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마태 6:25-33)
다시 마태복음 강해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 만에 돌아 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중에서도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산상수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올바른 믿음의 삶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제생활, 기도생활, 금식생활 등을 예로 들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믿음의 모습인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예기를 하시던 주님께서 이번에는 돈에 대한 문제를 끄집어 내셨습니다.
마태 6:19-34절까지는 모두 돈에 대한 문제, 물질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돈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1. 돈의 영향력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란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한 순간도 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신혼시절에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밖에 볼일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나갔는데 돌아올 때 보니까 제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버스를 탈 수 있는 몇 백 원 조차도 없었습니다. 그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어른이 되어서 버스기사에게 버스비가 없어서 그렇다고 공짜로 좀 태워주면 안 되겠냐고 말하기도 그렇고 참 곤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 곁에 많이 있지만 그 문명의 이기들도 단돈 몇 백 원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반대로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좋은 것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란 것은 엄청납니다.
1)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미칠까요? 24절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리라”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사람이 주인을 섬기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을 섬기면 저 사람은 섬기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주인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러분!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이 말한 두 주인은 누구와 누구를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재물과 하나님이었던 겁니다. 이 말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무엇도 섬길 수 있다는 말일까요? 돈도 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돈이 신격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돈이 사람에게 마치 하나님과 같은 엄청난 위치를 차지해서 사람들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돈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간단합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면 그 사람에게는 돈이 더 이상 돈이 아니라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됩니다. 돈을 믿고 내 인생을 거기다 맡긴다면 돈은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우리에게 신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돈이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돈이 하나님인 겁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을 의지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돈에다 내 인생을 맡기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돈을 섬기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분명히 구분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돈은 분명히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내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적당히 이용해야지 그것을 의지하게 되면 더 이상 우리가 돈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를 끌고 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돈에 꼼짝 못하는 돈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어 사는지 모릅니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사실은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돈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마도 여러분도 돈에 매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2) 주님이 올바른 믿음을 이야기하시면서 돈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는 돈이 영적인 상태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곳에 늘 마음이 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나 깨나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가지게 되면 늘 그 장난감만 생각합니다. 손에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곳에 자연스럽게 마음도 함께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면 거기에 내 마음이 뺏겨버립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그만큼 없어지는 겁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신앙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그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점점 내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가 커지면서 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면 믿음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23절을 보면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기 때문에 영적인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이만큼 돈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믿음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돈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그 문제에 대한 진단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문제의 뿌리는 염려라고 말합니다.
2. 문제의 뿌리는 염려
2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무엇에 대한 염려입니까? 사는 것에 대한 염려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의식주의 문제,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염려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염려의 출발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눈만 뜨면 그 때부터 염려가 시작됩니다. 주부들은 눈 뜨자마자 오늘 아침은 뭘 먹어야 하지! 이 염려부터 시작합니다. 이 염려는 한 끼 식사 때부터 시작해서 계속 발전해 갑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뭘 먹고 살지! 노후에는 우리가 뭘 먹고 살지! 밥 굶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모든 염려가 이 문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이제는 뭘 마실까를 염려합니다. 커피를 마실까? 우유를 마실까? 녹차를 마실까? 술 마시는 사람들은 소주를 마실까? 맥주를 마실까? 와인을 마실까? 무엇을 마실까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여기서 또 발전하면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합니다.
옷장을 열면 옷이 그렇게 많은데 우리가 하는 말은 맨 날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계절마다 옷을 사면서도 해가 바뀌면 또 옷을 사야 합니다. 왜요? 유행에 뒤 떨어지지 않으려고, 조금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또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는 겁니다.
이것만 염려 합니까? 아이들 교육에 대한 염려, 집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노후에 대한 염려...우리는 온갖 종류의 염려를 떠안고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가 이런 염려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솔직히 이런 문제로 염려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다 보니까 교육비에 대한 염려, 가족 생활비에 대한 염려, 때로는 노후에 대한 염려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선포를 합니다. 25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주님이 그런 염려를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누구십니까?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 중에 벌써부터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자녀가 혹시 있습니까?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책임져 줄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아침마다 여러분을 찾아와서 “우리는 우리 부모님들의 능력을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지만 자녀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모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준다는 믿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기대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먹고 살 문제를 염려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불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31-32).
3. 어떻게 이런 염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생활의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생활의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주님은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 첫째 새의 비유입니다(26절).
새의 특징은 자신들이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염려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짐승보다 하나님에게 훨씬 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새들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책임져주시지 않겠습니까?
2) 둘째, 몸의 비유입니다(27).
이 간단한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염려하다 보면 스트레스로 키가 더 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매일 잘 먹고 잘 자는 일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3) 셋째, 백합화의 비유입니다(28-30).
들에 핀 백합화의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도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가는 들풀도 이렇게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꼭 이 믿음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신다는 뜻은 우리의 건전한 경제활동과 생산활동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열심히 땀 흘리면 일 하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는 성경구절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돈을 벌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가 먹고 살 염려, 노후 염려, 이런 염려를 막아보기 위한 목적으로만 돈을 벌려고 하면 결국 그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돈을 벌면서도 우리 마음에는 <더 많이 벌어야 하는데, 더 많이 모아놓아야 하는데>이런 염려 속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주님은 그런 염려 때문에 돈을 벌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은 다른데 있습니다. 33절을 보겠습니다. <먼저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구하고 힘써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돈을 버는 목적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가장 우선순위는 뭘까요?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성취하는 겁니다. 돈 벌어서 어디에 씁니까? 하나님의 나라 확장하는 일에 쓰는 겁니다.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일에 쓰는 겁니다.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33절 마지막을 봅시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이 뭘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채워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 열심히 하라고 더 많은 물질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바른 믿음입니다. 바른 믿음의 사람이란 돈에 의해서 내 인생이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돈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지 말기 바랍니다. 주님께 기도하십시요. <내게 물질을 통제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아울러 주님을 위해서 마음껏 쓸 수 있는 물질의 축복을 주옵소서.>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의 사람들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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