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성도(여호수아 10:6-9) 09.5.31큰뜻낮
이스라엘은 견고한 여리고도 무너뜨렸다. 작다고 방심했다가 한 번 실패했던 아이성도 정복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갔다. 이대로 간다면 가나안 정복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기브온이란 복병이다.
힘으로는 이스라엘을 당할 자가 없는데 기브온은 힘으로 하지 않고 꾀로 접근을 했다. 부드럽게 접근을 했다. 일부로 변장을 하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렇게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를 받아 주세요.”
이렇게 사정하고 매달리니까 불쌍하기도 하고, 왠지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해서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덜컥 그 사람들을 받아주기로 하고 조약을 맺어버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것이 속임수였다. 조약을 맺고 나서 삼일이 안 가서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브온은 내 경험과 지식만 믿고 살아가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다.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내 지식과 경험에 속을 때가 있다. <내가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다니! 내가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속다니!> 땅을 치고 후회할 때가 있다. 그 때 후회하지 말고 늘 하나님께 물어보고 살아야 한다.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아무튼 기브온에게 속은 것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분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을 했기에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을 걸고,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받아주기로 결단을 했다.
<내 감정 한번 죽이면, 내 자존심 한 번 죽이면 한 사람 인생 살린다!> 이런 생각을 하고 받아주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면 적어도 살아가면서 쏙은 안 썩혀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이상하게 사사건건 속을 썩인다. 이게 인생이다.
1. 기브온이 누군가?
오늘 본문을 보면 기브온이 이스라엘 편이 되었다는 소식을 예루살렘 왕이 듣는다. 예루살렘은 왕은 여기에 위협감을 느끼고는 주변의 산지에 사는 네 왕과 더불어 5개국 연합군을 형성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편이 된 기브온을 치려고 한다.(5절)
이제 다급해진 것은 기브온이다. 한 부족이 아니라 다섯 부족이 연합해서 쳐들어오니까 사람들을 여호수아에게 보내어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6절).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의 기분이 어떨까? 기브온은 결코 이쁜 사람들이 아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 죽어야 할 사람들이고, 다 쫓아내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속임수 때문에 할 수 없이 받아주기로 한 이쁜 데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인데 받아주자마자 도와 달라고 요청을 한다.
솔직히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뭐 이쁜 데가 있다고 도와주고 싶겠는가? 차라리 이 참에 죽든지 살든지 모른 체 해 버릴 수도 있다. 도와준다고 말은 해 놓고 미적거릴 수도 있다. 그러다가 저들이 다 망해버리면 속으로 잘 됐다. 생각할 수도 있다. 기브온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쁜 데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면서 도리어 큰소리친다. 6절을 보면 <더디게 하지 말라고 한다. 속이 오라고 한다. 우릴 살려내라고 한다.> 이게 바로 기브온의 속성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그래도 한 약속이 있어서 도와주려고 보니까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한 족속하고 싸우기도 버거운데 무려 다섯 족속이다. 도와주려고 하면 이 다섯 족속과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 그래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큰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도와달라고 한다.
우리가 전도하다 보면 이런 기브온을 만난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안타까워서 조금 도와주기도 하고, 또 교회에 데리고 오기도 했더니 그 때부터 계속해서 도와달라고 한다. 이 문제 해결해 주면 또 저 문제로 찾아온다.
돈 문제 해결해주면, 이제는 건강문제로 또 찾아오고, 건강 문제 해결해 주면 가정 문제로 또 도와달라고 하고, 가정 문제 해결해 주면 또 다른 문제로 또 도움을 요청하고 끝도 없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이것이 기브온이다. 사랑하고 싶지만 결코 사랑하기 힘든 상대 이것이 기브온이다.
어쩌다 조금 소홀히 하면 도리어 큰소리치면서 책임지라고 한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 놓으라는 식이다. 그러다보면 괜히 전도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첫째, 냉정하게 판단해서 모른 체 한다.
둘째, 내가 별로 피해보지 않은 선에서 대충 도와주는 흉내만 낸다.
셋째,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2. 여호수아의 반응
여호수아의 반응은 몇 번째였을까? 세 번째였다. 7절을 보자.
여호수와 이스라엘은 기브온이 도와달라는 소식을 듣자마다 모든 군사와 용사들을 데리고 즉시 나섰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와주는지 9절을 보면 <밤새도록 올라가서 갑자기 적들을 공격했다>고 했다.
1) 이걸 볼 때 여호수아는 기브온이 도와달라는 전갈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더들을 모아놓고 <우릴 속인 기브온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도와주는 것이 맞느냐?> 회의를 소집해서 토론에 붙이지 않았다. 아마 회의를 소집했다면 회의하다가 도와주는데 회의를 느껴서 결국 안 도와주기로 결론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문제로 토론하거나 회의하지 않고 즉시 그것도 밤을 새워가면서 군사를 데리고 올라와서 도와주었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는지 알 수 있다.
