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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 있습니까?
임호남 2007-05-20 추천 0 댓글 0 조회 140

갈증이 있습니까?(마태 9:9-13)  07주일낮


  아이들이 우는 이유는 뭔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프면 젖을 줄 때까지 웁니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웁니다. 엄마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와도 소용이 없습니다. 엄마가 와야 합니다. 쉬를 싸도 웁니다.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울음을 그칩니다. 몸이 아파도 웁니다.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만 그럴까요?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불만이 있습니다. 계속 짜증을 냅니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내들도 남편에게 대한 기대치가 있는데 채워지지 않으면 퉁퉁 부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 합니다.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냐고 그럽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나름대로 욕구들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욕구가 있고, 정신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는 영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욕구가 채워져도 영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왠지 뻥 뚫인 것 같은 허전함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사모하는 자리에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1. 마태의 갈증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마태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는데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에게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쫓으라’는 뜻은 “내 제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 말을 들은 마태가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는 겁니다.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태의 직업은 세리입니다. 세금을 거두는 사람입니다. 당시에 세리라는 직업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돈을 엄청나게 잘 버는 직업입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는 못했지만 돈 버는 일만은 어느 직업 못지않게 잘 버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한다고 해서 그 즉시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요?

 

  마태에게는 갈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돈을 잘 벌고 있었지만 그 마음 가운데는 늘 갈증이 있습니다. 돈으로 좋은 집도 사고, 좋은 음식도 먹으며 살았지만 그런 것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모든 갈증의 근본적인 뿌리에는 영적인 갈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이런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모두 영적인 갈증에서 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인 갈증은 하나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 대해서 나를 만드신 그 분에게 가서 물어 보아야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갈증이 있다고 무조건 물을 마시면 안 됩니다. 독약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더 쾌락을 추구하고, 더 성공에 집착하고, 더 술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런 것은 우리를 더 목마르게 할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우리 인생을 망칩니다. 그러나 인생의 참 된 갈증은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목마른 사람은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갈증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요한 4장에 보면 정말 인생에 목마른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인생에 대한 갈증이 너무 심해서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꾼 여인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목이 말랐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 4:12-14)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예수님을 만날 때 모든 갈증이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쌍벽을 이루던 할리우드의 두 여배우가 있습니다. 유명한 마릴린 먼로와 에반스 콜린이라는 여 배우입니다. 둘 다 얼굴과 몸매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육체파 여배우였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매혹적인 미의 괴력은 그녀가 엉덩이춤을 한 번 추면 당시 젊은이들은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합니다.  그녀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아 대통령 앞에서 요염한 모습으로 ‘Happy Birthday to You’를 불렀는데, 그 모습을 본 케네디 대통령은 너무나 만족하고 행복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내가 대통령을 그만 두어도 여한이 없다’ 얼마나 그녀가 아름다웠으면 그랬을까요? 이처럼 마릴린 먼로는 말할 수 없는 박수갈채와 인기와 영화를 한 몸에 누렸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런 그녀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면에서 밀려오는 허무와 고독과 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해, 또 한 명의 할리우드 스타 에반스 콜린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그리고 그 화려한 할리우드의 은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깊은 사랑에 빠져있습니다. 저는 그 깊은 사랑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를 떠납니다’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와 그런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까? 그 남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그 이후, 에반스 콜린은 선교사와 결혼하여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7년의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할리우드의 영광을 버리고 선교사로 떠난 것이 후회되지는 않습니까? 정말 행복합니까? 네,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의 자리는 영국 여왕의 자리와도, 미국 대통령의 자리와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자리입니다. 가장 존귀한 자리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그렇습니다.  둘 다 인생의 불만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릴린 먼로는 그 불만족을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으로 채우려고 하다가 채우지 못해서 결국은 자살을 하고 말았고 콜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후회 없는 정말 만족스런 생애를 살았던 겁니다. 예수님께 가면 모든 갈증이 해결됩니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갈증이 필요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모함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갈증이 있는 사람이 은혜의 우물을 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고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십니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슴이 목이 말라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했다 했고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하게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이런 사모함, 영적인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1) 저가 처음 교회생활을 할 때 제일 큰 고민 중에 하나는 체험적인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보니까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방언을 했다고 하고,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하고 병이 낫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데 왜 나는 못 만나는가? 체험했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런 체험이 없는가? 저도 그런 신앙적인 체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서울에 유명한 부흥사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인도하는 집회에는 기적들이 많아 나타난다고 해서 그런 목사님들이 오시면 다른 교회에서 집회를 해도 시간을 내서 참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들은 하는데 나는 못하니까 불만족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도 하게 되고 그런 체험을 하게 되니까 믿음도 자랐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런 갈증이 있습니까? 이왕 교회 나올 것 같으면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이렇게 한 번 기도해 보십시요. <하나님! 살아계시면 한 번 보여주세요. 그래야 내가 제대로 믿겠습니다> 이런 갈증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2. 우리의 갈증을 채우시는 예수님

  마태를 부르신 주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뭘까요? 마태와 함께 식사하는 일입니다(10).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한 사람들과 제일 많이 한 것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자주 이런 식사를 하니까 그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주님을 가리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밝히는 사람이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사람들과 자주 식사를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너무 바빠서 식사할 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과는 오랜 시간동안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아마도 주님과 함께 식사를 했던 사람들은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질문을 했을 겁니다. <예수님 나 같은 사람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 예수님은 나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 주님! 이 말씀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그 뜻을 제대로 알수는 없을까요?>


식사시간에 허물없이 예수님과 사귀면서 나의 갈증들을 채우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와 이런 사귐을 원하십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길 원하십니다. 왜요? 우리와 더불어 먹으면서 우리의 모든 갈증을 해결해 주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그 마음의 모든 갈증이 해결됩니다. 허무하고 공허하고 기쁨이 없던 사람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기쁨을 찾고, 만족을 찾고, 웃음을 회복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비밀을 안 다윗은 시편 23:1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런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3. 갈증이 없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와 그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할 때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11절).


왜 불만일까요? 이들의 불만은 거룩한 불만이 아니라 불평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리 같은 죄인들과 어울린다는 겁니다. 어떻게 깨끗하지도 못한 사람들과 경박하게 어울리냐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갈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없을까요? 자신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12-13).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건강한 사람 아니다. 병든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병자들은 만나지 않고 건강한 사람만 만나려고 하면 의사가 되겠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의사가 병든 사람 만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문제 많고 아프고 병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쳐주려고 오셨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건강한 사람,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태처럼 갈증이 있고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를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교회는 세탁소라고 했습니다. 세탁소는 더러운 옷을 빨아서 깨끗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교회는 깨끗한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죄가 많아서 교회 못 온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죄가 많기 때문에 와야 합니다. 교회는 병원입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와서 치료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곳입니다. 교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을 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더러운 우리의 죄가 깨끗해집니다. 예수님께 나와야 내 문제를 고칩니다.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사입니다. 내 육신의 병을 고칩니다. 내 잘못된 성격을 고칩니다. 내 비뚤어진 인격을 고칩니다. 병든 내 마음을 고칩니다. 우리의 가정을 고칩니다. 예수님께 오면 치유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런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까?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완벽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겸손한 사람은 그것을 인정합니다. 주님은 깨끗한 사람, 완벽한 사람 때문에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같이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갈증을 가지십시요. 거룩한 불만족을 가지십시요.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오십니다. 그럴 때 채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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