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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임호남 2007-12-09 추천 0 댓글 0 조회 474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목적입니다(요 8:1-11)  07큰뜻낮


2절을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신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장소뿐만 아니라 언제 가르쳤나 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기에 대해서 아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금 넓은 의미의 시기를 찾아보면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7장을 보면 이때가 바로 유대인의 명절 중에 하나인 초막절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명절이 되면 전국에서 일제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모여듭니다. 심지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까지도 모여들기 때문에 예루살렘 거리와 성전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됩니다. 바로 그 명절 기간 중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신 겁니다. 2절을 보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했는데 아마도 굉장한 인파가 모여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면서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데리고 왔다는 말보다는 끌과 왔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데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니까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륜을 저지르다가 현장에서 그대로 잡힌 여자입니다.


그 시대는 오늘처럼 성이 개방 된 시대가 아닙니다. 남여가 접촉만 해도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여자가 불륜을 저지르다가 현장에서 잡혀가지고 끌려 왔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여자를 보면서 이 여자가 그 상황에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까?  부모님 생각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여자가 틀림없이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 오늘 정말 재수 없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첫째, 이 여자를 보십시요. 죄를 짓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사람이 제일 당황스러운 것이 죄를 짓고 있는데 현장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칠 때입니다. 그것도 다른 죄가 아니라 간음죄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둘째, 누구한테 걸렸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철저한 원칙주의자들입니다. 전혀 타협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걸렸으면 좀 봐 달라고 사정을 해 볼만도 한 데 바리새인들은 어림도 없습니다. 걸려도 제대로 걸린 겁니다.


셋째, 더 큰 문제는 바리새인들이 이 여자를 성전으로 끌고 와서 그 죄를 모든 사람 앞에 다 공개를 해 버렸다는 겁니다. 전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터트려버렸으니 졸지에 세계적인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창피도 이런 창피가 없습니다. 아마도 죽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또 하나 문제는 뭐냐 하면 바리새인들이 이 여자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이 여자를 전혀 인간 취급을 안 합니다. 무슨 짐승이나 물건을 끌고 다니듯이 끌고 다니면서 인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 여자의 죄는 나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운이 없는 여자입니다.


1. 그런데 그 여자를 끌고 온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4-5).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겁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6절입니다. 예수님을 고발할 건수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 목적이 있었던 겁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이 사람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율법대로 그 여자를 돌로 치라’는 답이고 다른 하나는 ‘돌로 치지 말고 용서하라’는 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두 가지 대답 중 어떤 대답을 해도 결국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는 데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잘 들어보세요.


1) 만약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대로 그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면 그것 자체가 로마의 법에 저촉이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는 사형집행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을 돌로 치라고 하면 죽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진데 그러면 바로 예수님을 당장 로마법정에 고소할 참입니다.


2) 반대로 <용서하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건 율법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율법을 어긴 죄로 자기들의 종교재판에 넘길 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해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질문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어떤 대답이든 대답을 해야 했는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예수님은 대답을 즉시 하지 않으시고 허리를 굽혀서 땅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글을 쓰셨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글을 쓰신 주님은 일어나셔서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아주 짧은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죄를 지은 여자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돌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다만  누가 돌을 던지라고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1) 그런데 예수님의 이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간음죄를 지은 여인을 앞에 두고 그렇게 당당하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하나씩 도망을 가는 겁니다. 어른들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이 죄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젊은 사람들도 자리를 떴습니다. 모두가 자리를 떴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왜 그렇게 당당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한 마디에 풀이 죽어서 자리를 뜨고 말았을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고 보니까 자기에게도 뭐가 있어요? 죄가 있는 겁니다.