2) 여기서 잠시 도움을 요청한 기브온의 심리를 한 번 상상해보자.
도움을 요청해 놓고 기다리는 기브온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릴 돕자고 나설까? 우리를 좋아해서 받아 준 게 아니고 속아서 할 수 없이 받아 주었는데 우릴 돕자고 정말 나설까?>
이렇게 자기들 스스로도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내 가족이 어려움을 당한 것처럼 모든 군사들이 다 나선 것이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밤을 새워서 올라와서 바로 도와준 것이다. 이런걸 가리켜서 사람들은 <감동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브온은 이런 이스라엘의 태도에 분명히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3) 여러분! 사람은 언제 감동을 받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나?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방이 기대하고 있던 것을 초월해 버리면 감동하게 되어 있다. 나는 이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만 해줘도 고맙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해 줄 때 나는 감동을 먹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는 생각하기를 <남편이 잊지 않고 기억만 해줘도 고맙겠다!>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날 저녁 일찍 퇴근을 해서 들어오는데, 한 손에는 케익이 들려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처녀 때 받아보고 그 이후로는 종적을 감추었던 꽃다발이 들려 있지 않은가? 그러면 부인들은 벌써 감동을 먹는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남편이 초에 불을 붙이고 다른 불은 끄더니 안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서 아내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부인의 눈물에는 벌써 감동의 눈물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편지를 다 읽은 남편이 주머니에서 예쁘게 포장한 선물까지 내 놓지 않은가? 이 정도면 감동이 아니라 거의 졸도 수준이다.
감동은 이런 것이다. 상대방의 예상치, 기대치를 넘겨버리면 그 때 감동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면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여호수아는 기브온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큰 감동을 받은 기브온은 어떤 생각했을까? 그 때서야 비로소 마음에 확신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이스라엘을 속여서 한편이 되었지만 그래도 저 사람들이 우릴 정말 가족으로 받아주는구나! 할 수 없이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족으로 따듯하게 받아주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때부터 그들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부터 진짜 이스라엘에 뿌리를 내려야지! 진짜 그들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지. 그들이 믿는 하나님 우리도 잘 믿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감동의 능력이다.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에 대해서 이런 감동을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은 비록 형편없이 살아도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뭔가 자신들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3. 감동을 주는 그리스도인
1)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리스도인에게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 대해서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교회에 대해서 등을 돌리게 된다. 왜? 기대치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자신들의 기대치를 채워주는 다른 신앙인들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예를 들어서 불교나 가톨릭과 같은 다른 신앙인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기대치를 채워주면 그들에게 마음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한국사회가 교회에 대해서 많이 실망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다. 왜일까? 그들의 기대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실망스런 모습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분위기를 바꾸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절실한가?
세상을 감동시키는 삶과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말로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삶이 필요한 것이다.
2) 이 세상에는 감동적인 소식이 별로 없다. 들려오는 소식들마다 각박한 소식, 우울한 소식, 살벌한 소식들뿐이다. 우리에게는 감동이 절실하다.
이런 세상을 누가 감동시켜야 하겠는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이 땅의 불신자들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무리들이 되길 소망한다. 이 어두운 한국사회에 우리 그리스도들이 감동을 선물하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길 소망한다.
3) 감동에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첫째, 시간을 투자했다. 둘째 물질을 투자했다. 셋째, 몸을 투자했다. 기브온을 돕기 위해서 많은 시간, 많은 물질, 많은 몸을 투자했다. 그럴 때 상대가 감동을 했다. 감동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투자할 때 되는 것이다.
주님도 감동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적이 있다.
산상수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 누가 너의 속옷을 가지고자 할 때, 겉옷까지 내어주며... 감동 아닌가?
-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해주고.....감동 아닌가?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감동 아닌가?
주님은 이 땅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살지 말라 하신다. 그들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불신자들의 기대치를 넘어서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그럴 때 세상은 성도들을 주목하고, 교회를 주목하고 칭찬하게 될 것이다.
< 결 론 >
요즘 기업들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을 감동시킬까 고민한다고 한다. 고객감동을 넘어 고객졸도까지 고민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정말 이런 감동이 필요하다. 누가 이 땅에 감동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을 해야 하겠는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기브온을 감동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세상을 감동시키는 교회가 되자. 그 일을 위해서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려서 세상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자.
한 주간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먼저 가까이 있는 내 아내를 그리고 내 남편을 감동시킬지 고민하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 이웃을 감동시킬지 고민하자. 그리고 구체적으로 실천하자. 그래서 이 지역에 감동의 물결이 큰뜻주님의교회 성도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하자.
<기 도>
주님! 말로만 크리스천이 아니라 감동을 선물하는 그리스천이 되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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