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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임호남 2007-11-25 추천 0 댓글 0 조회 521

하나님의 사랑(요한 3:16)


퀴즈를 하나 낼까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무슨 말? "사랑해요"라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에너지가 넘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얼굴에서 표시가 난다. 생기가 돌고, 삶에 활력이 넘친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고백해 봅시다. 부부면 부부끼리, 부부가 아니면 동성끼리, 이성끼리는 하지 마세요. 괜히 오해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백해 봅시다. 벌써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1. 하나님은 세상을(나를) 사랑하시다.

  우리는 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식물이 햇빛을 받아야 건강하게 자라는 것처럼 인간도 사랑이란 햇빛을 받아야 생기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얼굴이 왠지 어둡고 그늘이 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늘이 없습니다. 환하고 생기가 돕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 하니까 너무 범위가 넓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말처럼 들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한 번 고쳐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다 자기 이름을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호남이를 이처럼 사랑하사...”  모두 자기 이름을 넣어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보여주는 너무나 중요한 진리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구약성경 아가서를 보면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주 진한 사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런 사랑의 표현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왜 이런 내용이 성경에 들어가 있을까요? 사실은 그 남여간의 사랑 이야기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남여간의 진한 사랑처럼 그렇게 우리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구약성경 호세아서를 보면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이란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서 다른 남자와 불륜에 빠집니다. 호세아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말씀합니다. 그래도 그 여인을 용서하고 다시 데려와라.


  호세아가 다시 그 여인을 데려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그 여인은 또 집을 뛰쳐나가 다른 남자에게로 갑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호세아에게 그 여인을 용서하고 데려오라고 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그 여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도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이 우릴 사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1) 여러분! 세상에는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거나 거짓된 사랑입니다. 달콤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얼마나 그 사랑이 불완전한 사랑인지 모릅니다.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고, 상처 받고, 아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참 사랑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다 해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십니다. 온 세상이 날 버린다 해도 하나님은 날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에 아무도 내 곁에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 때도 함께 하십니다. (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 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으로 유명한 이지서 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지선 양은 이화여자대학교를 다니는 중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7월 30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승용차로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퍼센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한 음주 운전자가 낸 6중 추돌 사고였다. 도저히 살 가망이 없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7개월간의 입원을 하는 가운데, 11차례의 수술을 받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예전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괴물같은 얼굴이 됩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큰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 가운데 퇴원해서 교회에 첫 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얼굴은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왜 나를 살려주셨나요. 말씀해 주세요. 그 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통해서 세상의 약하고, 아프고, 고통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도록 하겠다.> 지선 양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에 모든 고통에 대한 해답을 발견합니다. 그 한 마디에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이제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와 소망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 진리를 잊지 않는다면 어떤 자리,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반드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이 진리 때문에 얻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1) 무조건적인 사랑

세상의 사랑은 다 조건적입니다. 여러분은 왜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돈이 많으니까. 성격이 좋으니까. 섹시하니까. 내 이상형이니까. 나에게 잘 해주니까. 다 이런 조건 때문입니다. 가장 숭고한 사랑이라고 하는 부모의 사랑도 결국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는 겁니다. 남의 자식이라면 그렇게 사랑하지 못합니다.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고 희생하는 겁니다. 모두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랑은 그 조건이 무너지면 사랑도 바뀝니다. 매력이 없어지면, 돈이 없어지면, 생각했던 이상형이 아니면, 서로 헤어지고 등을 집니다. 부부지간에도 조건이 만족이 안 되면 결국 서로 등을 지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사랑 받을 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없는데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적도 없는데도 먼저 나를 사랑하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사랑 받을 가치조차 없는 그런 사람인데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아무도 그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시고 품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사랑하신 사람들을 보십시요. 남여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 더러운 병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창녀도 사랑하십니다. 특별히 어린 아이를 사랑하십니다. 권세를 가진 자도 사랑하시고 가난한 자도 사랑하시고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따라해 봅시다.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십니다.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라는 찬송을 지은 존 뉴톤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원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지만 노예선의 선장으로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 같은 나쁜 죄인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은혜가 너무 놀라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란 찬송시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도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이 사랑을 알게 되면 나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어떤 남편이 주일 밤 예배를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너무 잘하는 겁니다. 안마도 해주고, 사랑한다고 표현도 하고 너무 잘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아내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 지난주에 “네 아내를 사랑하라”는 설교를 하셨지요. 우리 남편이 예배를 드리고 나서 저한테 너무 잘합니다.  목사님이 하는 말, 사랑하라고 설교는 했는데 <네 아내를 사랑하라>가 아니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였는데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게 되면 원수도 사랑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희생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또한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립 서비스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랑에는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시간과 몸과 돈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립 서비스가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을 희생하는 실천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했다는 이야기입니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할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물건에는 다 값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에게는 값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 내 자식은 얼마짜리야>라고 어떻게 값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자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고통스럽게 죽게 하셨습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입술만의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롬 5: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분명하게 확증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할 만큼 사랑하십니다.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을 얼마나 값을 지불하고 샀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값을 매긴다면 얼마나 될까요? 답은 예수님짜리입니다. 예수님을 희생하시면서 여러분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이 죽으실 정도로 귀한 존재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은 목적이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자건거를 타고 가는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길로 가면 굉장히 위험한 길이고, 절벽이 있어서 떨어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그 길로 가고 있다면 가만히 보고 있을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뭔가 조치를 취할 겁니다. 소리를 지르든지, 여러분이 뛰어 가든지, 뭔가 행동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모두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계속 그 길로 가면 그 길 끝에는 낭떨어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길로 가면 위험하다는 많은 표지판을 이미 우리가 가는 길에 세워두었습니다.  우리의 양심이라는 표지만을 주셨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도록 안전장치를 심어 놓으셨습니다. 양심뿐만이 아닙니다. <그 길로 계속 가면 위험합니다>라는 표지판을 많이 주셨습니다.  일종의 사인을 주십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을 통해서, 크고 작은 사고를 통해서, 혹은 여러 가지 문제를 통해서 그 길로 가면 위험하니까 돌이키라는 사인을 주십니다. 그런데도 사람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계속 벼랑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제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명확하게 볼 수 있는 큰 표지판을 만들었습니다.


그 표지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표지판입니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 소중한 아들을 십자가에 높이 달리게 하시기까지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한다. 누구든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면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메시지를 줍니다.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그 죄로 인해서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는 메시지입니다. 돌이키지 않고 그 길로 계속가면 그 길 끝에는 무서운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가 보여주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말씀도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표지판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혹은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표지판을 보라고 말해주는 일입니다. 전도가 딴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 십자가의 표지판을 가리켜 주면서 한 번 보라! 그 길로 가면 안 된다고 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여기 바른 길, 살 길이 있다고 가리켜 주는 것입니다.


다음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위험한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바른 길인지를 말해주기 위해서 특별 집회를 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날 꼭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가족들 중에서 아직 예수님을 모른다면 꼭 초청하십시요. 이웃과 친구를 초청하십시여. 틀림없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결 론 >

  마지막으로 그럼 누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쉬운 방법을 주셨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믿는 자가 이런 사랑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믿기만 하면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그 사랑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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