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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귀합니다
임호남 2007-06-17 추천 0 댓글 0 조회 148

믿음이 귀합니다(마태 9:18-22)


요즘 시대의 시대적인 흐름을 가리켜 흔히들 외모지상주의라고 말합니다. 외모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취직을 하려고 해도 외모가 뒷받침 해 주지 않으면 불리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너도 나도 성형을 하려고 합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인격이나 감추어진 능력을 보기보다는 일단 눈에 보이는 모습을 중요시합니다. 예를 들어서 말을 잘한다거나, 성격이 적극적이거나 좋은 집안출신이거나 이런 드러나는 부분만을 가지고 사람을 쉽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외모만을 보시고 사람을 뽑는다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약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외모라면 이 중에서도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상당이 있을 겁니다.  키가 커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남자는 180이상, 여자는 165이상 그런 조건이 있다면 천국 갈  사람 몇 사람 안 될 겁니다. 공부를 얼마 이상해야 혹은 돈이 얼마 이상 있어야 천국 들어갈 수 있다. 역시 천국 못 갈 사람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속, 중심을 보십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잘생겼나 못 생겼나, 돈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진실하게 향하여 있는가? 얼마나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이 부분을 보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은 사람의 신분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신다고 말합니다.


1. 한 관리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한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다른 복음서를 보면 그 관리는 다름 아니라 회당을 관리하는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장은 각 지역에 있는 회당의 예배의식을 감독하고, 일상적인 학교를 운영하며, 회당에서 설교할 사람을 정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회당장은 그 지역에서 존경 받는 유명인사일 뿐만 아니라 아주 영향력이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 앞에 절을 했습니다.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회당장이 모든 사람이 다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 우리도 살아가면서 남 앞에 무릎을 꿇게 될 일이 몇 번이나 되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부모님께 잘못해서 야단맞을 때 무릎을 꿇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일입니다. 저희 모 교회 옆에는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었는데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백사장에 전도를 하러 나갔습니다. 어떤 여자가 혼자 있기에 다가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그 지역의 유명한 깡패의 여자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깡패가 그 여자 옆에 있다가 우리가 전도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 여자 친구를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 행동인 줄 알고 저와 전도했던 친구를 협박하면서 무릎을 꿇으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희들은 워낙 위협적이어서 할 수 없이 무릎을 꿇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아주 굴욕적인 기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치 않은데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 무릎을 꿇으면 아주 큰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똑 같은 무릎인데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무릎을 꿇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존경하는 분 앞에서는 저절로 무릎을 꿇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은 간절해지면 무릎을 꿇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을 찾아온 관리는 자신의 딸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이나 다른 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데 마태복음은 그 과정을 압축해서 기록했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으로 묘사를 해 놓았습니다.  이 관리는 자신의 힘으로는 딸을 살릴 수도 고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둘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온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 덥석 무릎을 꿇은 겁니다. 사람들의 체면, 눈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딸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간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지금은 무릎 꿇고 간절하게 매달려야 할 때인데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내가 무릎을 꿇음으로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면, 내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내 힘으로 안 되니까 하나님이 도와달라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간절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무릎을 꿇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위하여 무릎을 꿇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하여, 이웃과 민족을 위하여 무릎을 꿇기 바랍니다. 


주님은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기도에 마음이 움직이십니다.  주님은 회당장의 간절한 간구를 들으시고 그 집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습니까? 무릎을 꿇는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발걸음을 내 집으로 움직이길 원하십니까? 무릎을 꿇어 기도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실 겁니다.


2) 이 회당장의 또 하나 장점은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의 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끝났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매달립니다. 어떤 믿음 때문입니까? 18절을 보겠습니다.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비록 인간적으로는 끝이 났지만 주님이 손을 대시면 살아나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내 인생이 세상적으로 보면 희망이 없지만, 내 건강, 내 사업, 내 가정이 끝난 것 같지만 주님이 손을 대시면 다시 살아날 줄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2. 한 여인

회당장 요청을 받아들이신 주님이 그 사람의 집을 향해서 발걸음을 향하고 있을 때입니다. 주님이 그 사람의 집을 향해서 갈 때 주님만 간 것이 아닙니다. 많은 군중들이 어떻게 되나 보자는 심리 때문에 함께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떼를 지어 가는데 도중에 어떤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어떤 사건일까요?  한 여인에 관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어떤 여인입니까?  이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는 여자였습니다.


1) 성경은 이 여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혈루증을 앓고 있었다는 이 한 가지 안에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2년 동안을 앓아온 병입니다. 하루 이틀 된 병이 아니라 오래 된 병입니다. 12년 동안 병을 앓았으면 그 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특별히 혈루병이란 병이 어떤 병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혈루증은 일종의 부인병입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하혈을 합니다. 12년간 지속적으로 하혈을 했으니까 피가 부족해서 악성빈혈에 시달렸을 겁니다. 제가 꼭 같은 병을 앓는 여성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빈혈 때문에 직장을 다닐 수도 없고 집에서 거의 누워서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율법에 의하면 여자가 하혈을 하는 동안에는 부정하다 해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접촉하면 그 사람도 부정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겁니다. 12년간을 이 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서도 이렇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오래 된 병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는 줄 모르겠습니다. 병이 아니라 할지라도 해결이 안 되는 오래 된 묵은 문제가 있는 줄 모릅니다.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무리를 비집고 예수님의 뒤로 다가갔습니다. 왜냐하면 떳떳하게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겉옷을 살짝 만졌습니다. 왜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까요? 21절을 보니까 그 여인의 마음에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이 질병이 치유가 되겠다”


여인에게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과연 이 여인의 이런 행동이 옳았느냐 틀렸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과연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여인에게는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을 만지면 낫겠다는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가 믿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 여자는 자신의 노력과 정성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성을 들였기 때문에 병이 낫고, 내가 이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에 병이 나을 것이다 그런 것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은 단지 예수님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시기에 그분의 몸에 닿기만 해도 낫겠다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 확신, 내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는 겁니다.  비록 믿음의 표현방식은 회당장과 달랐습니다.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의 마음의 중심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형태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떳떳하게 어떤 사람은 은밀하게 어떤 사람은 사회적인 높은 신분으로, 어떤 사람은 평범한 신분으로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회당장의 진실한 간구를 들으신 것처럼 한 여인의 너무나 조용하고 미미한 간구도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다고 했습니다. 겉옷은 말 그대로 속옷 위에 걸쳐 입는 옷입니다. 몰래 겉옷을 만지면 만졌는지 모릅니다. 몸을 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 주변은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이 에워싸고 밀치고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누가 살짝 옷만 건드렸다면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놀랐습니다. 22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아무도 그 여인의 행동을 몰랐지만 주님은 아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감동이 됩니다. 사람들이 밀고 당기고 하는 와중에 옷에 살짝 스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두 명이 스쳤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스친 것과 믿음으로 스친 것을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믿음의 행동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주님은 믿음의 행동을 그냥 보시는 법이 없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소홀하게 듣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소리의 기도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십니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여러분이 골방에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기도해도 주님은 듣습니다.  기도할 힘이 없어서 그냥 주님! 하고 흐느끼는 기도도 듣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을 보면 한나가 서러워서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울음도 들으셨습니다. 믿음이 귀합니다.


주님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 여인은 아무 것도 없는 여인이었지만 믿음으로 12년간 고생하던 질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 결 론 >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고자 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히 11:6절은 말하기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믿음으로 자신의 딸을 고쳤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여인도 믿음으로 자신의 병을 고쳤습니다. 믿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그분을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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