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뭘까?(히 11:1-4)
교회 안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란 단어이다. 교회 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알 듯 말듯합니다.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을 잘 모릅니다. 믿음의 의미가 손에 잡힐 것 같은데 잘 안 잡힙니다. 믿음에 대해서 정확한 공부를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고 결국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믿음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잘 믿어보려고 무척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저 청년 상당히 믿음이 좋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 때의 믿음이 과연 올바른 믿음이었을까 하고 되물어 보면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올바른 믿음일까요?
1. 우리는 무엇이 올바른 믿음인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자연히 믿음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기가 쉬워진다.
1) 믿음은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다.
이것은 주로 우리네 토속적인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정한수’를 떠다 놓고 비는 겁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그 대상은 명확하지 않지만 열심히 지성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지성을 들이면 하늘도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맹목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성으로 정성을 들이면 하나님도 감동하겠지,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겠지>. 그러나 믿음은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다.
2) 믿음은 자기최면이 아니다.
자기최면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거야 맞을 거야. 맞아. 그러면 되> 자꾸 반복적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다보면 뭔가 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 방법은 주로 사이비종교에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건 믿음이 아닙니다.
3) 믿음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자기의 의지를 강하게 발동시켜서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신념훈련이다.
아마도 가장 일반화된 믿음의 유사품 중에 하나가 바로 적극적인 사고방식일 것이다. 많은 경우 믿음과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혼동하고 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소극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훨씬 성공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믿음 안에는 이런 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사상이 담겨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신앙을 가지면 갖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인생에 대해서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위와 같은 것들이 믿음이 될 수 없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들은 모두 그 믿음의 근거 또는 기반이 누구에게 기초를 두고 있을까요? 자신에게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 확신이며, 자기긍정이며, 자기최면입니다.
모두 자기 자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믿음은 자기가 무너질 때 함께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자기의 신념이 무너질 때, 나의 의지가 무너질 때 같이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무너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유증도 큽니다. 집이 무너지면 그 주변이 폐허가 되듯이 잘못된 것을 믿고 의지하던 사람은 그것이 무너질 때 자기 인생도 함께 무너집니다.
교회 잘 나오던 사람들 중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잘 나오던 사람이 어느 날 교회를 안 나옵니다. 안 나올 뿐만 아니라 과연 이 사람이 이전에 믿던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사람이 달라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믿음을 떠나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믿었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그렇다면 여러분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은 그 기반을 나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누구에게 둘까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두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 이것을 가리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1) 여기서 두 가지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첫째는 믿음은 대상이 있다는 겁니다.
막연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둘째는 그 믿음이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그 믿음의 내용과 대상을 믿을 때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동원해서 믿는 다는 말입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결혼과 비슷합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뭘까요? 지성이 동원됩니다. 먼저 서로 알아야 합니다(이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성격이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가정환경은 어떤지, 습관은 뭔지, 가치관은 어떤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다음 알아갈수록 조금씩 신뢰감이 형성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감정도 생깁니다.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결혼이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을 나의 배우자로 맞이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결혼이 성립됩니다.
인격적인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다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단군 할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산신령이라 생각하고 믿는다면 제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최소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분에 대해서 알면 자연스럽게 신뢰감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하나님만큼 신뢰할 만한 인격을 가진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뢰감이 생기면 감정적으로 어떤 느낌도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을 생각할 때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엔 믿기로 의지적인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내가 그분을 내 마음에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믿음에는 이런 인격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많은 경우에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전도를 했는데 짧은 시간에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를 받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면서, 믿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은 무조건 믿는 다는 맹신도 아니고, 자기최면도 아니고,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쓰면 믿음은 바라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것들의 실체를 손으로 잡는 것처럼 잡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실제로 본 것처럼 보는 눈과 같다는 겁니다.
2) 여러분! 어떻게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실제로 이루어진 것처럼 잡을 수 있고 보지도 않은 것을 본 것처럼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앞서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에서 이미 했습니다.
믿음이란 내 안에서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한번 예로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과 오래 사귀다보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반대로 불신감이 생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뢰감이란 것은 결코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약속에 대한 진실성, 솔직함 등 모든 면들을 겪어보고서 “이 사람은 믿을 수 있구나”라고 간주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말을 믿어줍니다. 혹시 급한 일이 있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떤 사람을 겪어보고 신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더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조금의 더러움이나 잘못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거짓말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약 진실하지 않았다면, 한번이라도 우리를 속였다면 저는 당장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도 속이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모르시는 것이 없고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면 내가 굳이 기독교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믿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성경이 뭘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믿습니까. 내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믿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사상이나 인격을 보여주는 겁니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인격과 생각과 뜻을 보여주기 때문에 믿는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대상인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를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말하면 누구든지 믿음을 쉽게 가질 수 있는 것 같죠.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왜 이렇게 믿음이 빨리 자라지 않는지 모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하면 안 됩니다.
