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그리스도인(마태 7:24-27) 큰뜻주일낮
이제 산상보훈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7장에 소개되는 산상보훈만을 가지고 거의 1년을 설교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대장정의 결론입니다. 어떤 글이든 결론이 중요합니다. 산상보훈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만약 산상보훈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결론부분이 빠진다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만약 이 부분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 있다 해도 산상보훈 전체가 맥이 빠지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 <뒤가 개운치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좋았는데 뭔가 마무리가 아쉬울 때 하는 말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무슨 요리를 먹든지 꼭 빠지지 않고 먹어야 되는 음식이 있습니다. 김칩니다. 잘 먹어도 김치가 빠지면 뭔가 개운치가 않습니다. 김치를 먹어줘야 마무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와 같이 산상보훈을 통해 아무리 좋은 영적인 양식, 성찬을 먹었다 해도 이 부분이 빠지면 뭔가 빠진 듯한 말씀이 됩니다. 이 부분이 있으므로 산상보훈의 위대한 진리가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산상보훈의 결론이 뭡니까? 24절을 보겠습니다. 진리를 들었으면 실천하라는 겁니다. 진리를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신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듣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듣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믿음도 들음에서 납니다. 듣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면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듣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듣는 것도 종류가 다릅니다. 마음으로 듣는 사람이 있고 단지 귀로만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할 수 없어 듣는 사람이 있고 꼭 들어야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내용을 듣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옵니다.
우리는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듣겠다고 결심하고 들어야 합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말씀을 그렇게 들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그렇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이 지금 내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면서 들었습니다. 말씀은 이렇게 들어야 합니다. 그랬더니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이렇게 들으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은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믿음이 놀랍게 자랐습니다.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살전 1:6-8)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교회는 주변의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고 믿음의 소문이 각처로 퍼져나가는 훌륭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잘 듣는데 있었습니다. 잘 듣는 사람이 믿음이 자랍니다.
어떻게 듣느냐가 내 운명을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들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불행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들어야 할 순간에 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들어야 할 자리에 꼭 빠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이 말씀은 이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이겠다. 이 사람이 이 말씀 들으면 힘을 얻고 문제를 해결 받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 사람이 꼭 들어야 할 말씀인데 이상하게 꼭 그 때마다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의 자리를 귀신같이 피해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고 피하는지, 모르고 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들어야 할 순간에 피해 다니는 사람은 축복을 피해 다니는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가 들어야할 그 자리에 이상하게 항상 앉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를 왕창 받는 사람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는데 그날따라 그 말씀이 나에게 하는 말씀이고, 내 문제를 집어 주는 말씀이고, 해결책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 자리만 골라서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이나 억압을 받으면서 노예처럼 살다가 모세의 인도 가운데 출애굽을 할 때 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 힘들고 고통스런 애굽 생활을 청산하고 출애굽하는데 한 사람만 못했다고 합니다. 왜 못했는지 아세요. 출애굽 한다는 광고를 못 들은 겁니다. 광고 시간에 졸다가 듣지 못해서 남들 다 출애굽 할 때 혼자만 못한 겁니다. 여러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들어도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잘 듣는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2. 행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산상보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말씀을 들었습니까. 팔복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은 영적으로 얼마나 가난해졌습니까? 얼마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 온유하셨습니까? 다른 사람과 관계가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또 이런 말씀들도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헛된 맹세하지 말라 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고 사랑하라 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구제하라 했습니다. 은밀한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 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투자하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들을 듣고 얼마나 실천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여러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보훈의 진리를 들은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들었다면 행동하라. 그러면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왜 중요한 집을 건축하는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비유를 보니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집을 짓는데 마치 반석 위에 집은 짓는 사람과 같다했습니다. 둘째 듣기는 하되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역시 집을 짓는데 이 사람은 모래 위에다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 다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평안할 때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모래위에 지은 사람이나 반석위에 지은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더 멋있습니다. 해변가에 집을 지어 보십시요. 환상적입니다. 돌과 벽돌로 견고하게 지은 집보다 조립식으로 지은 짓들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집들처럼 겉보기에는 더 예쁘게 보입니다. 그와 같이 말씀을 듣고 행동이 없는 사람들도 얼핏 보기에는 신앙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실력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비바람이 칠 때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이 몰려 올 때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에게도 비바람은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사람에게도 비바람이 있습니다. 갑자기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무서운 암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문제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누구든지 이런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릅니다. 삶의 시련이 불어 닥칠 때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은 무너짐이 심하다 했습니다. 그럴싸했는데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견디어 냅니다.
