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9:1-8(열정이 있는 교회) 07큰뜻주일낮
제가 부목사로 일을 할 때 제가 맡은 교구에 중풍병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한 분 있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일어 설수도 없고 바깥출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호전이 되어서 겨우 일어서기도 하고 도움을 받아서 몇 발자국씩 걷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장 힘든 것이 움직이는 겁니다. 식사를 해도 자기 힘으로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음식이 자꾸 흘러내립니다. 그러니까 일 년 내내 집안에 갇혀서 삽니다. 그리고 거의 누워서만 지냅니다. 집안에 불도 잘 켜져 있지 않습니다. 어둡고 침울합니다. 교회도 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심방을 갔었습니다.
참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그나마 이 분은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정말 안 좋은 사람들은 손과 발을 꼼짝하지 못해서 가족들이 대 소변을 다 받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죽은 목숨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1. 몸과 영혼이 병든 사람
2절을 보니까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들것에 실어서 온 겁니다. 적어도 네 사람이 동원이 되었을 겁니다. 친구들이었거나 가족들이었을 겁니다. 들것에 실려 올 정도면 상당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중풍 병에 걸린 그 사람만 두고 본다면 이 사람은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중풍병자만 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데리고 온 친구들을 보았을 때 병자에게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뭘까요?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입니다. 병자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데 같이 온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이 뭘까요?
1) 이 사람들에게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병든 친구를 두고 볼 수 없어서 고쳐보겠다고 들 것에 메고 올 정도면 굉장한 열정입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 사람들은 그냥 들것에 메고 온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힘들게 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서 그 친구를 침상체로 예수님에게 내려 보냈습니다. 얼마나 열정이 많은지 모릅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는 사람들입니다. 방법이 없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찾아냅니다. 열정이 있습니다.
신앙도 이런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환경 탓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가망성이 없다고 불평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없는 길도 열립니다. 될 수 없는 일도 되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2)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병든 친구를 보았을 때 안타까워서 그냥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을 고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수고를 했습니다. 힘든 일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3) 뜨거운 믿음을 보았습니다.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예수님께 오면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믿음, 확신에 찬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변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병자만 보면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데 그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보면 희망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2. 교회의 사명
우리 주변에는 중풍병자처럼 자력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복지제도를 통해서 그런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사회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사람을 돕는 겁니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을수록 이런 사회적인 약자들이 더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자력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능이 부족한 사람들이거나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폐를 앓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도 자력으로는 생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곁에서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병들어 스스로 살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주변에 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단지 수적으로 많은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진정한 관심, 열정, 그리고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1)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무엇보다 강력한 사랑으로 서로 돌아보는 사랑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 오늘 중풍병자들의 친구처럼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서 뜨겁게 돕고 섬기는 공동체,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오면 다른 것보다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혼자서 돌보고 회복시키려면 어렵지만 공동체가 함께 하면 훨씬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부목사로 있을 때 어떤 교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구 식구 중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단지 그 구역뿐만 아니라 그 교구전체가 조를 짜서 체계적으로 그 가정을 돕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럴 때 어려움을 당한 가정이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교회공동체입니다.
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나머지 교우들이 힘을 모아서 돕는 겁니다.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심방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애경사를 처리하는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다 함께 축하해 주세요.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내 일처럼 함께 슬퍼해 주세요.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몸으로 표현을 하세요. 시간을 내세요. 물질을 드리세요. 그렇게 서로 섬기세요. 이것이 교회입니다.
2) 특히 교회는 영적공동체입니다.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 문턱을 넘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교회로 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그런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중풍병자의 네 명의 믿음 좋은 친구들처럼 한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좋은 성도들의 강력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구역에서 예배를 드릴 때 구역식구들은 구역의 태신자를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태신자를 품고 있는 그 사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구역식구가 모일 때 마다 합심해서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병자를 한 사람이 데리고 오려면 힘이 듭니다. 그러나 네 사람이 함께 들 것을 만들어서 들면 훨씬 수월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지 않는 사람을 한 사람이 인도하려면 힘이 듭니다. 그러나 네 사람이 힘을 모으면 훨씬 수월합니다.
같이 기도를 모으고 사랑을 모으고 관심을 모은다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나 혼자서 전도하기 어렵다면 우리가 같이 가서 업어서라도 데리고 나오겠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 그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일단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면 그 다음은 예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에 힘을 쓰고 있습니까?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사람을 메고 나오듯이 그렇게 힘을 쓰는 기도,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의 열정, 사랑, 헌신, 수고를 배웁시다. 이런 열정과 믿음과 헌신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사람을 살립니다. 여러분의 구역이 이런 수고가 있는 구역이 되길 바랍니다.
3) 여러분 주변에 하나님께로 나오지 못하는 가족이 있습니까? 그들 스스로는 나오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기도할 때 그 사람을 엎으십시요. 몸은 엎지 못하지만 그 영혼을 내가 엎는 심정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엎고 있으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려 높고 싶습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옛날 어떤 자매님은 남편이 하도 핍박을 하고 교회를 못 나오게 하니까 전도 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교회 나올 때 남편은 못 데리고 나오고 남편의 신발을 들고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했다는 겁니다. <하나님 제 남편 신발이라도 나왔습니다.> 그만큼 구령의 열정이 있는 겁니다. 그 열정이 결국 구원시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열정이 있는 교회가 되십시요. 각기 4인 1조가 되어서 한 사람씩 교회로 엎고 나오는 운동을 합시다. 그래서 이 지역에 잃어버린 영혼으로 이 자리가 차고 넘치게 합시다.
3. 열정의 적-비판
여러분! 신앙적인 열정에도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열정을 식게 만드는 적이 있습니다. 뭘까요? 비판입니다. 우리가 열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판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열정이 없다면 비판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지금 한쪽에서는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많은 사람이 열정, 사랑, 믿음, 뜨거운 헌신으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기관들입니다(3).
서기관은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박사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한 사람이 치료받고 회복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사건이 성경적으로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만을 따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예수님을 가리켜 참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참람하다는 말은 <신을 모독하고 있는 큰 죄를 짓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도 아니면서 죄를 용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죄를 용서 받으려면 성전에 올라가서 의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런 것도 무시하고 죄를 용서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틀린 말입니까? 맞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신학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서기관들은 올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뭘까요? 그 일을 하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든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으로도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신학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는 일까지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의 신학이 예수님보다 위에 있는 겁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런 잘못을 범합니다. 내 경험과 지식을 절대화시켜서 내 생각과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비판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하시는 일 까지도 비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한 잘못이 바로 그런 잘못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신학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끊임없이 비판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말은 옳지만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비판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과 같은 믿음과 열정, 헌신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열정이 있는 곳에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건전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부정적인 비판,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은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열정입니다. 사랑과 헌신입니다. 비판은 언제 하느냐 하면 중풍병자들처럼 한 사람 살리기 위해서 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나서 그 결과를 놓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 건전한 비판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은 금해야 합니다.
< 결 론 >
주님은 예수님이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로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중풍병자로 살던 그 사람을 향해서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그 일에 열정이 있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비판하고 판단하기보다 땀 흘리며 사랑하며 헌신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그 능력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을 주옵소서. 병들고 고통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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