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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임호남 2018-01-26 추천 2 댓글 0 조회 818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마가 14:43-52) 18수요

 

우리 신앙에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 낼까요? 신앙이 모두 같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신앙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신앙조차도 항상 같지 않습니다. 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예수님이 체포되는 장면입니다. 주님이 체포되는 이 순간부터 드디어 주님의 고난의 길이 시작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중요합니다. 먼저 이 상황을 잠시 정리하겠습니다.

 

1. 언제입니까?

유월절 식사 겸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나서입니다. 아마도 밤늦은 시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고 있는 시간입니다.

 

2. 어디 입니까?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예루살렘 성 동쪽 바로 앞에 있는 올리브 산(감람산) 안에 있는 작은 동산입니다. 주님이 습관적으로 기도하기 위해서 찾던 곳입니다. 제자들은 아는 일종의 비밀스런 곳입니다.

 

3. 왜 오셨습니까?

유월절 식사 이후에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을 방문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깊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내용은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주님은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뚝뚝 떨어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다 잤습니다. 피곤하기도 했고, 주님처럼 영적인 위기의식 혹은 영적긴장감을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들에게 <시험을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만이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오랜 시간 충분히 기도했습니다. 정말 깊이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의 마음은 이미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맞을 마음의 준비가 됐습니다(41-42).

 

4. 바로 그 말씀을 하고 있을 때 누가 등장합니다. 누구입니까?(43).

가룟 유다입니다. 왜 등장합니까?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파송한 군사들에게 예수님이 어디에 있든지 알려주려고 가이드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다는 그들을 데리고 오면서 <내가 입을 맞추는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니까 그 사람을 잡으라>는 계획까지 다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뻔뻔하게 다가와서 예수님을 부르면서 친밀하다는 표시로 입을 맞춥니다. 군사들은 그 사인에 맞춰서 예수님을 체포합니다.

 

이런 유다의 행동은 다른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이고, 비열하고 악한 모습입니다. 아마도 그 순간 제자들의 마음에는 배신감, 분노감 이런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예수님을 보호하려는 본능도 발동했을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 한 명이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을 가지고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다른 성경은 그 사람이 바로 베드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 긴박한 상황에서 너무나 태연하십니다. 비열한 유다를 보고서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체포하려는 사람들에게 저항하거나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의연하게 대응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1) 충분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문제로 충분히 기도했습니다. 세 번에 걸쳐서, 오랜 시간 동안, 피땀을 흘리면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문제를 대할 때, 그 문제를 위해서 충분히 기도하면 마음의 준비가 됩니다. 그래서 막상 문제가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맞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를 가지고 충분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기도하지 못하면 당황합니다. 기도했다고 해도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충분히 넉넉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큼 해야 충분히 기도한 겁니까? 그건 본인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본인이 아닙니다. 본인은 내가 이 문제로 충분히 기도했는지, 기도가 부족했는지 압니다. 본인이 느끼기에 충분하게 기도를 많이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에 준비가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고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고난은 피할 문제가 아니라 받아야할 문제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당신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 고난을 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피해가면 안 됩니다. 당당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희생해야 합니다.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충분히 기도하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당황하거나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입니다.

 

6. 그러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50). 여러분, 얼마나 예수님과 다릅니까?

 

제가 서두에 무엇이 우리의 신앙에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신앙에 차이를 만들어냈나요?

 

이미 여러분은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주님은 시험을 앞두고 충분히 기도했고 제자들은 충분히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해야할 시간에 육신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충분히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은 원이지만 우리는 실패합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는데, 주님을 부인하고 싶지 않았는데, 믿음으로 승리하고 싶었는데, 충분히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나를 봅니다. 쉽게 무너지고, 패배하고, 비겁해지는 나를 봅니다. 여러분,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주님의 말씀을 봅시다(37-38).

 

(14:37-38)[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최소한 한 시간은 기도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시간의 법칙>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위기나 시험이 오면 한 시간은 기도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낼 겁니다.

 

7. 오늘 본문을 보면 부록처럼 한 장면이 더 첨부되어 있습니다.

51-52절입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간 부끄러운 이야기 외에 한 청년의 얘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누구일까요? 학자들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라고 말합니다.

 

주님과 제자들은 아마도 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식사를 했을 겁니다. 마가는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한 주님의 일행이 식사 후에 겟세마네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다가 일어나 엉겁결에 홑이불을 두르고 주님 계신 곳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잡혀가는 주님을 따라가게 되고, 군사들이 자기도 잡으려고 하니까 걸치고 있던 홑이불을 벗어 던지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치고 만 겁니다.

 

마가가 왜 부끄러운 자기 이야기를 여기게 기록했을까요? 참회록인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존재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걸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감추지 말고 주님 앞에 드러내어야 합니다.

 

제자들을 보세요. 마음은 주님을 위해서 죽고 싶었지만, 막상 현실에서 어려움이 오니까 다 무너지지 않습니까? 뭘 보여줍니까? 결국 내 신앙의 현주소가 그거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는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았습니다. 주님의 명성에 올라타서 나도 뭔가 대단한 영성을 가진 사람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말씀으로 훈련 된 신앙이 아니면 현실의 벽 앞에 다 무너집니다. 완전히 패배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이 유익합니다. 왜요? 그래야 내 주제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미숙하고 부족한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해 집니다. 정말 기도와 말씀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야 비로소 깨닫게됩니다. 그리고 자기를 훈련하는 훈련된 신앙이 됩니다.

 

여러분, 무엇이 신앙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까?

깊은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그게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주님을 본받읍시다. 잘 훈련 받읍시다. 충분히 기도합시다. 기도가 힘들지 않고 기쁨이 됩시다.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복종하는 신앙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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