마치 지진이 나면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은 버티어 내지만 내진 설계가 안 된 건물들은 완전히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모래 위에 집은 사상누각입니다. 보기에는 좋지만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행함이 있는 신앙은 어려움이 와도 무너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행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이런 차이를 가져올까요?
3. 왜 행함이 이런 차이를 가져오는가?
여러분! 우리 얼굴 근육 중에서 잘 쓰지 않는 근육이 있다고 입니다. 웃을 때 쓰는 근육입니다. 이 근육은 웃지 않으면 쓸 일이 없다고 합니다. 웃어야 씁니다. 그래서 이 근육을 잘 쓰지 않는 사람은 얼굴이 경직되어 있습니다. 화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자기 이미지를 바꾸려면 웃어야 합니다. 안 쓰고 있는 웃는 근육을 자꾸 움직여 주어야 합니다.
가끔씩 TV를 보면 사고나 질병으로 오래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만 생활하던 분들이 재활치료를 통해서 조금씩 움직이는 그런 내용들을 소개해 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 때 가만히 보세요. 재활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표정을 주의 깊게 보세요. 어떤지!
얼마나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지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수 십 년간 쓰지 않아서 몸이 굳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경직되어 있는 그 근육을 다시 움직이고 쓰려고 하니까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 과정을 이겨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움직여줘야 다시 근육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되어야 합니까?
1)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입니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편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쓰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스트레칭을 해 보세요. 제대로 스트레칭을 하면 한 5분만해도 땀이 납니다. 그리고 근육이 굉장히 아픕니다. 왜냐하면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기만 하는 신앙은 그냥 누워서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힘들다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그 신앙은 점점 힘을 잃습니다. 그렇게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하면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행동하면 영적으로 건강해 집니다. 움직일수록 더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2)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왜 행함이 있어야 하는가? 진리는 행할 때 더 많은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대부분 실천적 신앙입니다. 산상보훈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보물을 하늘에다 쌓아 놓으라> 모두가 실천적 신앙입니다. 이 말은 행동해봐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기도를 알고 싶으면 기도를 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해서 기도응답을 한 번 받아보면 기도가 뭔지 수십 번 설교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눈이 열립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이 진리를 이론으로만 알고 있어서는 그 참 맛을 모릅니다. 한 번 실천해 봐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스트레스, 편두통, 마음의 고민이 다 사라집니다. 대신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물밀듯이 밀려올 겁니다. 이론만 가지고는 모릅니다. 행동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의 참 맛과 능력은 행할 때 경험됩니다. 여리고를 돌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리고 성이 돈다고 해서 과연 무너질까 연구하고 묵상만 했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행동할 때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행동해야 내 신앙이 건강해 집니다. 행동해야 더 많은 영적인 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결 론 >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서 순종해 본 경험이 있는가? 실천해 본 적이 있는가? 말씀을 실천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맛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말씀을 수년 동안 혹은 수십 년 동안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실천이 없었다면 왜 실천을 하지 못했는지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점점 더 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실천하는 신앙이 되기 바랍니다.
먼저 조금씩 조금씩 행동하기 시작하십시요.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십시요. 그러면 더 많이 행동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더 영적으로 건강해 질 겁니다.
말씀을 잘 실천해 오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 한 번도 안 써본 근육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 니다. 다른 것은 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면서 해보지 않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그것에 도전해 보기 바랍니다. 언젠가는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심시요. 오늘부터 행하십시요. 건강한 신앙생활을 듣기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잘 실천해서 모두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인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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