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말씀 >
  • 주일설교
약점을 극복하는 원리
임호남 2007-06-24 추천 0 댓글 0 조회 149

약점을 극복하는 원리(마태 9:27-31)   07큰뜻낮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애가 심하면 심할수록 그 불편은 더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문제들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나 힘든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작년에 다리를 다쳐서 한 달 정도 깁스를 하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때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평상시 교회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가는데 계단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교회 계단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오르내리려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우리는 지난주에 한 관리와 한 여인이 각자 예수님을 찾아와서 병을 고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두 명의 맹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의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앞에 나오는 두 사람도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신체적인 장애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대하는 두 맹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우입니다. 그래서 앞의 두 사람보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 훨씬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육신적인 장애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약점들입니다. 부족한 부분들입니다. 그런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1. (없는 것보다) 자신에게 있는 것에 주목하라

27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그 곳을 떠나가시는데 두 맹인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예수님이 지금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앞을 볼 수 없으니 마음이 다급합니다. 보인다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면 됩니다. 그러나 볼 수가 없으니까 어디에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단은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그리고 허겁지겁 발길을 놀리는 겁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 누군가를 따라가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마음은 조급하지요. 방향은 알 수 없지요. 아마도 계속 부딪혔을 겁니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건물에 부딪히고, 계속 부딪혔을 겁니다. 수 없이 넘어졌을 겁니다. 무릎이 깨지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들에게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건강한 다리가 있었습니다. 시각장애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들에게는 건강한 다리가 있었습니다. 그 다리로 주님께 나오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자신에게 없는 것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공평한 것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이런 것 같습니다.


- 얼굴이 예쁜 여자아이들은 공부를 조금 못합니다. 이것이 진리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겪어보니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보면 공부는 잘하는데 몸이 약하거나 운동을 별로 못합니다. -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는 못하는데 대신 손재주나 기술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한쪽을 잘하면 다른 쪽은 부족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키가 크면 좋은 것 같지만 키가 큰 사람은 보통 허리가 안 좋습니다. 키 작은 사람이 허리 디스크에 걸리는 경우는 별로 못 봤습니다.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무 것도 잘 하는 것이 없다.” 그런 사람도 실망하지 마십시요. 보통 이런 사람은 자기가 잘 못 하나니까 다른 사람을 잘 시키는 지도자의 자질이 있습니다. 세상은 뭔가 공평합니다.


뇌성마비로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온 몸을 비틀거리면서 해야 하는 중증 장애우인 송명희 시인의 시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 공평하신 하나님이 /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라는 큰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없는 것을 주목하기보다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자신의 큰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없는 것에 집착해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놓칩니다. 자기의 단점 때문에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생활을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자기의 에너지의 90%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단점을 고칠까 자나 깨나 거기에 매달려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늘 자신이 잘 못하고 있는 그 부분만을 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바꾸어야 하느냐 하면 자신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살리는 쪽에다 자신의 에너지의 90%를 쓰라는 겁니다. 그리고 단점을 보완하는데 나머지 10%를 사용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가 못하는 것보다 잘 하는 쪽을 살리기 때문에 인생이 행복하고 즐겁다는 겁니다.


저는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 때는 저의 단점에 사로잡혀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인가? 왜 나는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가?> 늘 그 부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신감도 없었고 그래서 늘 우울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가르치는 쪽에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가르치는 일은 하루 종일해도 지겹지 않았습니다.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습니다.  내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이제는 그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잘 하는 부분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러니까 삶이 행복하고 목회가 행복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인생이 불편합니다. 남보다 더 노력하고 애를 써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점에 집착하지 마십시요. 장점을 보십시요. 없는 것을 가지고 한탄하고 원망하지 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십시요. 그리고 그 있는 것을 활용하십시요. 그것을 잘 개발하십시요. 그럴 때 약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2.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두 맹인을 보십시요.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했습니다. 주님께 나아갈 때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다른 사람은 단 몇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도 이 사람들은 아마 몇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약점이 많으면 남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은 시간은 걸려도 결국은 뭔가를 이루어 냅니다.  두 맹인은 앞을 못 봤지만 튼튼한 다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활용했습니다. 주님을 향해서 뛰었고 소리 질렀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는 겁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매일 지렁이들이 이동시키는 흙의 양은 우리가 기계로 평생 이동시킬 수 있는 흙의 양보다 많다고 합니다. 우리 눈에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눈송이는 매우 작지만 그 눈송이가 밤새도록 내리면 집을 무너뜨려버리는 엄청난 힘이 됩니다. 여러분! 노력하는 것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요. 노력이 쌓일 때 큰 힘을 발휘합니다.

 

28절을 보겠습니다. 두 맹인이 어디까지 좇아옵니까? 예수님이 들어가신 집까지 좇아옵니다. 어떻게 해서 그곳까지 올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만 끝까지 좇아왔습니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승리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도 만납니다.


<최근에 읽은 기사 중에 왕년에 촉망 받는 체조선수였던 김소영씨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다가 이단평행봉에서 떨어져 대소변까지 받아내어야 하는 1급 장애인이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인생이 끝난 겁니다. 그런데 그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살려서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이런 기사도 읽었습니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가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다 잘라야 했던 산악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산악인이 손가락이 없다면 그것도 열손가락이 없다면 산악인으로서 생명은 끝난 겁니다. 그런데 10손가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에베레스트에 등정에 성공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모두 큰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을 때 진정한 승리가 뭔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해도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도 끊임없이 노력할 때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3. 믿음을 가져라.

돌을 물에다 던지면 돌의 무게 때문에 물에 그대로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돌도 나무에 매달아서 물에 던지면 물에 빠지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나무의 부력이 돌의 중력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돌이 아무리 커도 그 돌을 지탱해줄 부력이 더 강하면 결코 가라앉지 않습니다. 철판으로 만든 항공모함도 바다에 뜨는 것을 보십시요. 더 큰 힘이 다른 힘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가 능력의 주님과 결합할 때 우리는 나의 연약함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연약함을 극복하게 됩니다.   이 원리를 깨달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빌 4:13).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는 겁니다. 믿음을 가지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연약할수록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아온 두 맹인에게 묻습니다. 28절입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믿음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 때 맹인들은 대답합니다.“주여 그러하오이다.” 그들은 주께서 자신들의 눈을 고쳐 주실 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합니다. 부족하고, 단점이 많아도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가지고 나올 때 나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길 바랍니다.

 

< 결 론 >

주님은 세상의 모든 맹인을 다 치료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온 자들의 눈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주님이 보길 원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주님께 나아오는 믿음입니다. 고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주님은 고통을 통해서 주님께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인격적인 만남을 갖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치유 받은 맹인들에게 절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치유 받은 사실만 말할 때 사람들은 단지 눈으로 드러난 그 모습, 그 현상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자신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아플 때 그 아픔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와서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치유를 경험하는 그런 인격적인 만남, 그래서 이제는 나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아는 그런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 나아오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부르짖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으로 인한 치유를 경험합니다. 치유 받으면 인생이 건강해집니다.  치유 받은 사람의 특징은 이제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치유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주님의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 이제는 자신처럼 아파하는 사람을 치유하고 돕는 치유자가 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치유 받은 치유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연약함을 극복함으로 인해서 이제는 치유 받은 치유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진정한 지도자 운영자 2007.07.01 0 111
다음글 믿음이 귀합니다 운영자 2007.06.19 0 146

31172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14길 78-6 (쌍용동, 서부장로교회) 큰뜻행복한교회 TEL : 041-578-9310 지도보기

Copyright © 큰뜻행복한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7
  • Total98,867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