그 여자만 간음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자리에는 아직 들키지 않았지만 이미 간음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 여인과 다른 점은 그 여인은 죄가 드러났다는 것이고 자신들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차이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들은 이미 간음을 했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했고, 마음으로 살인을 했고, 생각으로, 말로, 눈으로, 손으로, 발로 온갖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한 사람도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모두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물어봅시다. 여러분들 중에는 그 여인에게 당당하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깨끗하다. 나는 아무런 죄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럼 천안 시민 중에는 돌을 던질 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온 세상의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찾아도 당당하게 돌을 던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에게 얼마나 쉽게 돌을 던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대화의 내용을 보면 거의 대다수의 대화가 돌을 던지는 대화입니다. 누구를 욕하고, 비판하고, 흉보는 대화가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은 선거철이니까 누가 주로 돌을 맞습니까? 정치인들입니다. 수없이 돌을 맞고 있습니다. 이래서 돌을 맞고, 저래서 돌을 맞습니다. 요즘은 검사들도 돌을 맞습니다. 나라 전체가 서로 돌팔매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들고 있는 돌을 좀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자신을 성찰합시다.


  상대방을 손가락질 할 때 한 손가락은 상대를 가리키지만 나머지 네 손가락은 자기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너”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보아야 합니다. 부부끼리도 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인들끼리도 서로 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웃끼리도 돌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 여기서 저는 예수님의 엄청난 능력을 봅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예수님은 말 한마디로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제압해 버렸습니다. 꼼짝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힘이 있다고 해서 능력이 아닙니다. 권력이 있다고 해서 능력이 아닙니다. 말 한 마디로 모든 사람을 꼼짝 없이 제압할 수 있는 것이 능력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단지 말 한마디로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죄를 다 드러내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 한마디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을 다 드러내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말 한마디로 다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꼼짝 못하는 겁니다. 얼마나 놀라운 능력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속을 다 드러내어 버리셨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도 꼭꼭 숨겨놓은 비밀과 부끄러운 생각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드러날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앞에서는 어떤 죄도 환한 대낮처럼 다 드러납니다. 누구처럼? 간음하다 잡힌 여인처럼 말입니다.


  간음한 여인은 어떤 면에서 보면 행운을 잡았습니다.  비록 자신의 부끄러운 죄가 다 드러났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행운을 잡았습니까?  예수님께 그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죄가 드러난 것은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드러났기 때문에 용서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를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겠지만 예수님에게는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왜요? 예수님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는데 감추면 뭐하겠습니까? 차라리 그분께 고백해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죄를 다루는 목적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용서하고 살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0-11절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그 여자의 나쁜 죄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용서하셨습니다. 왜요?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을 죽이는데 있지 않고 살리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다 부족하고 허물이 있습니다. 때로는 실수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실수를 지적하고 정죄하면 두 번 죽이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관심은 사람을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어떻게 살릴까에 있어야 합니다.


3. 사람을 어떻게 하면 살립니까?

1) 사람은 용서를 경험할 때 살아납니다. 이상하지요. 잘못을 지적하고, 지적하면 고쳐질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안 고쳐집니다. 변화가 안 됩니다. 더 나빠집니다. 반발합니다. 그런데 용서를 경험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랬을 때 이 여인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그러면 살아납니다.

 

2) 언제 살아납니까? 따뜻한 대우를 받을 때 살아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여인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몹쓸 인간, 짐승같은 존재라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한 사람으로,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했습니다. 그랬을 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사람,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따뜻하게 대우해 줄 때, 인격적으로 대우해 줄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원리는 우리 모든 관계에 다 적용이 됩니다. 부부관계, 자녀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모든 관계에 다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무시하고 정죄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게 됩니다. 용서하고 대우해 줄 때 사람은 변화되고 살아납니다.


성경은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죄인들, 창녀, 병자...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만 만나면 다 변화가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따뜻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용서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돌이 있습니까? 던지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는 그 돌을 내려 놓으십시요. 그리고 자신을 보십시요. 예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용서하시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따뜻하게 대우하십시요. 사람답게 대접하십시요. 그럴 때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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