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 말씀 >
  • 수요예배
분리의 바위
임호남 2008-08-20 추천 0 댓글 0 조회 263
 

분리의 바위(삼상 23:15-29)


14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다윗을 매일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 다윗을 찾으려는 사울과 그 사울의 손을 매일 피해 다니는 다윗과의 숨 막히는 실랑이가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매일 신나는 일이 계속되는 것과 매일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생활은 너무나 다릅니다. 극과 극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가끔씩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더 겸손해지고, 더 기도하는 기간입니다. 그렇게 한 번씩 찾아오는 어려움들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 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들이 다윗처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계속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힘든 생활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정말 축복의 시간입니다.


가끔씩 겪는 어려움을 통해서도 영적으로 성숙하는데 매일 어려움을 겪고 그것이 5년, 10년씩 계속 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하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내 삶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저는 17살에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약 10년간 매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긴장감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라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날은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매일, 무시당하고, 욕 듣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너무 힘들어서 저녁에 학교를 마치고 운동장을 걸어가다가 운동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기도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찾아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 10년간의 고난의 세월은 내 힘으로 버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버틴 겁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서 오늘날의 제가 만들어 졌습니다.


1. 사울이 다윗을 잡기 위해서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뒤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요나단은 다윗이 큰 위험에 빠졌음을 알고 그를 찾아갑니다.  찾아가서 위험 속에 있는 다윗에게 용기를 심어줍니다. 하나님을 힘입게 의지하게 해 줍니다. 요나단의 격려의 내용은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라. 사울이 결코 너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합법적으로는 왕의 아들인 요나단이 왕위를 계승해야 하지만 요나단의 말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아니라 다윗이 왕이 될 것이고, 그 사실을 아비인 사울도 알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은 다윗이 승리한다는 말입니다. 굉장히 힘이 되는 말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격려입니다. 좋은 격려는 어떤 격려입니까? 요나단처럼 인간적인 말로 위로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해주는 격려가 가장 좋은 격려입니다. 요나단은 어려움 속에 있는 다윗을 찾아가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해주었습니다.

 

2. 그러나 인생에는 항상 요나단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어려움 속에 있던 다윗에게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다윗이 숨어 있던 그 지역 사람들(십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았던 겁니다(19). 그들이 사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윗이 우리 지역 어디에 숨어 있으니 내려와서 잡으라고, 정확한 위치까지 말해주면서 우리가 그 일에 앞장서겠다고 합니다. 


엄청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은 그렇습니다. 내 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궁지로 몰아넣을 사람들도 가득 차 있음을 알기 바랍니다. 내가 좋을 때는 나를 지지해 주지만 내가 힘들면 다 자기 잇속을 차리는 것이 세상살이입니다.


3. 이런 첩보까지 받은 사울은 이제 많은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이 있는 지역을 에워싸 다윗의 목을 재어가기 시작합니다.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이 다윗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다른 길로 사람을 풀어서 몰아가는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다윗은 사울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서 체포되기 일보직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도 두려운 나머지 급히 도망을 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상황은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 때 다윗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전에 비가 오는 날 집에 있는 데 갑자기 저의 집 방으로 작은 새 한 마리가 비에 젖은 몸으로 날아들었습니다.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비에 흠뻑 젖어 있는 모습이 가엽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가 되었는데 그 순간 제 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강한 생각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 새를 도와주어야 하겠다.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방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새를 끄집어내려고 손을 내미는데 이런 저의 좋은 의도와는 달리 이 새는 저의 내미는 손을 거부하였습니다.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공포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겁니다.  얼마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든지 후에 그 자리를 살펴보니 변을 흠뻑 싸 놓았더라고요. 결국 그 새를 잡아서 밖으로 날려 보내어 주었지만 저는 지금 다윗의 심정이 마치 그 새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손이 그 새를 향해서 서서히 다가 갈 때 새는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그 손을 기다리는 그 심정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그와 같이 사울의 마수가 다윗의 목을 향해서 서서히 접근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딱 잡으려고 하는 그 순간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사울에게 급한 전갈이 옵니다. 그것은 지금 국경수비대가 무너지고 블레셋 군인들이 국경을 넘어서 물밀듯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전갈이었습니다(27절).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사울에게는 다윗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국경선이 무너지고 적군이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데 정적 한사람 잡겠다고 ‘나 몰라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울은 입맛만을 다시고는 군대를 돌이켜 전쟁터로 달려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다시 한번 사울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다윗의 입장이라면 이건 그냥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체험인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인가 하는 겁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입니다.


14절을 보시면 다윗을 잡으려는 사울에게 하나님이 다윗을 붙이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보호하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다윗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가 막힌 시간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사울을 막으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타이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꼭 이런 식으로 일을 하십니다. 꼭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순간에 개입을 하십니다.


아마 제가 생각할 때는 하나님은 스릴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스릴을 좋아하실까요? 누가 보아도 이것은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된 다윗은 바로 그 장소에 이름을 붙였는데. ‘셀라하마느곳’이란 이름입니다. 그 뜻은 “분리의 바위”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아주셨다는 말입니다. 죽음의 경계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사울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하나님이 허락하신 분리의 바위를 수없이 체험합니다. 이 세상은 요란하고 우리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환경공해, 기계문명, 악한 사람들.....그러나 그 모든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가정과 우리 자녀들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상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울이 모든 군사를 동원한다 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결코 다윗을 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온 세상이 나를 해하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고 미워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내 인생은 무너질 수 없는 줄 믿습니다. 그 주님을 의지합시다.


1. 요나단 같은 격려자가 됩시다. 내가 격려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2.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내 인생은 절대 불행하게 되거나 망하지 않음을 믿읍시다.

   이 믿음 가운데 당당하게 삽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지혜로운 아비가일 2008.09.10 0 406
다음글 나보다 남을 먼저 2008.08.15 0 558

31172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14길 78-6 (쌍용동, 서부장로교회) 큰뜻행복한교회 TEL : 041-578-9310 지도보기

Copyright © 큰뜻행복한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7
  • Total98,951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