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편 121:1-8)
‘보디가드’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휘트니 휴스턴과 캐빈 코스터너가 여가수와 그 가수를 경호하는 남자 경호원으로 등장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 속에 나오는 보디가드가 여 주인공을 어떻게 경호하는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굉장히 근접 경호를 합니다. 가까이 밀착해서 경호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밀착경호를 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경호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경호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아마도 그런 경호가 좋은 경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가까이 밀착해 있으면 불편하고 신경 쓸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경호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늘 살피는 그런 경호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선은 결코 자신이 경호해야할 대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늘 여주인공을 주시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여주인공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그 주변도 살핍니다. 혹시 위험 요소는 없는지 유심히 봅니다. 그러다가 어떤 어려움이 감지되면 신속하게 움직여서 여주인공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아마도 영화의 여자 주인공은 늘 자신 곁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보디가드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하거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밤길 다니기가 무섭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보디가드가 한 사람씩 따라 다니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 남자처럼 얼굴도 잘 생겼고, 무술 실력도 탁월해서 어떤 치한이 나타나도 단번에 퇴치할 수 있는, 그런 보디가드가 늘 내 곁에서 지켜준다면 어디를 가나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이런 보디가드 역할을 다 해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와 여러분은 사설 보디가드 자격증이 다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전문 보디가드처럼 24시간 보호해야할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굴까요? 우리 자녀들입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보디가드들입니다.
아이들을 24시간 근접경호를 합니다. 한 순간도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왜요? 아이들은 한 순간에 사건이 터지기 때문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가 터집니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집 안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신경은 온통 아이들에게 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유능한 보디가드인줄 말해볼까요? 우리는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이 아이의 필요가 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의뢰인의 표정만 봐도 아, 예가 응가를 했구나! 배가 고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울음소리만 들어도 무슨 문제라는 것을 알 정도로 우리는 유능한 경호인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 때를 생각해 봅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면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놉니다. 그러면 부모들은 그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늘 지켜봅니다. 없는 듯, 하지만 한 순간도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않고 경호를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뛰어갑니다. 이것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부모의 보호입니다.
1. 하나님의 보호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때도 부모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못 느낍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때론 안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4시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를 지키는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우리 부모는 우리를 지키다가 때로는 졸기도 하고, 자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4시간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언제나 우리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도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될까요?
1) 3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여러분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길을 갈 때는 특히 낯선 곳이나 위험한 곳을 갈 때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갑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 손을 잡고 있는 것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부모의 손길을 언제 느끼게 될까요? 편안히 길을 갈 때는 잘 모릅니다. 돌부리에 발이 딱 걸려서 넘어질 때 바로 그 때 부모의 손을 의식하는 겁니다.
어떻게요? 나는 걸려서 넘어지는데 완전히 쓰러지지 않습니다. 왜요? 내 손을 붙잡고 있는 부모의 강한 손이 나를 꼭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비록 돌부리에 걸려서 중심을 잃어버렸지만 완전히 넘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정신을 잃고 있다가 아이가 넘어져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졸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항상 우리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는 세상살이를 하다가 이런 저런 문제로 걸려서 넘어지고 쓰러지려고 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그 때마다 붙잡아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완전히 넘어져도 하나님이 안 붙잡아주던데요!>. 아마 그런 사람도 있을 겁니다. 완전히 넘어져서 무릎이 다 깨어졌는데도 하나님이 안 붙잡아 주는 겁니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때는 왜 하나님이 안 붙잡아 주셨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완전히 한번 자빠져서 무릎이 깨어져야 정신을 차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붙잡아 주시는데 고마움을 모릅니다. 도리어 자꾸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고 잘 못된 곳으로 도망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하나님이 잡아당기는데도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간혹 넘어져도 안 잡아주십니다. 왜요? 정신 차리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란 문제가 주님의 사랑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있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겁니다. 정신 차려! 그러면 안 돼! 거기서 멈춰,
마치 자녀들이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으면 멈추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위험한 물건에 손이 가면 아이 손등을 탁 치는 것과 같습니다(앗 뜨!). 맞으면 아이들은 아픕니다. 그러나 맞았기 때문에 더 이상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넘어져도 그냥 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안 잡아주셨다고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안 잡아주실 때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계속 쓰러져 있도록 두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완전히 주저앉아 있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여러 가지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때마다 주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힘든 순간들이 순간순간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손을 잡아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시고, 앞에서 끌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시편 1절을 보면 시편가지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고, 내가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 과연 누구의 도움이었는가? 자신의 주변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 때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2절입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오늘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움이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바쁘고 분주해서 생각해 볼 틈이 없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묵상해 보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는 겁니다. '나의 등 뒤에서'라는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1.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때
나를 밀어 주시네 /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저와 여러분도 올 한해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면서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어떻게 우릴 도우십니까? 5절입니다.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늘이 되신다 무슨 뜻일까요?
