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터치(마태 8:1-4) 07큰뜻주일낮
본인이 아는 병이 있고 모르는 병이 있습니다. 어느 병이 무서울까요? 모르는 병이 무섭습니다. 병을 알아야 치료도 가능합니다. 모르면 치료책도 없습니다. 그래서 병은 소문을 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소문을 매면 치료책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젊은 나이에 갑자기 담낭암이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말기 중에 말기가 되도록 몰랐습니다. 부인이 간호사인데도 남편의 병을 몰랐습니다. 알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병을 모르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오늘 본문은 병을 드러내어서 인생을 고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올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오는데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갑자기 나타났을 겁니다. 모두들 이 사람의 출현에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비명을 지른 사람도 있을 겁니다.
누가 나타났기 때문입니까? 문둥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문둥병은 오늘날의 에이즈와 같이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치료책이 없는 병입니다. 이 병은 전염성이 있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살이 썩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눈이 실명됩니다. 그러면서 죽어가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기에 문둥병자는 가족들과도 같이 살수가 없습니다. 격리되어서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 병은 추하고 냄새나는 병입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피해 다닙니다. 그런데 그런 문둥병을 가진 사람이 많은 군중들이 보는 가운데 예수님 앞에 나타난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그 병을 치료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오늘날도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그 병과 고통에서 건강해 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이 사람이 한 일이 무엇인가?
1) 문제를 드러내라.
어떤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의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의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뭘까요? 그 사람의 환부를 보면서 상태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환자가 의사에게 아픈 부위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면 어떨까요? 치료 받을 수 있을까요? 받을 수가 없습니다. 못 보게 하는데 어떻게 치료합니까?
저는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사극을 보면 가끔씩 왕비가 병이 들어서 어의가 진찰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진찰을 합니까? 비록 어의라 할지라도 왕비의 환부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손을 대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명주실을 왕비 몸에 매어서 진단을 합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면 어설프게 진단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보여주어야 하는 겁니다.
대통령이라도 의사 앞에서는 아픈 부위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가 시작됩니다. 이 문둥병자도 처음에는 망설였을 겁니다. 과연 사람들 앞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어야 하는가?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비웃고, 조롱할텐데 과연 드러내어야 하는가? 망설였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병은 드러냄으로 고쳐집니다. 의사 앞에 자신을 드러내어야 치료가 됩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뭘까요? 주님 앞에 고백을 하는 겁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는 것이 드러내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 고침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병을 예수님께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저에게 이런 병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고백합니다> 용기를 내어서 고백하기 시작할 때 치료는 이미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2) 낫기를 원했다.
병이 치료되려면 무엇보다 본인이 낫기를 원해야 합니다. 문둥병자는 자신이 낫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님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누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찾아나서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옆집에 아주 용한 의사가 있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병이 있는 사람은 용하다는 의사가 있으면 천리 길도 마다않고 찾아갑니다. 서울의 종합병원에는 의술이 뛰어난 유명한 의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명의를 만나려면 6개월 혹은 1년씩 대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만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에게 병을 고치는 의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는 가장 훌륭한 의사입니다. 그 분 앞에 나오면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의사가 내 앞에 있어도 본인이 원해야 고칠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오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 이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려야 하는데 하지 않습니다.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내 문제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금식이라도 하고, 철야기도라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안에 낫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노력하길 바랍니다. 행동하기 바랍니다.
3) 주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 앞에 나와서 고백을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못고칠 병이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의사가 유명한 의사입니까? 고치기 어려운 병을 고친 경험이 많은 의사입니다. 임상적으로 고친 결과가 많은 의사입니다. 실력이 증명이 된 의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큼 환자를 고친 경험이 많은 의사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주님에게 치료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정신질환, 부인병, 관절계통, 난치병, 열병을 비롯해서 소경, 벙어리와 같은 병까지 모든 병이 다 치료되었습니다. 성경은 고침 받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 당시뿐만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치기 위한 의사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실력은 이미 증명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 나오면 내 문제, 내 질병이 치료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병을 고칩니까? 믿는 사람이 고칩니다. 예수님께서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쳐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9: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소경의 눈을 고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귀신이 들려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자기 딸을 위하여 기도하던 가나안 여인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
모두가 믿음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2. 주님이 어떻게 고치시나?
1) 손을 대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그 사람의 몸에 손을 대셨다는 것이 평범한 일 같아도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문둥병자의 몸은 사실 아무도 만져주지 못하는 몸입니다. 누가 그 더럽고 추한 몸에 손을 대겠습니까?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격리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몸을 만져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손을 한 번 잡아보시기 바랍니다. 따뜻합니다. 그런데 이 따뜻한 손을 잡아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세요. 제일 그리운 게 뭡니까? 돈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사람의 손길입니다. 그게 그리운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런 분들을 방문하면 손을 꼭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체온이 좋은 것이다. 거기서 사랑과 정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 사는 맛을 아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만져주길 원하십니다. 아픈 우리 몸을 만져주길 원하십니다. 상처받은 우리 마음을 만져주길 원하십니다. 왜 만져주실까요? 안타까워서 만져주시는 겁니다. 마음이 아파서 만져주시는 겁니다. 아픔을 싸매주고 싶어서 만져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길은 사랑의 손길입니다. 사랑의 터치입니다.
또 하나 주님이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는 이유는 그 아픔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결법에 의하면 문둥병자를 누가 건드리면 건드린 그 사람도 같이 부정해져서 행동의 제약을 받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문둥병자 가까이는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 몸에 손을 댔습니다. 문둥병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를 예수님이 떠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마태 8:17절을 봅시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온갖 병을 우리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병든 몸에 손을 대시고 우리의 상처난 마음에 사랑으로 터치하십니다.
사람들은 우리 상처를 잘못 건드려 더 문제를 크게 할 때가 있습니다. 싸매준다고 하면서 더 찌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손길, 치료의 손길입니다. 주님이 내 상처를 만지게 하십시요. 주님에게 여러분의 상처를 보여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만져주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2) 주님도 낫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낫길 원하십니다.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보다 더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요.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시면서 말씀하기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내 몸이 낫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더 원하신다는 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내 몸 뿐만 아니라 내 가정이 건강해지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가정생활, 내 인생 전체가 건강해지길 간절히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이 건강해지길 간절히 소망하길 바랍니다.
3) 주님은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문둥병자를 향해서 <깨끗함을 받으라>하실 때 즉시 깨끗해 졌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됩니다. 낫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하시면 그것이 곧 능력이었습니다. 말씀하시면 병이 낫습니다. 귀신이 떠나갑니다.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 집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결 론 >
그 문둥병자가 건강해지자 주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 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문둥병은 제사장이 판단해서 “다 낳았다”고 인정해줘야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사람이 다시 건강한 사회인으로 회복되길 원하셨습니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마음껏 살기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회복이야 말로 주님의 소망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과 몸이 건강한 사람으로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도 문둥병자처럼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죄악이 있습니다. 겉은 고상하고 품위 있게 치장하지만 우리 안에도 냄새나는 죄악들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아픔과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질병들이 있습니다. 오늘 문둥병자처럼 주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 문제를 우리 아픔을 만지시고 고치십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으로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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