3. 믿음은 어떻게 자라는가?
왜냐하면 믿음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진적으로 자랍니다.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급하다고 한꺼번에 여럿을 오르지 못합니다. 키가 자라면 몇 단계를 뛸 수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면 갈수록 자연히 더 믿음이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하면 할수록 더 신뢰감이 쌓이게 됩니다.
1) 어릴 때 겨울에 강에서 썰매 탈 때 생각해 보세요.
얼음이 얼면 동네 아이들은 흥분해서 강으로 뛰어갑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뛰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차가운 강물에 빠져죽는 수가 있습니다. 먼저 돌을 한 번 던져 봅니다. 그 다음에 한 쪽 발을 올려 봅니다. 굴려 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두 발을 다 올려 봅니다. 그리고 힘도 주어봅니다. 그렇게 얼음이 검증이 되고 신뢰감이 생기면 그 위에서 자유롭게 썰매를 탑니다.
믿음도 이렇게 조심스럽게 검증을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신뢰가 쌓입니다. 완전한 신뢰감이 생기면 얼음 위에서 자유롭게 썰매를 타는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쁘게 사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믿음을 자꾸 써먹어야 합니다. 실천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확인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했습니다. 믿고 구하라 했습니다. 그러면 응답해 주신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체험하려면 실제로 기도해 보면 됩니다. 이번 특새에 기도제목을 가지시고 믿음으로 기도해 보세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런 체험이 있으면 믿음이 자랍니다.
또 하나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가만히 있으면 체험하지 못합니다. 성경대로 한 번 순종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바로 약속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그만큼 수많은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겁니다. 그럴 때 과연 “그 약속이 이루어지나 이루어지지 않나”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확인해 보는 과정이 순종입니다. 말씀대로 실천해 보세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합니다.
믿음 마치 근육과 같습니다. 근육은 자꾸 쓸수록 강해집니다. 쓰지 않으면 근육은 약해집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믿음을 써볼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자꾸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 행동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을 체험하게 되고 강해집니다.
< 결 론 >
믿음생활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생활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을 봅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믿으십시요. 그분의 약속을 믿으십시요. 믿고 나가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건전하고 인격적인 믿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체험적인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번 특새에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기도제목을 꼭 정하십시요.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히 11:1-4)
그런데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별 생각 없이 믿음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믿음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하기고 하고 믿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믿음이라고 오해를 착각을 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1.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자연히 믿음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기가 쉬워진다.
1) 믿음은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다. 이것은 주로 우리네 토속적인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있을 때 ‘정한수’를 떠다 놓고 대상은 명확하지 않지만 열심히 지성을 올렸다. 그렇게 하면 하늘도 감동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맹목적인 신앙인 것이다. 2) 믿음은 자기최면이 아니다. 자기최면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가정을 하고 자꾸만 그렇게 시인하는 반복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3) 믿음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의 의지를 강하게 발동시켜서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신념훈련이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것도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아니다. 왜 위와 같은 것들이 믿음이 될 수 없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들은 모두 그 믿음의 근거 또는 기반이 자신에게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언젠가는 자기와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2.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은 그 기반을 철저히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두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첫째는 믿음은 대상이 있다는 겁니다. 막연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둘째는 그 믿음이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믿을 때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동원해서 믿는 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믿을 수 없습니다. 알면 그분에 대한 신뢰감이 생깁니다. 감정적으로 어떤 느낌도 올 수 있습니다. 이 감정은 먼저 느낄 수도 있고 믿고 나서 후에 따라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다음엔 믿기로 의지적인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은 무조건 믿는 다는 맹신도 아니고, 자기최면도 아니고, 적극적인 사고방식도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3.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
첫째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조금의 부정도 용납이 안 됩니다. 진실하십니다. 거짓말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이십니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십니다. 모르시는 것이 없고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면 내가 굳이 기독교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는 성경의 내용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세상 어떤 책에도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이 말하는 책은 없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성경처럼 명확한 답을 주는 책은 없습니다. 성경처럼 진실한 책도 없습니다. 성경은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이라고 추앙받는 모세, 아브라함, 다윗과 같은 사람들의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을 푸대접하는 겁니다.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겁니다. 믿어 드려야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그분의 성품을 믿으십시요. 그분의 약속을 믿으십시요.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건전하고 인격적인 믿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살아 있는 체험적인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내용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세상 어떤 책에도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이 말하는 책은 없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성경처럼 명확한 답을 주는 책은 없습니다.
성경처럼 진실한 책도 없습니다. 성경은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이라고 추앙받는 모세, 아브라함, 다윗과 같은 사람들의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가능하면 그것을 피하고 싶은 인간적인 고뇌의 모습까지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진실한 책이기 때문에 신뢰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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