이스라엘은 낮에는 제대로 일을 할 수도, 길을 걸어갈 수도 없는 아주 더운 땅입니다. 그런 지방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계속 일을 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길을 걸어가면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씩 쉬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햇빛을 피해서 쉴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시원한 그늘입니다. 햇빛 아래서는 아무리 오래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 더울 때는 어디 손바닥만 그늘이라도 없는가? 본능적으로 그늘을 찾게 됩니다.
더운 여름에 아내와 함께 길을 걸을 때 아내가 가끔씩 제 키가 만들어 주는 그늘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키가 크니까 그늘도 제법 깁니다. 그래서 그 그늘이라도 혜택을 보려고 합니다. 덥고 힘들 때는 정말 그런 작은 조차도 우리에게 쉼을 주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그늘이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힘든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정말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좌우를 둘러봐도, 쉴 때가 없습니다. 육체적으로만 쉬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정신적으로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잠시 숨어서 숨을 돌리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온통 뙤약 볓 뿐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숨이 막히는 겁니다.
그 때 하나님이 우리 곁으로 오셔서 작은 그늘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그늘입니다. 힘들지, 여기에 들어와서 잠시 쉬어. 그리고 힘을 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그늘에 들어가서 잠시 숨을 돌립니다. 마치 타는 목마름 속에 있던 사람이 생수 한 모금을 마신 것처럼 그 작은 그늘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달려갈 수 있는 생수가 되는 겁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시면 하나님이 그런 그늘이 되어 주셨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때론 생수 같은 은혜를 주셨고, 때로는 성도들을 통해서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그늘 때문에, 그 힘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 그늘이 어떤 그늘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3) 영원까지 함께 하십니다(7-8).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많은 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단 한 번 도와준 분들도 있고, 때로는 여러 번 도와준 분들도 있습니다. 제일 고마운 분은 어떤 분일까요? 늘 내 곁에서 내 편이 되어 주고, 나를 도와주는 분입니다.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고마운 것은 그분의 도움이 한 번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은 그분께서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언제가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인생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좀 길게 보아야 합니다. 잠시 살고 말 것이 아닙니다. 길게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평생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밝고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는 이유는 평생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우리에게는 평생 동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 결 론 >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감사하겠습니까? 시편 기자처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누가 나를 도와주셨나?”
돌아보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24시간 우릴 주목하셨습니다. 때로는 가까이 느껴질 때도 있었고, 때로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늘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넘어져 쓰러졌지만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내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돕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기적을 통해서 돕기도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우실 겁니다. 추수감사절은 그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제일 불행한 사람은 무엇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감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감사를 모르는 사는 사람입니다. 제일 행복한 사람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절은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이 번 한 주 동안 개인적으로 감사의 제목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우리 가족이 감사해야할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서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도 감사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시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고백하게 하십시요. 그럴 때 우리 마음이 더 풍성한 감사가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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