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마태 8:14-17) 07큰뜻낮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는 갈릴리 호수 주변의 가버나움이란 도시입니다. 이 도시가 예수님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이 도시 출신의 제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모두 이 도시 출신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도 가버나움입니다.
1.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
14절은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 일행이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진 제자는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비롯해서 모든 제자들이 싱글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이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이 숫자가 혼자 사는 다른 어떤 제자의 집에 간들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습니까? 그래도 가정을 가진 베드로 집 같은 집으로 가야 먹을 것을 먹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저는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고 교회 사역을 할 때도 주로 청년부 사역을 많이 했는데요. 대학생 청년들이 제일 좋아할 때가 언제냐 하면 집으로 초대해서 밥 먹일 때입니다. 비싼 음식이 아닌데도 그렇게 좋아하고 잘 먹습니다.
예수님 일행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곳에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늘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셨기 때문에 제일 불편한 것이 잠자리와 음식이었을 겁니다. 주로 사먹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대접을 받기도 했겠지만 사 먹는 음식이 어디 집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과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예수님 일행을 베드로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님 일행을 자신 있게 초대한 데에는 한 가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집에 모시고 있는 장모님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그 장모님의 능숙한 음식 솜씨를 믿고 자신 있게 예수님 일행을 초대한 겁니다.
아마 베드로의 집으로 향하는 제자들은 모두 행복한 상상을 했을 겁니다. <오늘 한 번 제대로 먹겠구나!> 베드로도 장모님의 음식 솜씨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맛있게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 행복했을 겁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보니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줄 알았던 장모님이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 계신 겁니다. 오늘 본문은 열이 나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왠지 감기 기운이 있고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갑자기 열이 나고 온 몸이 쑤시고 꼼짝 못하고 들어 눕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입니다. 장모님이 그렇게 아파서 누워 계시니 모든 계획이 다 어그러졌습니다. 맛있는 음식 대접하겠다던 베드로의 계획도, 제자들의 기대도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깁니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늘 변수가 생깁니다. 그게 우리 인생입니다.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항상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2.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예수님
이처럼 우리 인생의 계획이 어긋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문제가 발생하고, 계획이 빗나가고, 육신의 고통이 밀려오는 그 현장에 누가 계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셨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 있다 해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 삶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저는 군에 입대했을 때 훈련소에서 이 말씀이 제일 힘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고했습니다.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베드로의 집에 함께 계신 주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도와주셨습니까? 침상에서 고열로 신음하는 장모를 본 예수님은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실 때 손을 만졌을까요? 저는 그 손이 바로 일하는 손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손은 주님과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일해야 할 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질병으로 그 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손을 만지셨습니다. 주께서 그 여인의 손을 만졌을 때 열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다시금 건강한 몸으로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이처럼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약해진 몸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피폐해진 마음이 다시 회복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항상 회복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회복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회복되었을 때 즉시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었’(15절)고 했습니다. ‘수종들었다’는 뜻이 우리말에는 불명확하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음식을 준비했다는 뜻입니다. 여인이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즉시 예수님 일행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고열로 고생하던 사람이 즉시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의 치유를 경험했을 때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과 은혜를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 만드는 일만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회복의 은혜가 있을 때 따라오는 것이 기쁨의 봉사입니다. 육체적인 회복이든 정신적인 회복이든 회복이 있는 곳에는 항상 기쁨의 봉사가 따라옵니다. 사람은 봉사할 때 기쁨을 찾습니다. 특히 아팠다가 회복된 사람은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압니다. 건강할 때 많이 봉사하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행복한 봉사자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주님과 성도를 섬기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3. 주님의 터치
저는 이 시간 주님이 그 여인의 몸에 손을 대셨을 때 그 여인의 모든 질병이 치유되고 회복되었다는 이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님의 손이 닿는 순간 그 여인의 모든 질병이 떠났다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터치는 어떤 터치일까요? 치유의 터치, 능력의 터치입니다.
그분이 병든 여인을 향해서 손을 내미셨을 때는 그 손은 보통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의미 없는 터치가 아니라 회복시켜야 하겠다는 주님의 의지가 담긴 터치셨습니다. 그 손이 닿는 곳에는 항상 치유와 회복이 있었습니다.
1) 주님의 터치가 우리 몸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내 병든 몸이 회복되길 원합니다. 몸이 건강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마음껏 봉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2) 주님의 터치가 여러분의 상한 마음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육신의 질병보다 더 아픈 병이 마음의 상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아파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상처를 누구도 치료하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를 사람이 잘못 건드리면 더 아픕니다. 더 깊은 상처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움츠려 들고 사람을 기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도 우리 주님이 만지시면 아프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손은 사랑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아픔을 누구보다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라오면서 상처가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총각 때 독신주의자였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 자신이 너무 싫어서 내가 만약 결혼을 하면 나와 결혼하는 여자도 불행하게 만들고 자녀들도 나 때문에 불행해 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결혼을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이 치유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인내하시며 사랑의 손으로 저를 만져주셨을 때 저는 이렇게 건강한 마음으로 치유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상처를 주님께 내어놓기 바랍니다.
3) 주님의 터치가 여러분의 가정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세상 모든 가정을 다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병든 모든 여인의 몸에 손을 대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이 계신 곳에는 항상 치유와 회복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회복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소경이 회복되었고, 앉은뱅이가, 그리고 죄인들이, 버려진 사람들이, 창녀가 회복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주님을 내 삶에 초청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초대할 때 기꺼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집에 기꺼이 오신 것처럼 우리 가정에도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지금도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시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 주님을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셔서 내 몸을 만져 주옵소서, 내 마음을 만져 주옵소서. 우리 가정을 만져 주옵소서]
4. 16절을 보면 계속적인 주님의 치유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치유의 영역이 다양합니다.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육체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고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모든 질병들을 다 고치셨다 했습니다. 주님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질병을 다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에게는 치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에게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이런 치유사역을 그렇게 많이 하셨는가 하는 겁니다. 오늘 17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 연약함을 담당하시기 위해, 우리 병을 대신 짊어지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소망스런 말씀입니까?
이 말씀처럼 우리는 모두 연약합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육체가 병들어 쓰러지고, 정신이 병들어 주저 앉아 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이런 약함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냐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모든 연약함을 그 모든 고통을 주님에게 가지고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짐을 져 줄께, 내가 너의 아픔을 대신 져 줄께>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벧전 5:7절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대신 져주십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맡기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면 내 안에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맡기지 못할 때 그 사람은 병들고 고통합니다. 그러나 맡겨버리면 평안과 회복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약함과 질병을 대신 다 짊어지시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갈보리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나의 죄로 인한 모든 고통과 저주의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고통의 뿌리는 사실은 죄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로 인해서 영육의 아픔을 겪습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서 파생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로 모든 저주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죄로 인한 고통, 상처, 얽매임을 끊어버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로 나아갈 때 거기서 우리는 치료, 회복, 구원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침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십시요. 그리고 십자가를 붙드십시요. 바로 거기에 구원과 회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참 된 회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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