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 그리스도인(롬 12:1-2)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가 어딜까요? 마리아나 해구라는 바다입니다. 그 깊이는 11,000미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간의 기술로는 그 11,000미터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없다고 합니다. 왜 일까요? 엄청난 수압 때문입니다. 강철로 만든 첨단 잠수정을 타고 최대한 내려갈 수 있는 깊이가 10,800미터라고 합니다. 그것도 2시간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상 머무르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800 이하는 잠수정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잠수정에서 내 보낸 로봇을 통해서 내려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수압이 존재하는 곳에는 과연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요? 없을까요?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강철로 만든 잠수함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 바다에 연약한 물고기가 살 수 있을까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물고기의 내면에 외부수압을 견뎌내는 시스템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그 외부압보다 더 강한 내부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연약한 물고기도 생존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엄청난 외압이 있어도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어떤 곳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세상은 사실은 굉장한 외압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적대적입니다. 지금도 중국이나 모슬렘 사회에서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옥에 가고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압박 가운데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런 생사의 외압을 견뎌내면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목숨까지 위협하는 외압을 이기는 영적인 힘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 중에서는 그런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 안의 믿음이 외부의 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 바로 우리 안에 영적인 힘, 내압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우리가 살기 편하도록 바꾸어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먼저 그리스도인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바꿀까요? 어떤 외압에도 이겨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릴 다듬고 바꾸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바꾸시고 그 다음에 우릴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1. 예배가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예배가 왜 중요하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가장 큰 목적이 예배를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사 43: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릴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경배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경배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도 우리가 찬송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돌들을 통해서도 찬송을 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출발은 예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예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신앙이 살아있습니다. 예배가 죽은 성도는 신앙이 죽은 사람입니다. 예배를 점검해 보면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른 예배에 대한 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른 예배의 원리가 무엇일까요?
1)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
드림이란 단어를 주의해서 보십시요. 예배는 드림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린다고 표현합니다. 예배의 핵심적인 정신은 드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면서도 그 마음에는 뭔가 받길 기대하고 옵니다. 은혜, 축복, 응답 이런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정신은 받음이 아니라 드림이 먼접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드릴 때 그 열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겁니다. 순서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드림이 없는 곳에는 은혜도 없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내 시간을 구별해서 드리고, 내 마음을 드리고, 내 물질을 드리고, 내 가장 귀한 것을 드릴 때 그 마음에는 반드시 은혜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하여 아무런 드림의 준비도 없이 드림의 각오도 없이 그냥 몸만 와 있다면 은혜를 받지 못할 겁니다. 하나님께 내 시간과 물질을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와 감격이 있을 때 그 예배는 바른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2) 특히 몸을 드리라 했습니다.
몸을 드리라는 말은 우리의 전 존재를, 전 인격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예배는 나의 전체를 드림입니다. 그렇게 드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고전 6:19-20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했습니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주님 것입니다. 소유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 것도 아닌데 내 것처럼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주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은 주님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그래서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내 삶 전체를 주님께 드리는 결단을 하는 겁니다. <주님! 내 삶은 내 것 아닙니다. 주님의 영광만을 살기 원합니다.> 이런 강력한 예배가 있을 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요.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자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을 보십시요. 하루 세 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시기한 정적들이 왕을 속여서 말도 안 되는 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서 사자의 밥이 되게 하자는 법입니다.
왕을 신격화 시키고 우상화시키는 법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왕은 자신을 높이는 법이라 하니까 그 법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누구를 표적으로 만든 법일까요? 오직 다니엘 한 사람을 표적으로 만든 법입니다 .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다니엘은 그 법이 공포된 것을 알고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일까요? 다니엘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자신의 명예와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 된 예배자의 삶입니다.
하나님만을 예배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내 전부를 다하여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을 이기는 빅토리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2. 생활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홍수가 나면 거대한 물줄기가 강을 흐르게 됩니다. 그 때는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은 그 물줄기의 위력에 휩쓸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홍수가 날 때는 물가로 가면 안 됩니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빨려 들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도 하나의 큰 물줄기가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 세계관, 풍습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물줄기에 편승해서 살아갑니다. 물줄기를 거슬린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렇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슬리기보다는 적당히 세상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맡긴 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세상을 따라가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1)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본받지 말라는 뜻은 따라가지 말라. 카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똑 같은 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방식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을 따를 것인가? 그리스도의 방식을 따를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식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함께 갈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자존심을 살리라, 자신을 과시하라 말하지만 성경은 자신을 죽여야 산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남을 짓밟더라도 성공하라 가르치는데 성경은 남을 섬기는 자, 남의 종이 되라고 말하고 있고 그런 사람이 도리어 큰 자라고 했습니다. / 세상은 원수를 미워하라 하지만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 세상은 이 세상에 재물을 많이 쌓으라 하지만 성경은 하늘에다 쌓으라 합니다. 하늘에 투자하라 합니다. / 가치관이 다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 세상의 방식을 카피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공관이 달라야 하고, 자녀교육관이 달라야 하고, 직업관이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2)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은 우리 삶의 중심입니다. 그 마음에서 행동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삶이 바뀌려면 먼저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그냥 두면 세상적인 것들이 어느새 가득 차게 됩니다.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밀려오는 겁니다.
제가 사무실에 있을 때는 창문을 닫아놓고 근무를 하는데 한번씩 방을 닦으면 새카만 먼지가 붙어 나옵니다. 어디서 그런 먼지가 날라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먼지가 방에 쌓인 겁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가만히 방치하면 세상적인 것들이 나도 모르게 가득 차지해 버립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세상을 닮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는 겁니다. 이걸 막기 위해서 우리는 늘 우리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것들을 자꾸 채워 넣어야 합니다. 말씀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닮지 않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여러분! 하나님은 뭘 좋아하실까요? 뭘 제일 기뻐하실까? 이런 생각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얼마나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까? 좋은 자녀는 늘 부모님이 뭘 좋아하시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 드리려고 하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까? 이 생각입니다. 교회가 부흥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자나 깨나 그것만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랑하면 집중력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그 사람만 생각하는 집중력이 생깁니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겁니다. 특히 자나 깨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 마음을 집중하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을 이기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됩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요 8:29절을 봅시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자나 깨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 혼자 두시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력을 가지면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 결 론 >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비록 약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무장하면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치 해저 11,000에 사는 물고기가 약한 것 같은데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는 것처럼 우리도 약한 것 같지만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사람들이 됩니다. 히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요.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했고, 사자의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을 이길 자입니다. 주님은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겼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이길 자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예배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가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만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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