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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임호남 2007-08-26 추천 0 댓글 0 조회 288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마태 10:24-33)


사람들에게는 모두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큰 병에라도 걸리지 않나? 어떤 사람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 장래는 과연 문제가 없는가? 노후가 보장되어 있는가? 이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상사나 위엣 분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두려움을 가집니다.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든 사람들에게는 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그 사람이나 상황에 내가 매이게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마음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쫒기는 듯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래 문제가 걱정이 되는 사람은 그런 불안요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을 해서 돈을 모읍니다. 재테크를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계속 강하게 만듭니다. 담력을 기르기도 하고, 대인관계에 자신을 가지기 위해 스피치 훈련을 받기도 하고, 메이크업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방법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면 삶이 피곤하고 힘이 듭니다.


이런 방법 외에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뭘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신기하게 세상의 두려움들이 사라집니다. (시 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다윗은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라고 고백합니다. 두려울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27:3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적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립니다. 수많은 전쟁을 합니다. 그래서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무서울게 없다 했습니다. 사람들이 건강, 장래, 인간관계, 돈, 안전 등 이런 모든 종류의 두려움에 빠지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정말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두려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럴 때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1. 사람을 두려워 말라.

믿는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면 고난이 있다 했습니다. 세상과 적당히 어울려 살면 고난이 없지만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고난이 있습니다.


24-25절을 봅시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고 했습니다. 여기서 집 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그 집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바알세불은 사단을 가리킵니다.


무슨 말일까요?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 기적이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탄의 능력으로 그런 일을 한다고 예수님을 조랑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집 주인과 같은 예수님도 핍박했다면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인 제자들도 핍박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예수님도 핍박을 받았다면 우리들이 핍박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상하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상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제일 큰 적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할 때 신앙생활의 위축을 받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까요?


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

1)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보면 ‘두려워 말라’ 말씀하신 예수님은 “감취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잘못이 다 드러나고 시시비비가 가려질 때가 있을 것이니 두려워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언제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모든 죄가 철저하게 드러나게 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 때는 무엇이 옳은지, 누가 옳은지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 때 되면 다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말씀대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힘들어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27절을 보면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더 담대하게 외치라고 말합니다(27). 주님이 개인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 진리를 이제는 너희는 공개적으로 말하라고 합니다. 은밀하게 말한 진리를 담대하게 외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몸과 영혼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겪는 두려움의 절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는 것이 무서워서 쩔쩔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의 몸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몸을 죽인다는 것은 육체적인 생명을 죽이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또한 육체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끊어버리는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목숨 유지에 필요한 것들이 끊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예들 들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돈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직장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직장에 매이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도 필요하고, 부모도 필요하고, 친구도 필요하고, 성공도 필요하고, 출세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잃을까봐 두려워서 그것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특히 과거에는 예수를 믿으면 직장과 가정에서도 쫓겨났습니다. 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 어떤 성도들은 그것이 두려워서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당히 타협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몸을 죽이는 사람을 두려워말고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몸과 영혼까지 좌우하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비록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잠시 편하기 위한 선택이 우리를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무엇을 정말 두려워해야 하냐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이 지옥에 가는 겁니다. 내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여러분!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두려워서, 먹고 사는 것이 두려워서, 사람들의 눈치와 정 때문에 지옥으로 가겠습니까? 그것은 너무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을 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가 분명해 집니다.

 

제가 군대에 갔을 때입니다. 자대를 배치 받았는데 회식을 합니다. 그런데 소령 한 분이 저에게 소주잔에 술을 주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술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두려웠습니다. 정말 두려웠습니다. 상관이 주는 술을 거부하다는 것이 군대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물론 그 일로 고참에게 두들겨 맞았지만 저는 사람보다 그리고 사람이 주는 고통보다 하나님이 더 두려웠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군대 생활 하는 동안에 누구도 저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회식이 있으면 언제나 저 앞에서 콜라와 사이다가 놓여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갈림길에 설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때 마다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했을 때 선택은 분명해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성경의 사람들은 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1) 다윗을 보십시요.

어린 소년이었을 때 다윗은 블레셋의 장군이었고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었던 거인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을까요? 비결은 그가 사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이 두려워서 도망할 때 다윗의 마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그리고 달려 나가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소년 다윗의 눈에는 거인 골리앗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2) 다니엘과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자기가 만든 금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불속에 던져 버리겠다고 했을 때도 그들은 결코 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불 속에서라도 건져내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건져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결코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니까 왕도 불도 겁나지 않았던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부모님께 불효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바른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당당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의 눈치를 봅니다. 늘 염려가 많습니다. 먹고 살 염려, 내일의 염려, 생활의 많은 염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과 사람에 매여 삽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요. 그러면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29-31).

여러분!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29절을 보세요. 예수님 당시에 시장에서 가장 값싸게 매매되는 식량이 참새였습니다. 그 참새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극히 작은 미물도 하나님의 통제 속에 있다는 겁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고 있습니다. 자기의 머리카락을 다 세 보신 분 있습니까? 우리는 내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있습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내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두려워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참새보다 더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결 론 >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합니까?  32절입니다.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해야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라는 겁니다. <나 예수 믿습니다. 교회 다닙니다.> 고백하라는 겁니다. 이 고백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자신이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있고, 예수님에 대해서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드러내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33절을 보십시요.

주님은 우리들이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할 때 주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도 우리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천국에 갔는데 주님이 우릴 “모르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 집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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