 자율에 한 번 맡겨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감동되는 대로 헌금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 교회가 꼭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여러분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축복의 통로 같은 교회가 되고, 여러분의 가정이 축복의 통로 같은 가정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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