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음성(왕상 19:9-14) 2014특새 둘째 날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것과 비슷하다 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 혼자 춤을 출 수도 있다. 혼자 추는 춤은 자기 마음대로 춰도 된다. 그러나 파트너와 함께 하는 춤은 자기 멋대로 하면 안 된다. 상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해야 한다. 신앙생활은 나 혼자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1.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내 방법, 내 생각대로 할 수도 있다. 엘리야가 그랬다. 엘리야는 구약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 능력만 놓고 보면 가장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일으킨 기적은 거의 예수님 수준이다. 죽은 자도 살리고, 기도하면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고, 다시 기도하면 비가 왔다. 기도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 그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그런 엘리야가 낙심하고 탈진을 했다. 그래서 도망을 갔다(19:3-4). 그리고 죽고 싶다고 했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엄청난 기적과 능력을 행한 사람이
왜 그렇게 낙심했을까?
10절을 보자. 자기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이 유별나다고 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고 충성봉사 했다. 실제로 엄청난 일들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렇게 큰일을 행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기 혼자만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으라고 싸웠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란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강철 같은 사람이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지치면 약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혼자서 춤을 추었다. 자기 열심, 자기 노력을 가지고 달려갔다. 그리고 그게 올바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낙심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좋아라 춤을 추었다.
이런 엘리야를 하나님은 고쳐주길 원하셨다. 그래서 낙심에 빠진 그를 먼저 푹 쉬게 하면서 체력을 회복시켜 주셨다(5-8). 그리고는 그를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게 하셨다. 그리고 거기서 만나주셨다.
2.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어떻게 만나주시는지 보자.
1)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다(11상).
세상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바람이었다. 그런데 그 바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아마도 엘리야 생각에는 하나님은 위대한 분, 전능한 분이기 때문에 나타나신다면 그런 강한 능력 가운데 나타날 줄 알았다. 엄청난 바람이 불 때, 하나님이 짠! 하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그 바람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 기도하는 문제가 있는데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응답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별로 없다.
2) 이번에는 지진이 일어났다(11하).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도시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무시무시하다. 만약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면 그런 엄청난 자연 현상 가운데 임하셔서 맞다. 그런데 지진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3) 지진 후에 이번에는 불이 있었다.
불이 무섭다. 인정사정 없이 모두 태워버리는 것이 불이다. 그런데 그 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12). 엘리야로서는 뜻밖이었다. 분명 하나님이 나타나실 것 같은데 안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무엇이 있었나? 세미한 음성(12-13)이 있었다.
4) 들릴 듯 말듯 한 작은 소리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는 말은 거기에 누가 계시다는 뜻인가?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바람 가운데에도, 지진 가운데에도,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 엘리야가 어떻게 하나? 세미한 음성이 들리자 하나님이 거기 계신 것을 직감하고 겉옷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지 않나? 왜 그런가?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안 되니까! 죽으니까! 두려워서 가리는 것이다.
5) 하나님이 지금 엘리야를 불러놓고 뭘 교훈하고 싶은 것일까요?
엘리야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나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는 큰 열심을 갖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뭔가? 큰 일, 큰 열심을 가지고 살다가 탈진했다. 낙심하고 좌절했다. 그리고 지금은 도망 와 있다.
그런 엘리야를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가운데 만나주시는 메시지가 뭔가? 내가 큰일을 한다고 해서, 교회에서 남다른 열심을 가지고 봉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내 열심과 노력으로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과 마주 앉아서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겁니다. 우리에게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세미한 음성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끄러운 곳에서는 들리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조용한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귀를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들립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듣지 못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서 자기 생각대로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 위해서는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종하면 됩니다. 내 생각과 방법대로 살지 않고 그분이 하라 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겁니다.
나 혼자 좋아서 마음대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내 열심, 내 방법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묵묵히 순종하는 겁니다. 비록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그냥 말씀 듣고 묵묵히 순종하는 겁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말씀을 주셨습니다(15-18). 그 말씀대로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서 순종의 길을 갑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겁니다.
여러분! 혼자 춤을 추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기 바랍니다.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면서 말씀 듣고 묵묵히 순종하는 신앙이 되기 바랍니다. 큰 것을 바라기보다는 작은 일에 순종하고, 매일 매일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큰 일을 이루십니다. 나를 사용하십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