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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각오하라
임호남 2007-08-19 추천 0 댓글 0 조회 507

고난을 각오하라(마태 10:16-23)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저를 영적으로 지도하시던 지도자가 이런 질문을 저와 친구들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여러 가지 고난이 있는데 이런 고난에 대해서 처음 믿을 때 말을 해 주는 것이 좋은지? 그렇지 않으면 믿고 나서 자연스럽게 본인이 알도록 놔 두는 것이 좋은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의 좁은 생각으로는 <굳이 처음 믿을 때부터 힘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믿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적지도자는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입니까? 처음부터 말해 주는 것이 옳을까요? 믿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나을까요? 어느 것이 옳은지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항상 모든 것이 순탄하고 편안한 삶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물론이고 믿고 있는 사람조차도 예수 믿는 것은 복 받기 위해서, 뭐든지 잘 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 믿으면 잘 되고 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모든 좋은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팔자와 운명에 매여 삽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팔자를 바꿀 힘이 없습니다. 이사도 결혼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다릅니다. 어떤 불행과 고통이 와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한 가지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고난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봅시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좋은 말씀은 하나도 하지 않고 모두 힘들고, 괴로운 말만 하셨습니다.


1. 고난 받는 성도들

17절을 봅시다. “너희들이 사람들에게 채찍을 맞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채찍에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요? 살이 터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겁니다.


  18절을 봅시다. “총독들과 임금들에게 끌려 갈 것이라”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잡혀가서 투옥된다는 뜻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가장 막다른 길에 가는 곳이 감옥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다보면 감옥도 간다는 겁니다.


20절을 보면 더 충격적이 말이 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혈육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낸다고 했습니다. 22절을 보면 “너희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왕 따 당하는 겁니다. 어디를 가도 대접을 못 받고 천덕꾸러기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대접 받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 이런 엄청난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서슴치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예수 믿으면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다니까 겁나지요?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닙니다. 예수 안 믿어도 살다보면 고난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왜 고난을 받는가 하는 겁니다. 고난의 이유가 중요한 겁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이 있을까요?


2. 왜 고난이 있는가?

1) 복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으면 아무런 어려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 드러내지도 않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살면 아무도 우리 믿음에 대해서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편안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세상 속에서 우리 믿음을 드러내라는 말입니다. 적극적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주님을 전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고난이 찾아오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도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는 이유가 뭡니까?  10:7절을 봅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천국을 소개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하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제자들이 당하게 될 어려움은 순전히 복음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요.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면서 수많은 도시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때마다 반대와 투옥과 심지어 돌을 맞고 죽을 뻔한 이런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이런 고난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각오하면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딤후 1:8절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2)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는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승인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24-25절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요한 15:18-20절을 봅시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예수님이 미우니까 제자들인 우리들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할까요? 요한복음 1장에 답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5절입니다.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을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세상은 죄로 인해서 구석구석이 어둡습니다. 갈수록 더 깜깜해 집니다. 그 세상에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의 역할은 어둠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어둠이 다 드러났습니다. 어둠이 드러났다는 말은 사람들 안에 있는 죄가 다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어둠을 다 드러내니까 사람들이 좋아했을까요? 싫어했을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어둠을 밝혀주시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만 정 반대입니다.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 자기 속에는 감추고 싶은 어둠이 있기 때문입니다. 속에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 있는데 자꾸 그 부분을 비추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싫어하는 겁니다.


여러분! 죄인들의 특징은 빛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좀 어두워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예수님을 좋아합니까? 죄인은 죄인인데 그 죄를 인정해 버린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부모님이 아끼는 물건을 깨뜨렸거나 돈을 받아서 엉뚱한데 썼거나 했을 때는 부모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 내려 않습니다.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차라리 다 들통이 나서 회초리를 맞는 것이 낳습니다. 죄가 드러나고 대가를 치루고 나면 더 이상 불안과 초조로 고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가 학력 위조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자신이 다니지도 않은 학교를 다녔다고 속이고 다녔던 겁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하는 공통된 말이 그동안 너무 괴로웠다는 겁니다. 이제 비록 다 드러났지만 마음은 편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죄를 감추고 어둠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 고백하고 부끄러움을 인정하면 더 이상 어둠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부터는 빛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죄를 감추는 사람들이 아니라 빛 되신 주님 앞에 나아가 솔직히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인정하고 고백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 되신 주님에게 나아오지 않는 사람은 빛이 불편한 겁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는 다 어두운 곳을 찾는 겁니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항상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면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런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불편해 합니다. 왜요? 자신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빛을 좋아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합니다. 그래서 참 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3. 고난 받는 성도들의 자세

1) 모든 것을 복음의 관점으로 바라보라.

고난을 고통으로 이해하면 굉장히 괴롭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복음의 관점으로 보면 고난이 가벼워집니다.  17-18절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임금들에게 끌려가게 될 때 그것이 도리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내가 전도하다가 재수 없게 고생한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높은 양반들에게 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차라리 이런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잘 됐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관점입니다. 복음의 관점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어려움만 생각하면 너무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어려움이 영광이 되는 겁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빌 1:20-21)『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살고 죽는 것은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가? 아닌가 하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관점입니다. 모든 문제를 복음의 관점으로 보세요.


2)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극한 상황에 빠지면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번에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도 인간적으로 보면 엄청난 공포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극한 상황 속에 빠질 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9-20절). 아니 어떻게 염려가 안 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할 말은 주신다는 것은 그 무시무시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준다는 말입니다.


  극도의 불안한 상황 속에 빠졌는데도 할 말이 생각이 나고 또 적절한 말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그런 용기와 지혜를 주십니까? 성령께서 주십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닙니다. 내 정신, 내 결심, 내 지혜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기는 겁니다. 성령님을 의지할 때 마음에 평안과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까?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요. 그러면 용기가 생기고 지혜가 생깁니다.


3) 끝까지 견디라는 겁니다(22).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견디는 것, 인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 참지 못합니다. 금방 어떤 결과가 명백하게 나야 안심을 합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그러면 조급해지고 실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라.” 여러분! 정말 힘들 때는 하나님께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요. 인내하는 자가 결국은 승리합니다.


< 결 론 >

여러분!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을 복음의 관점을 이해하십시요. 그리고 내 힘으로 이기려고 하지 마시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요. 마지막으로 끝까지 인내하십시요. 그럴 때 여러분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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